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2010

제14강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는 징계 (아 3:1-5)

I. 아가서 2:8-17 개관
A.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산들을 정복하신 왕, "만유의 주"라는 계시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산들(장애물들)을 승리로 뛰어넘은 노루와 같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 2:8-9a)

B. 예수님은 일어나 그와 산 위(높은 지대)로 함께 가자고 그녀를 부르셨습니다. 이는 새로운 차원의 믿음과 순종이 요구되는 새 과제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그녀의 안전과 안락함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처음의 기도에서 예수님께 "나를 이끄소서! 우리가 당신을 따라 달려가겠습니다"(1:4)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녀를 안전지대에서 나와 성령 안에 새로운 장소로 들어가도록 부르셔서 더 깊은 동반자 관계를 경험하게 하려 하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10)

C. 여인은 일어나 그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고 대신 예수님께 그녀 없이 산으로 돌아가라고 말씀 드립니다. 그녀는 거역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함). 아침에 날이 밝아와 새 빛이 나타날 때 그녀 삶의 어두운 영역이 사라져 갑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새벽이 밝아오고 어둠이 사라질 때) 돌아와서(turn;돌아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 2:17)

II. 아가서 3:1-5 개요
A.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여인에게 주님이 주시는 응답은 사랑으로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느낄 수 있는 임재가 그 마음에서 거두어짐으로 징계(훈련)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화가 나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더 깊은 동반자로의 관계 안에서 그와 함께 걷는 성숙한 신부로서 예수님의 가치관을 함께 소유하게 되길 시기하기까지 원하시는 것입니다.

B.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성숙한 신부로 부족함 없게 하려 하십니다. 그녀가 영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도록 이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얽매 종노릇하게 하는 것들에서 손을 떼게 하십니다. 순종의 대가는 큽니다. 하지만 불순종의 대가는 더 큽니다. 성령의 지도력에 순종하는 걸 무시해 버리는 것은 큰 비용을 지불하게 합니다.

C. 주님은 몇 가지 이유로 그의 사랑하는 자의 마음에서 그의 임재에 대한 감각을 거두어 가십니다.

첫 번째로, 성령님의 지도력을 더 깊이 받아들이길 거절하는 타협의 심각성을 경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를 겸손케 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인식하게 하려 합니다.
세 번째로는 우리 안에 예수님을 향한 깊은 배고픔을 일깨우시기 위해서입니다.

D.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는 그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향한 열심, 시기를 나타내실 것에 대해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 마음으로 순종하여 살아갈 것을 시기하기까지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할 것이며, 우리의 위대함으로 끝맺게 할 것임을 열정적으로 역설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 4:5)

III.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거절하시는 것과 다르다
A. 아가서의 메시지는 우리의 연약함 중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영역들을 고쳐 우리 안에 사랑(거룩함)을 막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 합니다.

...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셔서)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 12:10)

B. 주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때, 우리 삶에 그가 기뻐하지 않는 영역에 대한 불쾌함을 나타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한 인격체로서 우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인격체로 멸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떤 한 행동에 대해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십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하나님의 거절로 잘못 알지만, 이것은 그의 사랑의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그가 징계하는 자는 기뻐하십니다(12:6).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 3:12)

C. 예수님은 회개의 필요성으로 믿는자들을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꾸짖고 회개하도록 부르십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 사람들을 그의 보좌에 앉도록 초청합니다.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3:19, 21)

D. 징계 받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돌보시며 우리를 포기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랜기간 죄와  "함께 머물러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죄에게 이 사람들을 넘겨주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가 우리에 대해 포기치 않으신다는 증거입니다(1:24-2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 ( 1:24)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1:32)

E. 하나님은 그가 징계하는 자들의 고통을 느끼시며 이들을 그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로 계속 여기십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 그의 사랑과 ... 구원하시고 ... ( 63:9)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 12:7)

F. 우리가 정직하게 그리고 철저히 우리 마음의 죄를 직면하는 것을 무시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덜 사랑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손해를 거듭하게 됩니다. 우리 구원의 기쁨, 계시의 영, 경건한 교제, 그리고 영원한 상급 받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G. 하나님은 한동안 부드러운 인내로 회개치 않는 믿는 자들을 대하십니다. 그의 인내하심을 그의 인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세벨과 그 제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었습니다.

21또 내가 그(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 2:21,22)

H.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회개하도록 일하실 때, 그의 사랑 안에서 끈기 있게 우리와 함께 오래도록 고통 받으십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 2:4)

IV. 하나님의 드러나는 임재가 여인에게서 거두어지다
A. 여인은 하나님을 찾으나 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가서 1-2장 전체에서는 그를 찾을 때 굉장한 달콤함으로 그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1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2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 3:1-2)

B. 여기 우리 영적인 삶 속에서 맞게 되는 네 가지 다른 "밤들"이 있습니다. 이 밤에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1. 밤 시간 : 이 시간들의 불편함을 참고라도 그를 알고자 하는 경건한 절박함 때문에 우리는  종종 밤 시간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2.고통의 밤 : 다윗이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치고, 요셉이 지하 감옥에 있었던 것 같은 어려운 환경가운데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결론지어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3. 유혹의 밤 : 실패와 어두움의 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찾기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4. 영혼의 어두운 밤 : 중세시대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순종의 시간 동안에 일시적으로 거두어 진 것을 나타내는 영혼의 어두운 밤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5:6).

C. 여인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산으로 올랐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그들의 침상"(1:16,3:7)과 대조를 이루는 "그녀의 침상"에 있습니다. 그들의 동반자 관계는 중단되었습니다.

D. 그녀의 마음은 갈등과 분투 중에도 사랑하는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순종하길 두려하 는 것 때문에 그녀를 가망성 없는 위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에도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사랑하는 자"라고 계속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닿지 못할 것 같은 믿음/순종이라는 하나의 산과 마주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산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느낍니다. 산들 사이사이에는 골짜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골짜기에 있는 하나님의 연인입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 3:1)

E. 그녀는 과거에 했던 기도와 말씀묵상 같은 친숙한 영적인 훈련들을 통해 하나님 찾기를 계속합니다(2:3-5). 지금은 예수님이 새로운 차원의 순종을 요구하고 계시기에 그의 임재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기도와 금식은 순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 8:4)

F. 우리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때, 우리가 그를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 4:8)

3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 24:3-4)

G.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우리로부터 숨기시면서 우리가 자신을 재촉하여 하나님을 붙들기를 요구하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 64: 7)

H. 예레미야 20:7 원리 : 예레미야의 젊은 시절에 주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그에게 나타내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지도자들에게 예언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는 예언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안에 불을 타오르게 했습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게 하셨고, 나는 이제 당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당신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가서 1-2장에서 주님은 그 여인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속이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속임을)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V. 젊은 신부는 기도에 순종을 더한다
2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3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A. 그 여인은 아 2:10에서 명령 받은 대로 이제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임재를 뒤로 물러가게 하셔서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열심히 찾게 하시고, 두려움과 불신감과 타협으로부터 우리를 이끌어 내십니다. 우리가 일어나 새로운 영역의 순종으로 나아갈 때까지 주님은 머물러 계십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주님과 동반자가 되어 일어나는 것이 유일한 안전의 장소입니다.

B.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고통은 그녀가 자신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안전 지대를 떠날 수 있는 동기를 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얼굴을 숨기심으로 우리의 마음에 열심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분의 얼굴을 숨기십니다. 우리가 만족스러웠던 이전 계절을 기억할 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더 큰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녀는 기도에 순종을 더합니다. 기도만으로는 그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을 이해했습니다.

C. 그녀는 일어나서 도시 근처에 거리와 광장 사이에 사람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갑니다. 이곳은 안락한 침대와 벽의 안전함을 벗어나 위기와 갈등과 위험과 증가된 영적 전쟁이 있는 곳입니다(1:16; 2:9). 

D. 야곱은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32:24-30). 야곱은 그가 하나님을 움직이기 전까지는 포기하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돌파가 올 때까지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의 상징입니다. 호세아는 야곱을 눈물과 간구로 하나님을 열심히 구하는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12:2-6).

E. 나의 한 친구(Michael Sullivant)는 그의 아들과 레슬링하면서 그 아들이 그를 바닥에 꼼짝 못하게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웃으면서 “내가 아빠를 이겼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친구는 그의 아들과 레슬링하면서 기쁨을 느꼈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내가 내 자신이 너의 의해서 밀어붙여지게 했을 때,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한단다.” 우리가 하나님과 씨름해서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을 향한 사람 안에서 성장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기쁩니다.

VI. 그녀의 순종으로 예수님의 임재가 돌아오다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 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 3:4)

A. 그녀가 일어나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찾았을 때 그분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애정에 매여서 우리의 열심에 응답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오래 동안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B. 영적 굶주림의 원리 : 우리가 말씀 안에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면, 우리는 적절한 때에 그것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 없이 살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어떤 것을 너무나도 원하여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면, 우리는 적절한 때에 그것을 소유할 것입니다.

C. 우리는 영적으로 지루하고 죄와 불신 안에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산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우리는 기름부음 안에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예수님께 순종하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36:26).

D. 그녀는 예수님을 붙잡으려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데, 그것은 영적인 싸움의 고통스런 계절로부터 나온 결단입니다. 그녀는 아가서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분을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E. 영적 혼란의 시기는 때로 우리 안에 “거룩한 폭력”을 생산해 내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붙잡게 하고 우리 삶에서 타협이 다시금 용납되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11:12).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결심을 합니다.

F. 그 여인은 가장 어려운 장소들로 나아가는 것에 순종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 ,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 3:4)

G. 그녀는 기름부음 받은 예수님의 대사입니다. 아버지의 선택하심의 도구인 그녀의 순종이 없다면 예수님이 가지 않으려 했던 곳으로, 그녀는 실제로 예수님을 데리고 갑니다. 아가서의 끝부분에서 그녀는 예수님을 모든 사람들에게로 데리고 갑니다( 8:2).

H. 어머니교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요 형제입니다( 12:46-50). 어머니 이스라엘은 속량 받은 자들을 태어나게 합니다( 12:7, 17). 예수님을 데리고 가기에 가장 어려운 곳은 흔히 친밀한 가족 관계 안에 있습니다.

I. 가정은 어떤 사람에게는 가정 어려운 곳을 대표하는데 그 이유는 매우 친근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그의 가정에서 존경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일어나라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J. 가정은 또한 작음의 장소를 대표합니다. 우리는 사역하기 위해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과 이웃에 있는 적은 사람들에게 가서 사역할 수 있습니다.

VII. 성령님은 우리를 전략적인 영적인 계절로 인도하신 ( 2:7)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 2:7)

A. 성령님은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각 개인의 영적인 삶 안에 전략적인 계절들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에 대한 새롭고 깊은 계시들 안에서 우리가 세워지기를 그분은 갈망하시는 계절들이 있습니다. 이 계절에 신부를 향한 성령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그녀가 잔칫집에서 사과와 포도를 먹으므로 말씀으로 더욱 깊어지는 때에, 그녀 안에 상사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2:3-5).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안에서 깊어지기 위하여 그들의 삶이 바쳐지는 계절들이 필요함을 알지 못합니다. 요한은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은 방식으로 이해하라고 들었습니다( 10:9-11).

B. 예루살렘의 딸들은 성령의 다양한 활동과 하나님 안에 다른 계절들에 대한 분별이 없는 신자들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계절에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으로 인해 신부의 마음을 가진 헌신된 자들을 방해하거나 가로막지 말라고 성령님은 다른 신자들에게 엄하게 부탁합니다. 우리는 아 2:8에서 분명하게 보여지는 것처럼 계절이 변할 때에 예수님이 우리를 방해하시는 것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당신의 방식에 대해서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힘을 얻고 새로워지기 위하여 침상에 앉아 있는 특별한 계절로부터 신부를 방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가지의 충고만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을 줄이고 사역 활동을 늘리라는 것입니다.

C. 솔로몬은 노루나 들사슴을 두고 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2:7). 노루나 사슴은 이 계절에 젊은 신부와 관계되는 것에 있어서 부드러움과 민감함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노루나 사슴은 민감한 성격을 갖고 있고 쉽게 깜짝 놀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쉽게 말씀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우리는 다른 계절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에 민감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D. "그것이 원하기 전에는“(Until it please)이라는 구절에서 히브리어로 “그것이”“그가”“그녀가”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NAS 번역본은 실제로 그 구절을 “그것이 원하기 전에는”이 아니라그녀가 원하기 전에는 사랑을 깨우지 말아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그가”라고 번역되었다면, 그것은 예루살렘의 딸들에 의해 흔들어지는 주님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럴 필요도 없고, 노루에 의해 상징되는 부드러움에 의해 보호될 필요도 없습니다. 방해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신부입니다.

E. 예수님은 “그녀가 원하기 전에 일으키거나 깨우지 말아라”(2:7; 3:5; 8:4)는 구절을 세 번 언급합니다. 8:4에서 그분은 “그녀를 방해하지 말아라”는 같은 구절을 사용합니다. 그분은 다른 두 번처럼 그녀를 감싸 안습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언급에서는 “들사슴을 두고”라는 구절은 뺍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미성숙하거나 쉽게 방해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4:14).

F. 성령님의 부탁은 그녀가 준비될 때까지는 움직이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G. 주님은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우리 각자가 만들어지는 여정을 갖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신자들에게 그녀를 방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징계의 의미를 손상시키는 성화되지 못한 긍휼과 잘못된 위로에 의해서 이러한 특별한 계절로부터 그녀가 방해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출처:선두주자커뮤니케션/IHOP번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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