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2011

사는 것이 힘들고 의욕이 없어졌는가?

성령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살아 있는 영적인 그 무엇이 그들 안에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떠나 있기 때문에 의욕도 없고 에너지도 없으며 좌절 가운데 빠진다.

마귀는 하나님 백성이 죄를 지어 순식간에 넘어지게도 하지만, 서서히 무너지게도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 사람이 성령님과의 만남을 점점 덜 원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령님과 멀어지면 그 속에 있는 생기와 에너지가 다 사라져버리고 의기소침하고 우울증에 빠져버린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때부터 다시 살아난다. 의욕이 살아나고 생명이 살아난다.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 삶을 완전연소 시키신다. '완전연소'란 무엇인가? 산소의 공급이 충분한 상태에서 물질이 완전히 타면서 에너지가 다 나오는 것이다.

반면에 '불완전연소'란 무엇인가? 산소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질이 타면서 그을음이 나오고 에너지가 충분하게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만나면, 우리 인생이 완전연소 된다. 참된 나 자신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성령님 만나야지 자기 사명을 이룰 수 있다. 성령님 만나야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신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반면에 성령님 만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불발탄으로 살아가게 된다. 타다 만 숯덩이 인생이 된다.

우리는 정말 많은 잠재력과 은사를 가졌다. 청년이라면 대부분 적어도 건강 하나는 가지고 있다. 사지가 멀쩡하면 얼마든지 의욕적으로 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성령님을 만나지 못해 밤낮 우울해한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인생을 사는지 아는가?
왜 야성과 열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지 아는가?
성령님 만나지 못해서 진정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려라!

교회 사역을 하는 사람들 중에 걸핏하면 때려치운다는 사람들이 있다. 지휘도 못하겠다, 반주도 못하겠다, 교사도 못하겠다고 한다. 대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에 대해서 실망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이제껏 의지해온 것은 한마디로 사람에 대한 기대라는 말 아닌가.

"내가 이 부서에 가면 이 정도의 대우는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이 사람과 교제하면 이 사람으로부터 이 정도의 애정은 받을 줄 알았다. 그게 없다! 내가 이사람을 의지하면 이 사람도 나에게 이 정도의 신뢰를 보내줄 줄 알았다. 그게 없다! 내가 이 정도 하면 어느 정도의 칭찬과 격려가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없다! 진짜 없다!"

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기대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는 만큼 연약한 기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귀가 흔들면 백발백중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더 큰 외로움 가운데 있게 만드신다.

우리는 잘못된 기대를 끊어버리고 광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나의 도움이 없다는 고백이 나오기까지 훈련해야 한다. 이 훈련을 하지 않으면 사람 의지했다가 상처 입고 사람 의지했다가 또 상처 입는 일을 반복된다. 하나님 앞에서, 젊었을 때 하루빨리 이 악순환을 끊어내지 않으면 늙어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지금 당신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
적어도 저 사람만큼은 나를 위해 뛰어주겠지 기대하는가?
저 사람은 나의 든든한 백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그것을 무너뜨려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대한 기대는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구하기 원하신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버리면 버릴수록 좋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믿음이 깊어진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사람이 된다"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다 없애고 오직 하나님만 붙드는 인생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다면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거다.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단지 연약함으로 간주한다. 시간이 없고 다른 온갖 것에 신경을 쓰느라 기도하지 못한다고 합리화해버리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큰 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것을 진정 큰 죄로 여기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12:23)

거룩하고 지극히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고, 그 교제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체험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자기 아들을 통해 구속(救贖)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면 최고의 영광과 구원을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하늘의 특권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 중에 기도하기 위해 하루에 5분 정도만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시간이 없고 기도할 마음도 별로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30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 그들이 전혀 기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그들은 매일 식사 기도 정도는 한다)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최고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표시이다.

당신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시간을 낼 수 없다고 감히 말하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런 죄가 드러난다면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처럼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6:5). 
"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도하지 않는 이 무서운 죄를 용서하소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이 아직도 육신의 세력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기도는 생명의 맥박이다. 
의사는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듣고 심장의 상태를 진단한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중병에 결려 지극히 약해졌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불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할 사명을 교회에 주셨기 때문에 마땅히 교회가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알려야 함에도 그들에게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그들이 몸으로는 일하면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연구하고 예배드리고 성실하게 봉사하지만, 쉬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성령과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눅24:49)을 분명히 약속한다.

능력 있는 영적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