1/19/2010

기도의 행진을 하라


성경에는 성령의 영감을 따라 성()이며 지역을 행진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 되어 있다. 이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성과 지역 전체를 구속(九贖)하고 회복하시기 위해 개입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물론 그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내 백성이 지식이(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어 망하는 도다”(호세아4:6)

기도의 행진을 했던 성경의 인물
일찍이 기도의 행진을 시작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예언적 중보기도에서 기도의 행진이 갖는 가치와 그 성경적 기초를 계속해서 깨닫게 해주셨다. 성경에는 성령의 영감을 따라 성이여 지역을 행진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성과 지역 전체를 구속하고 회복하기 위해 개입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물론, 그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 아브라함 -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기도의 행진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받을 기업을 보여주고 싶으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둘러보며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3:14-17).

아브라함은 예언적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 세대에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할지라도 그의 후손이 그 땅을 물려받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걸으며 그 약속이 성취되리라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가졌다.
       
중보기도할 때, 그의 믿음은 놀라운 영적 도약을 이루는 열쇠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기 이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구원은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즉 십자가에서 완성된 일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2:8,9).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2:38,39). 치유와 해방도 믿음의 결과이다. 우리가 약속을 받는 것도 바로 믿음을 통해서다. 따라서 기도의 행진을 할 때, 믿음이 충만한 기도를 드리면서 걷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행진할 때, 그의 후손들을 넘치게 더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아들 이삭이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으며, 후손이 많아진 것은 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히 이뤄지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기도의 행진이라는 말은 중보기도의 특별한 역할을 규정하는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근 도시 전체에 흘러 넘치는 중보기도의 물결을 묘사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하는 기도는 이미 잘 알려진 기도의 형태와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을 보니 중보기도와 관련한 어휘에 기도의 행진’(prayerwalking) 이라는 말을 첨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기도의 행진을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현장에서 하는 기도로 정의하려 한다 스티브 호슨과 그래함 켄드릭의 설명.

2. 여호수아 - 성경에 나타나는 또 한 사람의 기도의 행진가는 여호수아이다. 그는 가나안 땅의 문제뿐 아니라 그곳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 땅을 행진했다(정탐했다). 기도에도 지식(정보)은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좀더 정확하게 기도할 수 있다. 전쟁을 하기 전, 군인들은 정보를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때때로 우리는 중보기도자로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영적 전투에 뛰어들기도 한다. 기도에 결과과 없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지식 없는 기도가 그 하나다. 우리의 기도가 진실하다고 해도 정작 어떻게, 어떤 내용을 놓고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도한다면 ... 그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여호수아는 먼저 가나안 땅을 정탐하여 지식을 얻었다.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40년 전,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열명의 지도자들이 그 땅을 정탐하러 갔다. 땅을 둘러보고 돌아온 이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보고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어떻게 받을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일은 그 땅을 정복할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비극은 열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단 둘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데서 생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한 나라가 그 기업을 받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에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는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14:6-9).

두려움은 무서운 적이다.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을 받지 못하게 한다. 중보기도를 할 때 두려움을 물리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싸움(전쟁)에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라.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길 것이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 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그들을 두려워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그와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행하실 것이요” (7:17-19).
       
열 두명의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은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그들은 두려움을 주는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믿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보를 얻고 용기 있게 행진한 결과 약속의 땅을 받았다.

3. 느헤미야 - 기도의 행진은 기도하는 사람과 그 기도의 대상을 하나 되게 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둘러본 것은 지식(정보)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과 일체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페르샤(바사)의 수산 궁에서 왕의 술을 맡은 관원이었다. 그는 비록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처한 상황을 듣자 가슴을 치며 애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얻어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는 성을 둘러보며 무너진 성벽과 성문을 꼼꼼히 살폈다. 느헤미야의 가슴은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치욕을 씻는 것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2:17,18)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둘러보고 그곳 거민들과 일체감을 가지고 기도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은 회복되었고 원수들은 도망쳤다. 우리 어떤 지역에서 기도의 행진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곳 사람들과 하나 되어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끼도록 도우실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있던 곳
사도 행전에 언급된 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지역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안디옥, 지금의 안타키아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모두 터키에 위치해 있다. 바울 서신 가운데 다수는 터키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였다. 이런 신앙의 전통을 가진 땅이지만, 지금 터키 인구의 99%는 모슬렘이고 크리스천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무엘 하14:14절은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 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터키에서 복음의 생명을 빼앗지 않으신다. 원수가 그 생명을 훔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어 쫓긴 자들이 그분에게로 돌아 올 길을 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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