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2010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힘을 얻는 기도 (Prayer Energized by Intimacy with God)

I.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경험하는 부르심
A. 성령님은 교회에게 하나님과 깊은 친밀의 관계로 가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나의 초창기 사역은 복음 전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거나 하나님과의 친밀감에 관한 신학적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1983 5,  21일간의 교회 금식 기간중에, 주님은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시편 27 4절의 본문을 말씀하셨다: “내가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하루 24시간 기도하는 사역을 부어줄 것이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편 27:4)

B.  1988 7월 내가 아가서 8 6절을 읽고 있을때, 밥 존스가 하나님이 그에게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신 내용인 아가서 8 6-7절대로 살아갈 수 있게 전세계에 있는 예수님의 지체에게 은혜를 내려주실 거라는 약속과, 나의 사역의 중심이 이 주제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불의 인(seal of fire)”을 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점진적으로 받는 다는 것을 말한다

"너는 (예수)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하나님의)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 이 사랑은 많은 물(, 압박)꺼치지 못하겠고…" ( 8:6-7)

C.왕실의 인: 고대시대에 중요하게 보호되어야 할 문서들은 왕의 싸인이 들어간 반지에 의해 밀랍으로 봉인되었다. 그 왕실의 봉인 도장은 왕의 모든 자원을 통해 보호되어졌다

D. 육체적 죽음은 강력하다, 또는 아무도 피하지 못한다자연에 속한 그 어떤 영역도 죽음의 권세를 피할수 없다.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도 죽음처럼 강력하다. 우리 삶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피할수 없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어떤 부분에서도 타협하거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고 계신다. 우리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 사랑을 계속 받게될 때 어떠한 유혹의 홍수보다도 더욱 강력하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 (로마서. 5:5)

E. 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불이외의 모든 불을 끌수 있다. 원수는 이 불을 끄기위하여 우리에게 많은 양의 고난과 유혹, 실망, 그리고 고통을 보낼 것이다( 12:15; 43:1-2).

F.우리는 그저 그분의 임재로 우리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구하면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품고, 입어야 한다. 그분을 우리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은혜를 달라고 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만지심을 느끼는 것이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13:14)

G.기도와 금식,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어 주시는 은혜를 더 자유롭게 받게 도와준다.

H.  아가서는 8장으로 구성되 있는 사랑의 노래이다. 아가서는 2가지 방법으로 해석될수 있다:
1)
자연적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 술람미 여인과의 관계를 묘사한 이 관점은 부부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높여주는 성경적 원칙들을 강조한다.

2)
영적인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와의 관계는 왕된 예수님과 그의 교회의 관계에 대한 영적인 진리에 관한 상징이다. 결혼은 없어질 것이지만 (아가서를 포함한)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게 될 것이다(22:30).

II.  신부의 정체성을  지닌 마지막때 교회
A.  마지막때 교회는 성령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행함으로 성령과의 깊은 연합을 갖게 될 것이다. 성령님이 행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그분은 능력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중보하고 계신다. 성령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성령님은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시고 계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 22:17)

B.   22:17은 마지막때 교회의 기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1)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음, 2) 중보기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함, 3) 신부의 정체성을 확립함, 그리고 4) 놀라운 추수를 거둠.

C.  다시오실 예수님을 위한 마지막때 교회의 3가지 기도:
1.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소서(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마음의 돌파구)
2.
부흥을 위해 우리에게 오소서(지역이나 나라의 영적 부흥을 통한 영적돌파구)
3.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오소서(예수님의 재림에 의한 역사적 돌파구

D. 신랑되신 예수님의 메세지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의 부르심이다. 이 친밀함으로의 초청은 하나님의 마음(감정, 사랑)을 깊이 경험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친밀함은 예수님을 나의 남자 친구나 또는 애인으로 바라볼 것을 말함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우리가 ….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0-12)

E.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상속할 자로 하나님의 보좌를 경험할 지위를 가지고 있다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감정과 마음을 경험할 지위를 지니고 있다. 이 두가지 지위는 모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특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되신 하나님에 관한 메세지를 이해하는 것은 신랑되신 예수님에 관한 메세지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F. 대부분의 기독교 여성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때문에 그들에게 여성스러움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남성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 그들의 남성스러움을 포기하라는 것으로 오해하여 종종 곤욕스러워하곤 한다. 그리스도의 신부의 본질에 관한 메세지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남성스러움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킨다.

G.  몇몇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남성들)은 그리스도의 신부 정체성에 관한 메세지의 본질적인 실재를 경험했다.  다윗왕 은 이스라엘 왕중에 가장 위대한 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예배자이기도 했다사도 요한은  우뢰(천둥)의 아들이라고 불렸고, 그는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5번이나 자신을 묘사하기도 했다( 13:23; 19:26; 20:2; 21:7, 20).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예수님에 의해 가장 큰 자로 불려졌다( 11:11). 그는 예수님을 신랑되신 하나님으로 이해했다( 3:29).

H. 신랑의 메세지는 신랑되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신랑 예수님은 부드러운 자비하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자상함으로 대해 주신다. 어떤 이들은 대적하는 것과 미성숙함을 혼동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 반항하는 것에 노하시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진실되지만 미성숙한 성도를 향해서는 부드럽게 대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기뻐하신다 ( 18:19, 35; 130:3-4).

I. 신랑 예수님은 즐거운(행복한) 마음을 소유하신다. 예수님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즐거움을 더 많이 소유하셨다(1:9).  교회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하나님은 거의 성나거나 슬픈 하나님으로 보여져 왔다. 그러나, 신랑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불같은 사랑 또는 불타는 소원을 갖고 계신다교회는 소중한 예수님의 마음을 경험할때 정결케 될 것이다. (5:26-29). 열정적인 신랑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은 머지않아 우리 자신을 소중한 신부로 바라보게 한다.

J.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 마음의 사랑의 노래를 주님께 다시 불러 드린다교회가 부르짖는 전투적 중보기도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실 사랑의 노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K. 1995 11월에 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헵시바로 부르도록 권면하는 하나의 예언적인 꿈을 꾸었다.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또 여호와께서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62:4-7)

L. 헵시바의 메세지는 하나님이 우릴 기뻐하신다는 것과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한다이것은 아가서의 내용과도 같은 내용이다수년간 나는 헵시바의 메세지를 경험하지 못한 채 부흥이 오기만을 기도했다그리고 발견한 것은 중보 기도자들을 지치게 만든 하나의 이유가 부흥을 기다리는 수년의 시간 동안에 예수님과의 대면(만남)이 부족했었던 것에서 왔다라는 것이다이사야62:4-5의 신부의 정체성의 계시는 이사야 62:6-7에 나오는 24시간7일 기도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III. 예수님과의 친밀함의 기름부으심을 경작하기 ( 25:1-13)
A.    24-25장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관해 가르치셨다( 24:3-44). 그리고 마지막 심판에 관해 묘사하기 전에( 25:31-46) 그것을 3가지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리더로( 24:45-25:30) 부른 자들에게 적용하셨다. 마태복음의 이 2개의 장은 마지막때에 리더를 준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하나의 가르침이다.

B.  예수님께서는 마 24-25 장에서 신랑으로서, 왕으로서, 그리고 심판자로서 자신의 사역의 3가지 면을 강조하셨다마지막때에 성령님은 예수님의 특성으로서 이 3가지 측면을 강조할 것이다( 24-25, 19; 61-63;  45). 신랑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열망을 경험할 수 있다으로서, 우리는 그분의 권능을 경험한다. 그리고, 심판자로서, 예수님의 열심이 사랑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없앤다신랑되신 예수님과 심판자로서의 예수님은 모순관계가 아니다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의 지도력과 그의 백성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대적하고 제거하는 그분의 심판으로 표현된다

C. 예수님의 주된 권고는 마지막때에 깨어있을 것과 성령님과 연합된 마음을 발전시킴으로써 준비되는 것이다( 24:36, 42-44, 50; 25:13; 13:33-38; 21:36; 16:15).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 25:13)

D.우리는 신약에서 마지막 때에 관하여 깨어서 기도할 것을 10번이나 권고받았다(24:42; 25:13; 13:9, 33, 34, 35, 37; 21:36; 살전 5:6; 16:15).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성령의 능력을 받는 자세를 지니는 것을 말한다그곳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 순종하고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도록 권한을 위임받는 장소이다이런한 시간은 연료없는 차를 미는 것 대신에 차에 연료를 넣는 시간으로 비교될 수 있다성령님과 연합없이 사랑안에 거함을 구한다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다.

IV.마지막 때의 천국(왕국)의 지도력: 현명한 지도력 정의
그 때에 천국은 마치 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 25:1-2)

A. 처녀들: 예수님의 의를 통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앞에서 처녀로 정의된다(고후 5:17).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B. : 각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 있다. 그 등은 하나님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역을 말한다 ( 5:15-16; 1:20; 2:5; 11:3-6; 4:2; 62:1; 5:35).

C.  신랑: 모든 사역자들은 신랑되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의 계시를 갖고 있다. 그들은 신랑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 대면한 사람들이다.

D.                그때에: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때란 말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그때는 열처녀가 신랑을 만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그 기능을 발휘하는 때를 말한다.

V. 슬기로운 다섯 처녀: 사역의 등불을 비취도록 기름을 담아라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 25:2-4)

A. 기름은 우리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때에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말한다. (고후1:21; 1 2:20, 27).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우리의 마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지신다.

B. 미련한 처녀들은 등(사역)은 가졌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못했다다시 말하면 그들은 사역은 열심히 했지만, 예수님과의 친밀함의 관계는 그들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C. 현명한 사역자들은 그들의 그릇에 기름을 채웠다다시 말하면 그들의 사역을 형성하고 확장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로 그릇에 기름을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추구한다우리의 가장 중요한은 예수님과의 관계이지, 우리의 사역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다두명의 증인들은기름 발리운 자들이다( 4:14). 

D. 미련한 사역자들은 기름을 소홀히 여기는 실수를 범한다많은 사역의 등불들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영적 생명력이 부족함으로 금방 꺼지게 된다현명한 자들은 그들의 영적인 준비가 양도될수 없다는 한계가 있음을 아는 자들이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 25:8-9) 

E.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살 것(준비할 것)을 권면하시거나, 또는 하나님이 정한 그분과의 친밀함을 얻는 과정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신다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친밀감을 얻도록 투자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 3:18)

VI. 앞으로  임하실 성령님의  물결을  위해  예비하라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Mt. 25:10-12)

A. 이 구절은 구원의 상실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예수님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알지 못하신다고 하셨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표현한 구절은 그들의 구원이 결핍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친밀함이 결핍되어 있음을 말하시는 것이다예수님은 그들을 악한 종( 24:48);, 사악하고 게으른 자, 저주를 받은 자( 25:26, 41);로 부르는 대신에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7: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 7:23)

B.  고대 유대인의 결혼풍습은 며칠 밤을 지내면서 축하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다(부자들은 원칙적으로 7일밤을 지냈다).  결혼하는 신랑, 신부와 가까운 사람들은 첫째날 밤과 그후에 따라오는 밤들에도 초대 받았다.

C.결혼 축하연이 7일동안 진행되는 동안, 유대인들은 각 밤마다 각기 다른 부분을 강조하여 축하하곤 하였다그래서 하나님도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될 마지막 때에 완전한 부흥이 이루어지도록 각기 다른성령의 물결을 부어주신다( 19:7-9).

D.오로지 신랑되신 예수님을 가까이 함으로 준비되었던 자들만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때의 부흥에 강력하게 사용되기 위해 준비된 자들을 말한다.

E.열처녀중에 단지 준비된 자들 만이 어린양과의 혼인잔치의 첫날과 그후에 있을 날들의 연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그외 남은자들은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부르짖었다.  – 마지막 부흥의 때에 우리를 유용한 자리에 있게 하소서.

F.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은 깨어있으라는 것이다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신랑되신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발전시키는 것이다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산 많은  자들은 미래에 더 이상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25:13)

G.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으러 갈 때에, 지혜로운 자들이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계속적으로 가꾸는 것을 게을리함으로 미련한 자가 되지 말것을 경고하신다( 25:1). 기름을 채우는 가장 실재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것이다이러한 방법들이 하나님의 총애를 더 얻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더욱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하라 - 마이크 비클


I.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셨다

A. 성령님은 교회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촉구하고 계신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계셨고 아버지의 사랑을 가족과 나누기를 원하셨다. 우리 마음의 부르짖음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메세지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견고한 진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8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14:7-9)

B.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교와 인격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들을 알기 위해 복음서를 공부함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우리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창세기 1장에 나타난 능력의 하나님이 또한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계신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C. 예수님은 그의 사역에 대한 주된 목적이 아버지를 알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셨다그 당시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전반적으로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전능하신 창조주였다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심 앞에 떨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애정을 깨달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확신 을 갖고 설수 있다고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D.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은 그 분의 인격의 다양한 면들을 나타낸다. 성경은 300개 이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의 주된 초점은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사랑이 많으시고 깊은 관계를 맺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으로,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인격을 예수님은 강조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17:26)

E.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내셔서 첫계명을 첫자리로 회복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모든 마음과 힘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분인 것을 계시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F.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 만큼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신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치에 대한 계시이다.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 느끼시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 대해 느끼고 계신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더 증가시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더 커질수 없고 작아질수도 없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17:23)

G.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즐거워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 받아야만 만족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연약함 가운데서 해매는 우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느끼시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이 진리로 개혁된다. 아버지는 먼 훗날 천국에서 온전해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를 즐기는 분이 아니라 이 영적 여정중인 우리가 자라가며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시며 그대로를 즐기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H.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마음은 결코 평안을 경험할수 없다. 우리에게는 연약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고 즐거워하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6:9)

I.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수치심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마비 되어있다. 수치의 삶은 죄의 삶으로 인도한다만약 우리가 하나님앞에 더럽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더럽게 살 것이다. 우리 믿음의 싸움은 우리가 죄에 걸려 넘어졌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시는 가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 달려 있다.

J.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삶은 지옥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3)

K.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는 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하늘나라에서 온전케 된 성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다그러나 이생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란 어려운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L.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하도록 도와 주신다. 우리를 통해 성령님은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으신다. 아바는 아빠같이 친근한 용어이다존경을 표하면서도 사랑스럽고 친근한 용어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들과 딸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신다입양되었다는 것은 합법적으로 특권을 가진 위치를 말하며 가족의 이름과 부와 재산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8:15)

M.양자로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허가증을 갖게 된다. 아바에 대한 계시는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인내하게 하고, 소망없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탄의 고소를 거절할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준비 과정을 통하여 그의 구원하심과 충만함을 경험케 된다.

N. 하나님의 사랑의 바다는 우리 마음이 부드러워짐과, 우리 내면의 갈망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포함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이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7-19)

II.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신실한 자로 보시며 우리를 기뻐 하신다
A.  예수님께서 친히 대가를 치루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로서 확신을 갖고 그 앞에 설수 있게 되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17-21)

B.  하나님은 반항과 영적 미성숙을 혼동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시지만 믿는 자들만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는 즉시 우리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려고 하는 찰나, 성숙을 이루기 훨씬 전에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신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15:4-7)

C.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성숙함을 이루기 훨씬 전,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며 나가기 시작할때 우리를 향하여 미소를 지으신다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자 하는 진정한 영혼의 울부짖음을 보신다.

D.  신실한 사람들이나 반항하는 사람들 모두 진흙탕에서 헤맬 때가 있다 .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다르다. 우리의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도(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도를 보고 우리를 판단하신다.

E.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2 가지의 확신을 갖기를 원하신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연약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고,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사랑을 거짓사랑이라 멸시치 않으시고 순전한 사랑으로 받으신다는 확신이다.

F. 양은 진흙탕을 나오기 위해 몸부림 친다. 반면에 돼지는 진흙탕으로 들어가려고 몸부림 친다. 구약시대의 법은 깨끗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양도, 돼지도 모두 진흙탕에 빠질때가 있다.

G.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진정 노력하지만 그 사랑은 흠있고 불완전하다.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질 수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17:9). 어느 누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죄의 깊이를 측량할수 있겠는가?

H. 예수님은 탕자들이 회개하는 바로 그 즉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새롭게 회개했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탕자는 그의 삶에 있어 아직도 많은 부분에 변화가 필요한 상태이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15:17-20)

I. 하나님은 탕자들이 회개하는 그 즉시 그들을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신다.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오는 바로 그 날, 탕자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시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심으로 이 사실을 입증해 주셨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 15:21-24)

J. 이 탕자 비유의 주된 초점은 유산을 탕진해 버린 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얻게 된 아버지에게 있다.

K.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한 후에, 다시 일등 시민으로 하나님과 새로운 시작을 가질수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한 후에지움 버튼을 누르면 된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렘애 3:22-23)

L.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연약함 가운데서도 진정으로 회개하며 나아가는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그  사실안에서 확신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분께 달려가게 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7:18) 

초자연적인 성령 사역을 풀어내다

초자연적인 성령 사역을 풀어내다(Releasing the Supernatural Ministry of the Holy Spirit)

I. 영적 은사 사용
A.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우리의 권위와 영적 은사를 우리가 사용함으로 주님의 초자연적 사역을 위한 그릇이 될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은 교회가 영적 은사들을 무시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온다( 10:17). 일반적으로 우리가 은사들에 대해 듣고 배우게 될 때 우리안의 믿음이 자극을 받아 은사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고전 12:1) 

B. 우리는 영적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기 전까지는 그 은사들을 절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우리는 주님과의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손을 구할 때 우리는 주의 능력을 풀어낼 수 있다. 우리는 은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미약한 시작이지만 그  은사들을 사용하면서 영적 은사를 더욱 사모해야 한다. "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1)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39)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 (고전 12:31; 14:1, 39)

C.모든 사람들은 예언하고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성령은 교회가 주의 능력을 행하며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믿음을 분발시키고 계신다. 이제는 우리가 병든 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오늘은 구원의 날이다(고전 6:1). 말세에 내가 내 모든 육체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을 꾸리라” ( 2:17)

5)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31)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5, 31)

D. 예언의 영은 극적인 방법들 뿐 아니라 은은한 방법으로도 나타난다. 극적인 방법들에는 꿈과 환상, 천사의 방문,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들을 포함한다. 사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미묘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흐릿한 마음의 감동 등을 포함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 사람들에게 치유나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만지실 것인를 나타내는 우리의 마음안의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그림이나 인상.

2) 감정적인 감동: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만지실 것이라는 것과 관련된 부담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역이나 사람을 향한 부담이나 슬픔, 기쁨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낌.

3) 동정심어린 통증: 다른 사람들 몸의 특정한 부위에 있는 통증이나 질병을 주님께서 치유하실 것이라는 표시로 우리가 같은 몸의 부위에 느끼게 되는 통증.  

4) 육체적 감각: 주님께서 우리가 받은 육체적으로 느끼는 감각과 관련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지시기를 사모하신다는 징표로서 우리의 오감을 통하거나 우리의 몸의 특정 부분에 성령의 임재(열기, , 뜨거움, 바람등)를 경험하는 것.

E. 우리가 큰 모임이나 작은 모임, 또는 사회적 모임등으로 모일 때에 우리는  성령의 예언적인 인도하심을 받기를 지향해야만 한다. 우리는 성령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걸 말씀하고 계십니까?”라고 단순하게  성령께 요청함으로 할 수있다. 성령은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흐릿한 예언적 감동을 주심으로 대답하실 것이다. 성령이 주시는 간단한 한 구절이 성령이 어떤 일을 하실 지에 대한 힌트를 주게 된다. 이것은 마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5:19)

II. 성령의 은사 사용에 성숙해 지는 방법
A. 우리는 은사들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지녀 그 은사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B.  원리: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는 보통 성도의 입술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들을 우리가 선포할 때 역사하시게 된다.

C.첫째,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는 감동을 표현하면서 은사들은 사용한다. 우리가 말하는 마음의 감동은 반드시 성경의 원리에 합한 것이어야 한다. 성령이 주신 감동이나 인상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게 된다. 우리는 성령님이 주신 감동을 표현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감동들은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D.은사들은 많은 경우 우리 영혼 안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또는 성령의 미묘한 감동같은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미묘한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무시하고 놀라운 열린 환상을 볼 때까지 기다리려 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들 안에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더 민감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지진 후에 이 있으나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 19:10

E.  “성령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라고 질문하라. 이렇게 질문하는 단순한 행동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더 민감하게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질문은 우리가 우리 마음안에 성령의 감동이나 하나님의 예언적 속삭임을 받아들 수 있는 자세를 갖게 한다.

1. 나는 예언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을 조용한 날의 호수에서 보트에 돛을 올리는 것에 비교한다. 미풍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돛은 겨우 보트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미약한 미풍을 잡는다. 그럼에도, 보트는 움직인다! 우리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시는 가를 물어볼 때에도 이와 같은 역동성이 발생한다.

2.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아주 미묘한 감동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으로도 우리의 믿음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게 된다. “성령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나를 통해서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고백하면서 당신의 돛을 세워보라.

F.우리가 예언적 감동들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것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 4:2)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열어 기다리면서 어떤 일을 하실 지를 물어보라. 불신에 뿌리를 둔 모든 제약과 한계를 마음에서 없애버려라.

G.두번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라 또는, 우리의 영혼을 고요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들을 수있게, 성령이 주시는 감동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하라.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도해 줄 때 열성으로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설교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  
  
H.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조금만 나타날 때에도 그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조그만 것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의 두통이 10% 만 치유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역사이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마귀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성령의 능력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모든 선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I. 우리의 교만으로 인해,  우리는 사역에서 나타나는 작은 하나님의 능력을 쉽게 무시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특별하게 또는 놀랍게 나타날 때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엄청난 능력이 나타날 때에만 예언과 치유 사역을 하고 싶어하는 열심을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예언사역을 하고 싶어한다. 우리에게는 작은 역사가 일어나는 날들에도 신실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J.넷째, 틀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라. 오히려, 우리는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더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더 중요한 질문은내가 잘못 받으면 어떡하지?” 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셨는 데, 필요한 사람에게 주님의 능력을 풀어주는 기회를 놓쳐 버리면 어떡하지?”이다.

K. 다섯째, 만약 당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느낌이 확실하지 않을 때에는 좀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초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하라. 예를 들어서,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오늘 당신을 치유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제가 형제/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데요. 제가 믿기에 하나님께서 지금 형제님을 만져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만약 확실치 않을 때 우리가 좀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한다면, 혹시라도 우리가 틀려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게 될 것이다.

L.특별한 것을 얻으려는 부담을 내려놓아라. 우리의 의무는 성령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다. 
 
M.왜 성도들은 예언하기를 게을리 하는가? 많은 경우에 예언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영적인 적극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인가? 주님께 작은 영감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성령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받은 영감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를 써야하고 또위험을 무릎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 놓는 게 더 쉬운 일이다.

N.성령에 계속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우리가 엄청난 감정의 혼란을 야기하는 여러 생각들과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III.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A. 성령의 나타남(은사)은 다른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다(7, 11).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말씀,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말씀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들 분별함,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7-11)

B. 모든 은사들은 자연적이 아닌,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며, 세가지로 구분된다.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계시의 은사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의 은사들: 믿음의 은사, 기적행함, 치유의 은사무엇인가를 말하는 영감의 은사들: 예언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IV. 계시의 은사들: 무언가를 드러내는 은사들
A.  지식의 말씀 ( 4:18; 5:1-10; 9:10-12; 10:9-20; 2-3): 과거나 현재의 일에 관련된 계시. 이 은사를 지식의 은사라 부르지 않는다(많은 지식을 가진 것과는 구분된다는 말-역자주). 성령님은 사람, 장소, 어떤 것들과 관련된 말씀이나단편적인” 정보를 주신다. 이것은 환상, 천사, , 또는 예언의 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러 은사들이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B. 지혜의 말씀 ( 9:10-16; 8:26-29; 11:28-30; 21:10-11): 미래와 관련된 정보를 나타냄. 이것을 지혜의 은사라 부르지는 않는다(일반적인 지혜를 지니는 것과 다르다는 말-역자주).

C.  영들 분별함 ( 9:3-8; 16:16-18): 영적 세계를 보는 통찰력. 이 은사는 어떤 영 또는 선하고 악한 영적 세계를  분별하거나 감지하는 은사이다. 이 은사를 분별의 은사라 부르지 않는다.  이 은사는  특별히 심리적인 통찰력이나 사람들의 성격들과 잘못들을 지적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V. 능력의 은사들: 무언가를 행하는 은사들
A.  기적 행함: 이 은사는 순간적으로  기적을 행하는 성령의 나타나심이다. 기적은 평범한 자연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개입을 말한다. 이 은사는 역동적으로 역사한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고( 2), 5 천명을 먹이셨다( 6:6-14).

B. 믿음의 은사: 이 은사는 보호하심, 인도하심등을 받는 성령님의 나타나심이다. 바울이 폭풍을 만났을 때에서 그랬던 것과 ( 27)  엘리야가 까마귀에 의해서 먹을 것을 공급받을 때처럼(왕상 17:2-6), 다니엘은 수동적으로 사자굴에서 보호를 받았다( 6:16-23). 이 은사가 나타날 때, 당신이 스스로 만들 수도 없는 일들이 당신 앞에 나타난다: 필요한 재정이 정확하게 채워진다는지, 하나님이 준비하신 약속들이 생긴다든지 하는 일이다. 믿음의 은사는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해준다. 기적의 역사는 위험한 상황 자체를 변화시킨다. 바울은 폭풍가운데에서도 보호를 받았다. 반대로, 예수님은 폭풍을 잠잠케 하기 위해 폭풍을 꾸짖으셨다.

C.병고침의 은사 : 그리스 원어에서은사들:치유들은 복수이다. 이것은 유일하게 복수로 존재하는 성령의 은사이다. 기적은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치유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물론, 치유가 순간적으로 일어나면 기적이 되는 것이다-역자주).
                                        
VI.영감의 은사들: 무언가를 말하는 은사들
A. 예언의 은사: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영감(고전 14:3). 삶의 방향등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B. 여러 종류의 방언들: 천사와 사람들의 언어들(고전 13:1). 개인적인 묵상과 공동체를 위한 방언의 은사에는 차이가 있다.  (고전 12:30; 14-2-4).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덕을 세우나니” (고전 14:2-4)

C. 방언 통역:  방언 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담을 해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