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셨다
A. 성령님은 교회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촉구하고 계신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계셨고 아버지의 사랑을 가족과 나누기를 원하셨다. 우리 마음의 부르짖음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메세지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견고한 진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8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7-9)
B.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교와 인격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들을 알기 위해 복음서를 공부함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우리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창세기 1장에 나타난 능력의 하나님이 또한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계신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C. 예수님은 그의 사역에 대한 주된 목적이 아버지를 알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셨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전반적으로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전능하신 창조주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심 앞에 떨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애정을 깨달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확신 을 갖고 설수 있다고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D.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은 그 분의 인격의 다양한 면들을 나타낸다. 성경은 300개 이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의 주된 초점은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사랑이 많으시고 깊은 관계를 맺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으로,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인격을 예수님은 강조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요 17:26)
E.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나타내셔서 첫계명을 첫자리로 회복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모든 마음과 힘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분인 것을 계시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F.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 만큼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신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치에 대한 계시이다.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 느끼시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 대해 느끼고 계신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더 증가시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더 커질수 없고 작아질수도 없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3)
G.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즐거워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 받아야만 만족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연약함 가운데서 해매는 우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느끼시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이 진리로 개혁된다. 아버지는 먼 훗날 천국에서 온전해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를 즐기는 분이 아니라 이 영적 여정중인 우리가 자라가며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시며 그대로를 즐기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H.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마음은 결코 평안을 경험할수 없다. 우리에게는 연약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고 즐거워하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I.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수치심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마비 되어있다. 수치의 삶은 죄의 삶으로 인도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앞에 더럽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더럽게 살 것이다. 우리 믿음의 싸움은 우리가 죄에 걸려 넘어졌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시는 가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 달려 있다.
J.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삶은 지옥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K.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는 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하늘나라에서 온전케 된 성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생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란 어려운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L.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하도록 도와 주신다. 우리를 통해 성령님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으신다. 아바는 아빠같이 친근한 용어이다. 존경을 표하면서도 사랑스럽고 친근한 용어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들과 딸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신다. 입양되었다는 것은 합법적으로 특권을 가진 위치를 말하며 가족의 이름과 부와 재산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M.양자로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허가증을 갖게 된다. 아바에 대한 계시는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인내하게 하고, 소망없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탄의 고소를 거절할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준비 과정을 통하여 그의 구원하심과 충만함을 경험케 된다.
N. 하나님의 사랑의 바다는 우리 마음이 부드러워짐과, 우리 내면의 갈망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포함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이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7-19)
II.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신실한 자로 보시며 우리를 기뻐 하신다
A. 예수님께서 친히 대가를 치루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로서 확신을 갖고 그 앞에 설수 있게 되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17-21)
B. 하나님은 반항과 영적 미성숙을 혼동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시지만 믿는 자들만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는 즉시 우리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려고 하는 찰나에, 성숙을 이루기 훨씬 전에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신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4-7)
C.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성숙함을 이루기 훨씬 전에,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며 나가기 시작할때 우리를 향하여 미소를 지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자 하는 진정한 영혼의 울부짖음을 보신다.
D. 신실한 사람들이나 반항하는 사람들 모두 진흙탕에서 헤맬 때가 있다 .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다르다. 우리의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도(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도를 보고 우리를 판단하신다.
E.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2 가지의 확신을 갖기를 원하신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연약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고,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사랑을 거짓사랑이라 멸시치 않으시고 순전한 사랑으로 받으신다는 확신이다.
F. 양은 진흙탕을 나오기 위해 몸부림 친다. 반면에 돼지는 진흙탕으로 들어가려고 몸부림 친다. 구약시대의 법은 깨끗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양도, 돼지도 모두 진흙탕에 빠질때가 있다.
G.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진정 노력하지만 그 사랑은 흠있고 불완전하다.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질 수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렘 17:9). 어느 누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죄의 깊이를 측량할수 있겠는가?
H. 예수님은 탕자들이 회개하는 바로 그 즉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새롭게 회개했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탕자는 그의 삶에 있어 아직도 많은 부분에 변화가 필요한 상태이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17-20)
I. 하나님은 탕자들이 회개하는 그 즉시 그들을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신다.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오는 바로 그 날, 탕자의 손에 가락지를 끼우시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심으로 이 사실을 입증해 주셨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 15:21-24)
J. 이 탕자 비유의 주된 초점은 유산을 탕진해 버린 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얻게 된 아버지에게 있다.
K.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한 후에, 다시 일등 시민으로 하나님과 새로운 시작을 가질수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한 후에 “지움 버튼”을 누르면 된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렘애 3:22-23)
L.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연약함 가운데서도 진정으로 회개하며 나아가는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그 사실안에서 확신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분께 달려가게 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믹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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