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아 2:8-3:11 개관
A. 예수님은 신부가 그분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신부를 안전지대로부터 불러내어서 산꼭대기를 향하도록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그녀 없이 산으로 돌아 가라고 합니다.
8그가 산에서 달리고 ...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 일어나서 함께 가자 ... 17내 사랑하는 자야 돌아와서(turn:돌아가서) ... 사슴과 같을지라 (아 2:8-10, 17)
B. 하나님께서 그분의 명백한 임재를 거두심으로써 그녀는 그분의 사랑의 징계를 경험합니다. 그녀는 그분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화나신 것이 아니라 질투하기까지 더욱 깊은 동역의 관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히 12:6).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아 3:1)
C. 아 3:6-11에서 신부가 산들을 직면할 때, 그녀를 100번의 순종으로 걸어갈 수 있게 만드는, 신랑이신 왕으로서의 주님의 안전한 지도력에 대한 계시를 얻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그녀의 사랑을 갈망하는 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 마음의 왕으로서 사랑으로 왕관을 씌워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의 “결혼 왕관”은 그분을 기쁘게 합니다. 그분은 그 왕관을 최고의 것으로 원하십니다.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아 3:11)
II. 아 4:1-8의 개관
1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 네 눈이 비둘기 같고 ... 네 머리털은 염소 떼 같구나 2네 이는 ... 털 깎인 암양 .. 같구나 3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4네 목은 다윗의 망대와 같고 5네 두 유방은 어린 사슴 같구나 ... 6내가 ... 산으로 가리라 7나의 사랑 너는 (모든 것이)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8내 신부야 ...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 꼭대기에서부터 표범산에서 내려 오너라 (아4:1-8)
A. 하나님의 징계의 계절 후에, 신부는 여전히 믿음과 순종에 있어서 성숙해 가는 과정 가운데 있지만, 예수님은 신부를 부르시며 어여쁘고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아 4:1-5에서 예수님은 어린 신부의 삶에서 움트고 있는 8가지 미덕을 예언적으로 확증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의 참소를 극복하게 하시는 확증을 통하여,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무장시켜 주십니다(계 12:10).
B. 이 단락은 하나님이 그분의 신부 안에서 분출되기 원하시는 8가지의 성품 묘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상징은 성경을 통해 개발되어 갑니다.
비둘기의 눈 : 한 마음의 전심과 계시의 눈
염소 같은 머리털 : 하나님을 향한 헌신
목욕한 암양 같은 이 : 말씀의 고기를 씹는 것
홍색 실 같은 입 : 구속된 말
입의 입맞춤 : 하나님과의 친밀감
가려진 성전들(뺨/표정) : 하나님의 은혜에 영향 받은 감정
다윗의 망대 같은 목 :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정함
어린 사슴 같은 유방 : 다른 이들을 세워주고 먹이는 능력
III. 예수님께 마음을 정함
A. 아 4:1-5에서 우리는 신랑이며 왕이신 그분의 소중히 여기시는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녀는 그분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기로 마음을 정함으로써 반응합니다(아 4:6-8).
B. 예수님은 소중히 여기심으로써 우리를 씻기시고 교회 안에 그분의 영광을 풀어 놓으십니다.
26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 29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cherish; 소중히 여기시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엡 5:26-29)
C. 연약한 신자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주요한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께서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분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죄의 더러움과 수치심을 제거하십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겨진다고 느낄 때,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가운데 우리는 확신 있고 담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 안에서 다윗 왕은 자신의 삶의 능력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소중히 여기시는 마음은 아가서의 가장 탁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시 18:35)
D. 예수님은 우리의 삶 안에서 싹이 나고 있는 미덕들을 확증해 주시면서, 우리를 그분의 신부로서 존중하시고 친절과 애정으로 대우하심으로써, 우리를 소중히 여겨(cherish) 주십니다.
E. 예수님은 우리가 투쟁하는 문제들에 의해 우리를 정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실패를 넘어서 더 큰 것을 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미 달성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미덕의 씨앗들과 우리의 마음을 정하고 있는 것에 의해 우리를 정의하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자원하는 영을 보십니다(마 26:41).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려는 갈망에 의해 우리를 정의하십니다.
F.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시는지를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이 어떤지를 결정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 안에서 성품의 씨앗들을 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여정의 마지막을 확실하게 아십니다.
G. 이스라엘이 강한 미디안에게 공격을 받을 때, 기드온은 두려움으로 포도주 틀에 숨었습니다(삿 6장).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기드온이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주님은 아직은 그 안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은 믿음의 씨앗과 용기를 보셨습니다. 주님은 미래에 그가 될 모습에 의해서 기드온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은 계속 전진했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지도자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H. 예수님은 베드로가 두려움 안에서 그분을 부인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반석(움직여 질 수 없는 존재:마 16:18)으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외적으로 타협자처럼 보였습니다. 베드로의 불안정성은 다시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 안에서 용기, 안정성, 신실함의 씨앗을 보셨고, 그에게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 2:11-13)
I. 우리는 믿음 안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던 아브라함의 삶에서, 주님의 “세우시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0)
J.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서, 다윗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며 그분의 목적을 성취할 것이라고 증거하시고 계십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행 13:22, 36)
K. 주님은 진실한 신자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로 부르십니다(요13:23; 19:26; 20:2; 21:7, 20).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13:23)
L. 사탄은 우리를 가망성 없는 위선자라고 부릅니다. 원수는 많은 이들을 정죄와 고소로 계속 공격합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을 가망성 없는 위선자라고 느끼게 해서 스스로 포기해 버리기를 원합니다. 그는 우리가 미성숙과 반역을 혼동하여 포기하기를 원합니다.
M. 많은 이들은 정죄와 무가치함의 불들과 싸우는데에 감정적 에너지를 지나치게 허비합니다. 정죄와 거절의 짐은 스스로를 다루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실패감와 수치심으로 사로잡히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주님과 함께 효과적으로 걸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N.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의 의도를 순종과 믿음에 두기 보다는, 성숙한 단계를 얼마나 달성했느냐를 측정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우리가 자신이 달성한 성숙을 측정하려고 할 때, 영적인 면에서 두가지가 취약해집니다.
1. 우리가 자신을 좋다고 판단하면, 교만하게 되고 실패한 다른 이들을 비판하게 됩니다.
2. 우리가 실패한다면, 정죄감을 느끼고 다 끝난 것 같이 느끼게 됩니다.
O.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감정(아름다움) 위에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믿고) 그분을 온전히 사랑하려는 우리 마음의 의도에 놓여 져야 합니다. 주님은 그분의 때에 우리로 하여금 성숙한 승리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P.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한 남자가 아내나 자녀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징계는 그분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가운데 주어집니다. 부모들은 종종 자녀들 안에 움트고 있는 미덕들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헌신과 위대함의 싹 대신 실패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IV. 우리는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아름답다
A. 여인에 대한 징계의 시간(아3:1-2)이 끝난 직후에, 주님은 그녀가 그분에게 아름답다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2번이나 반복하시면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 계시를 강조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앞에서 이 신성한 나팔을 부시면서, “보아라! 너는 아름답고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우리가 아름답고 감정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계시에 의해, 우리는 변화됩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아4:1)
B. 진실한 신자가 연약함 중에서도 하나님에게 아름답다는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장해가는 기초입니다. ‘어여쁘다’(fair)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성경에서 ‘아름답다’(beautiful)고 번역됩니다. 이것은 아가서의 우선되는 주제들 중에 하나입니다(아1:8,15,16; 2:10,13,14; 4:1,7,10;6:4,10; 7:1).
C. 아가서를 통해 우리가 아름답다는 주제가 발전되어 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D. 우리를 사랑하심 안에서 기쁨으로 충만하시고(아3:11), 우리를 아름답게 보시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우리가 알 때, 우리는 일어나서 모든 희생을 품어 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산이라도 오르며 어떤 장애물도 직면하게 하는 능력을 줄 것입니다.
E.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삶 안에서 8가지 “싹트는 미덕들”을 확증해 주십니다. 각각의 성품은 오직 씨앗의 형태로 시작되고, 확증에 의해 드러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이 우리 마음 안에서 보시는 사랑과 순종의 씨앗을 확증하심으로써, 사탄의 참소들에 대항하여 우리를 무장시키십니다.
F. 예수님은 그녀의 삶의 8가지 다른 특성들로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셔서, 우리가 그것 안으로 자라가게 하십니다. 모든 구절은 특정한 방식으로 마음에 초점을 맞춘 하나님의 시적 로맨스입니다. 이 8가지 미덕들은 우리에게 부여되는 주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한 반영이고,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그분을 사랑할 때 예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아 3:11). 이 8가지 미덕들은 또한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G. 그녀는 염소를 기르고 포도원을 지켰기 때문에, 왕은 그녀에게 익숙한 농부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모든 상징은 성경에 의해 해석됩니다.
H. 왕은 그녀에게 산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점까지는 그녀가 산이 아니라 도시로 일어나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아3:2). 신부는 아 5-8장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그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저 “예!”라고 답할 뿐입니다. 주님은 그녀가 앞으로 성숙해질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 “예!”를 인정하십니다.
I. 3가지가 함께 작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100% 순종의 헌신을 드리게 합니다(아4:6). 첫째, 그녀는 거룩한 징계를 받습니다(아 3:1-2). 둘째, 그녀는 예수님의 새로운 계시를 받습니다(아3:6-11). 셋째, 그녀는 예수님의 눈에 자신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받습니다(아 4:1-5).
V. 눈 : 영적인 이해와 계시 (아 4:1)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아 4:1)
A. 눈은 영적인 통찰력을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이해력을 가진 눈을 언급했습니다(엡1:18). 보는 것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관문이기 때문에 보는 것이 바울의 우선순위였습니다(빌 3:3-10; 고후 3:18).
B. 비둘기의 눈은 순결과 충성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상징됩니다. 비둘기는 짝이 죽으면 다시 짝짓기를 하지 않습니다. 비둘기는 충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둘기의 눈은 두 사물에 초점을 둘 수 없고, 주변적인 시야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 마음(mind)을 뜻합니다. 한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며 헌신하다가, 정죄감에 사로잡히거나 타협해 버리는 대신에, 그녀는 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음욕, 실패나 성공이 아니라, 그분에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C. 그녀는 자신이 받은 계시 안에서 겸손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베일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의 어떤 측면들을 감추어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은밀한 삶 즉 베일 속에 그녀의 삶은 개인적인 부분입니다. 풍성한 계시는 바울이 자고하도록 유혹했습니다(고후12:7-9). 바울은 지식은 종종 교만으로 인도된다고 가르쳤습니다(고전 8:1).
VI. 머리털 : 예수님을 향한 헌신 (아 4:1)
A. 신부의 머리털은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헌신을 말합니다. 나실인의 머리털은 서원과 헌신의 외적인 표시였습니다(민6장). 나실인의 맹세를 한 사람은 머리털을 자를 수 없었습니다. 삼손은 머리털이 잘렸고 헌신의 서원을 깨뜨렸으며 결국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머리털은 또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바울은 여인의 긴 머리는 그녀의 영광을 보여 주며 하나님의 권위에 헌신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11:5, 6, 15).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아4:1)
B. 염소 떼로 나타낸 것처럼 여인은 위엄 있고 당당하게 걷습니다.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1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 할 수 없는 왕이니(잠 30:29-31)
C. 우리는 위엄을 가지고 혹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오는 당당함을 가지고, 헌신의 길을 걸어 갑니다. 헌신이 자아에 집중하는 육신적인 열정으로 부패되기 쉽다는 점은 모든 경우에 공통적입니다.
D. 그녀의 당당한 머리털 즉 헌신은 (성경으로부터) 온전하게 공급받은 결과입니다. 길르앗 산기슭의 염소는 풍성하게 먹여졌습니다. 염소가 잘 먹는 곳은 윤택한 장소들이 많은 기름진 구역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 가운데 온전히 공급받았습니다.
VII. 이 : 그녀의 말씀 안에서의 삶 (아 4: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아4:2)
A. 이는 고기를 씹을 수 있고 그래서 양분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어린아이는 고기를 씹을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이들은 말씀의 고기를 받을 수 없습니다(고전 3:1-2; 히 5:12-14). 이 미덕은 하나님의 말씀의 단단한 것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녀의 이에 대한 4가지 묘사는 농부의 관점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녀의 이는 강하고 풍성하고 효과적입니다.
B. 깎지 않은 양의 털은 불규칙(불균형)하게 자랍니다. 불규칙한 털은 육신적인 열정을 말합니다. 사독 제사장은 양털 옷은 스스로 만족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양털 옷 대신 베옷을 입어야 했습니다(겔44:15-18). 우리의 육신적인 열정은 성령님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합니다.
C. 목욕장에서 나왔다는 것은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해졌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의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양과 같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깨끗게 합니다(엡 5:26).
D. 말씀 안에서 부지런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녀의 이는 “새끼 없는 것이 하나도 없이 쌍태를 낳은 털 깎인 암양”과 같습니다. “쌍태를 낳았다는 것”은 풍성한 수확을 뜻합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목욕장에서 나온 양과 같이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이의 깨끗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헌신을 뜻합니다(딤전 4:6-16). 아 4:1-2은 아 6:5-6과 같이 그녀의 눈, 머리털, 이 그리고 뺨을 묘사합니다.
VIII. 입술 : 경건하고 기름부음 받은 말 (아 4:3)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아 4:3a)
A. 그녀의 입술은 그녀의 말을 의미합니다. 홍색 실과 같은 그녀의 말은 다른 이들을 속량하는 말을 뜻합니다. 홍색 실은 예수님의 보혈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속량하심을 말합니다. 정탐꾼이 여리고에 갔을 때, 라합은 속량 받기 위해 창문에 리본을 달았습니다(수2:21). 모세는 붉은 양털로 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렸습니다(히 9:19).
B. 홍색 실은 우리 입에 영향을 주어서, 우리가 세워주는 방식으로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골 4:6). 온전한 말은 우리 삶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엡 4:29; 약 2:3).
IX. 입 : 그녀의 하나님과의 친밀감 (아 4:3)
네 입은 어여쁘고 (아 4:3b)
A. 아1:2에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언급하는 그분의 입맞춤의 맥락에서, 입이 아가서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는 그분에게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아가서에서 입이 친밀감을 의미하는 것같이 입술은 그러한 언변을 뜻합니다. 왕이 여인을 칭찬할 때 반복적이거나 장황하지 않습니다.
B. 우리의 사랑을 예수님께 드릴 때, 그것은 흔히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미성숙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랑스럽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가지는 교제를 즐거워하십니다.
X. 뺨 혹은 표정 : 그녀의 감정적인 성격 (아 4:3)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아 4:3c,d)
A. 빰 혹은 표정은 사람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성전”(영어 성경에서)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표정” 혹은 “뺨”으로 번역됩니다. 많은 번역본들이 성전 대신에 뺨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표정이나 뺨에 나타납니다. 우리는 표정이나 뺨에서 분노, 기쁨, 즐거움, 슬픔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감정을 보여 주는 창입니다.
B. 그녀의 거룩한 감정은 달콤한 석류 한쪽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콤합니다. 석류는 이스라엘에서 일반적인 달콤한 과일입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옷이나 에봇에도 나타납니다.
C. 석류를 쪼개면 그 속은 붉습니다. 붉은 것은 그녀의 온순함, 즉 수치스러운 일들로 얼굴이 붉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그녀의 성향을 뜻합니다.
D. 창녀는 불순하게 행하여도 얼굴을 붉히지 않습니다. 붉은 용모는 수치스러운 일들에 대해 민감한 것(얼굴을 붉혀서 빨개지는 것)을 뜻합니다. 너울(베일) 속이라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그녀의 은밀한 삶도 온순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그녀의 진심입니다. 외모로 단순하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온순함이 삶 속에 감추어 있습니다.
XI. 목 : 그녀의 단호한 의지 (아 4:4)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아 4:4)
A. 성경에서 목은 흔히 목을 곧게 하거나(저항하는 의미) 혹은 복종하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정복당한 적의 목을 밟을 때, 그것은 그들의 복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B. 신부의 의지는 그 마음을 계속해서 하나님께 두는 다윗의 마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두 마음과 반대적인 것입니다.
C. 다윗의 망대는 강하고 높아서 예루살렘 도시를 지키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녀의 선택은 다윗의 망대처럼 강력합니다.
D. 전쟁을 위해 무기고에서 무기를 보관했습니다(느 3:19, 25). 하나님께 순종하는 단호한 의지는 사탄의 왕국을 대적하는 무기의 저장소입니다. 방패는 흔히 팔을 보호하는 작고 둥근 것입니다. 1000개의 방패는 적에 대한 풍부한 보호를 뜻합니다. 그녀의 의지는 전쟁을 통해 숙련된 1000명의 용사의 방패와 같습니다. 이것들은 적으로부터 보호를 제공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보호하는데 사용되는 믿음의 방패를 뜻합니다(엡6:16).
E. 예수님께 복종하기로 한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는 영적 승리에 있어서 중요한 측면입니다. 하나님께 “예!”라고 말하기 위해 우리의 의지를 훈련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예!”라고 말하게 하시면서까지, 그분 자신의 속량의 한계선을 침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XII. 유방 : 다른 이들을 양육하는 능력 (아 4: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아 4:5)
A. 유방은 엄마가 아기를 젖 먹이듯이, 다른 이들을 양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 사슴은 젊음이 가득찬 동물입니다. 그녀의 유방은 쌍태의 어린 사슴과 같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젖을 먹이면서, 다른 이들을 돌보는 두 갑절의 능력을 뜻합니다. 어린 사슴 같은 유방은 결코 마르지 않는 젊은 엄마의 젖을 뜻합니다. 이것은 늙은 여인과 반대적인 것입니다.
B. 여인의 사역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백합화 가운데서 먹는 어린 사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그녀를 은으로 만든 장신구, 즉 사역 가운데 준비된 자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아 1:10).
XIII. 그녀의 헌신은 영적 성숙의 기초이다 (아 4: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아 4:6)
A. 그녀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러한 확증에 대해서, 십자가를 껴안음으로써 즉 몰약 산에 가기로 헌신함으로써 반응합니다. 산은 그녀의 순종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뜻합니다(아 2:8-9).
B. 몰약은 비싸고 귀중하며 향기를 내는 장례 향품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신에게는 장례 향품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영에게는 향기와 같습니다. 그것은 (안락함이 아닌) 몰약의 산입니다. 그곳은 산(mountain)이요 작은 산(hill; 언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 몰약의 산(the mountain of myrrh)으로 오르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면서 산을 오르게 됩니다(눅 9:26).
C. 성경에서 유향 즉 향료는 기도를 말합니다(시 141:2; 계 5:8). 우리는 유향의 작은 산(hill)에 올라, 몰약의 산(mountain)을 오를 힘을 부여 받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시험에 직면할 힘을 공급받도록 기도하라고 훈계하셨습니다(마 26:40-41). 몰약 산은 유향의 작은 산에서 살지 않고는 오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은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맞이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작은 산을 올라간 만큼 부인의 산을 오를 수 있습니다.
D. 유향의 작은 산은 몰약의 산보다는 작은 것입니다. 기도의 작은 양으로도 보다 큰 산을 오르도록 우리를 준비시키는데 충분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효과는 산을 오르는 우리의 노력을 초월합니다. 짧은 기도는 우리를 멀리까지 가게 합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로부터 우리는 훨씬 많은 유익을 받게 됩니다.
E. 여인은 안전지대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기로 즉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걸어가기로 굳게 결심합니다. “내가 가리라” 이 단어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스럽습니까?
F. 그녀는 그것을 “나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하신 유일한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자로 잰 듯한 여정으로 부르십니다. 몰약의 산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독특한 길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특별한 고난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G. 그녀는 모든 타협이 다 지나갈 때까지 즉 날이 밝아오고 어둠이 사라지기까지, 계속해서 몰약의 산으로 나아갈 것을 헌신합니다. 어둠은 작은 여우처럼(아2:15) 약함과 타협이 있는 영역을 뜻합니다. 아침 빛은 새로운 날 즉 밤에 이루어진 노력들 끝에 승리의 계절을 가져다 줍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살아갈 영원의 시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보다 큰 빛 가운데 살아가게 될 승리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XIV. 예수님의 새로운 확증의 말씀 (아 4:7)
나의 사랑 너는 (모든 것이)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아 4:7)
A. 그분은 아가서 전체에서 그녀를 13번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아가서의 이 구절까지 주님은 그녀를 “아름답다”라거나 “어여쁘다”고 8번 부르셨습니다. “모든 것이 어여쁘다”라는 단어는 NAS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번역했습니다. 그분은 아가서의 처음 표현에 “모든 것이”라는 말을 첨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산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오직 “예!”만을 말합니다. 그녀가 아직 산으로 간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그녀 안에서 아무 흠 곧 의도적으로 그분의 리더십을 거역하는 어떤 영역도 보실 수 없으십니다.
B. 그녀는 2가지 시험(test)을 직면하기 전까지 산으로 가지 않습니다(아 5:2-8). 그분은 십자가를 껴안는 그녀의 자원함을 보십니다. 주님은 그녀의 약한 육신이나 성숙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자원하는 심령을 통해서 그녀를 정의하십니다.
XV. 영적 전쟁을 향한 부르심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아 4:8)
A. 아가서에서 처음으로 왕께서 그녀를 신부로 부르십니다. 산으로 가려는 그녀의 헌신과 함께, 그녀는 이제 신부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녀는 이제 충성스러운 신부처럼 마음을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4장들에서 우리는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B. 예수님의 유업은 영원한 동반자 즉 사랑 안에서 그분과 함께 멍에를 지는 사랑으로 가득한 신부입니다. 십자가는 그 자체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신부를, 아버지께 가정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순종 안에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계 22:17).
C. 예수님은 그녀를 초청하시어, 그분과 함께 영적 전쟁의 장소인 레바논의 산에서부터 그분을 따라서, 그분께서 가시려 하시는 어떤 곳이든 함께 가게 하십니다. 그분은 그녀가 그분을 따라 겟세마네로 가도록 부르십니다(아 5:2-7).
D. 그녀는 이제 산으로 가자고 하셨던 처음의 도전에 순종합니다(아2:10, 13). 솔로몬은 북이스라엘의 레바논 산지 숲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자신의 신부와 함께 갔습니다. 레바논은 향기로운 나무로 가득했습니다(4:11; 호14:6). 그 영광은 사 35:2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E. 레바논은 지정학적 요충지였고 산악 지대였습니다. 스닐과 헤르몬은 레바논 산지 내에 있는 가장 높은 다른 두 산봉우리입니다. 헤르몬 산은 요단강 동편에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아모리 사람들에 의해 스닐 산으로 불려졌습니다. 아마나 산은 성경에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 헤르몬 산악지대의 두 부분이었던 스닐 산과 헤르몬 산(신3:9; 4:48; 대상5:23)에서 옆에 있었던 것으로 믿어집니다.
F. 그녀는 아마나, 스닐, 헤르몬의 산꼭대기에서 즉 그분의 관점(하늘의 관점)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적 관점에서 어려움을 바라보면서 담대함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붙잡아야 하는 그분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G. 이스라엘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암몬 족속을 정복한 후에, 그들은 이 동쪽 산들에 올라서서 요단 강 서쪽으로 펼쳐진 약속의 땅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두 아모리 왕들(옥과 시혼)을 정복한 후에 이 산에 올랐습니다(신 3:1-11). 그녀는 영적 전쟁을 약속하고 하늘의 처소에 앉은 전쟁하는 신부입니다.
H. 산꼭대기에는 사자와 표범이 있습니다. 인간들을 삼켜버리는 동물들인 사자와 표범을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삼켜 버리려고 하는 으르렁대는 사자입니다(벧전 5:8). 이것은 영적 전쟁을 말합니다(엡 6:10-12).
I. “삼켜 버림의 산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며시 접근하는 맹수들이 있습니다(시 76:4). 하박국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레바논의 산들에 약탈하는 짐승들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합 2:17)
<출처:선두주자커뮤니케션/IHOP번역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