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2010

인생의 가치와 존재목적(3) - 사람에게는 영적인 요구가 있음

사람에게는 영적인 요구가 있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목적을 위해서 지음받은 영혼이 나의 실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이 자기의 전부인줄 알고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간수를 합니다. 건강식품이나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고 조금만 아프면 약도 먹고 얼굴도 단장하고 주름살을 펴보려고 성형수술도 하고 육신의 치장은 잘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영혼은 있는지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가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 자기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였을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 12:19-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의 요구는 물질적인 것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짐승은 먹을 것이 있고 환경이 편안하고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고 살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육체의 조건만 이루어지면 이상의 요구는 없습니다.

사람은 육신적인 조건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가족이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훌륭한 문화 시설을 즐기고 산다면 행복할 같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육체 외에 영혼이 있어서 영적인 요구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요구는 육체적인 만족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인 갈등을 육신적인 것으로 해결해보려고 이상의 것을 추구함으로 온갖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라는 말씀대로, 사람은 (body) (soul) (spirit)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요구는 식욕, 성욕, 명예욕 등이고 혼은 마음, 생각, 정신 등의 활동을 말하는데 이러한 혼의 요구는 지식과 사랑, 그리고 고상한 사상 같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영의 요구는 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 19절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짐승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원숭이가 사람과 비슷하게 흉내는 내지만 영적인 요구는 없습니다.

또한 영의 요구에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2 15절에 양심이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죄를 지으면 양심이 송사를 합니다. ‘이 나쁜 놈아, 남의 것을 가지면 안돼. 도둑질을 하면 안돼. 나쁜 짓을 하면 안돼’ 하며 죄를 지적하는 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그래서 양심을 마음에 새긴 율법”(로마서 2:15)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은 선을 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의 요구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도서 3:11). 육신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이고 육신적이며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만 영은 영원하고 완전하며 신령한 것을 찾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처럼 되기 전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옛날 중국에 서태후라는 황후가 중국을 40 년간 통치를 , 북경에 인공 호수를 만들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바다와 같은 호수를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파서 만들었습니다. 옛날에 굴착기(포크레인) 자동차가 있지도 않았을 , 호수를 만들고 흙을 전부 파서 산을 만들고 거기다 엄청난 궁궐을 지어 놓았습니다.  
  
자금성은 옛날 중국 황제들이 살던 궁궐인데 안을 구경해 보니 방만 9999개라고 합니다. 방이 1개만 있으면 개인데 하나님만 개이고 인간은 개가 모자란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자기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기 전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구원받으면 하나님처럼 되고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만족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적인 욕구가 있음을 알지 못하여 “영혼아 여러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며 영혼을 육신적인 것으로 자꾸 달래는 것은 비단 부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우는데 ‘울지 . 사탕 줄께. 장난감 줄께’하면서 사탕을 입에 넣으면 너무 달아서 잠깐은 엄마 생각을 잊을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엄마를 부르며 울어서 사탕을 입에 넣어 주니 사탕을 뱉어 내고 장난감도 집어 던지면서 엄마만 찾는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를 만나 엄마 품에 안기기 전에는 마음에 평안과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세상의 온갖 것으로 자기 영혼을 달래봐야 죽을 때까지 달래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어리석고, 육신의 요구를 만족시킴으로 영혼을 달래보려는 자도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것이 되겠느냐 하십니다. 사람은 년이나 년이나 것처럼 계속 쌓아 놓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밤이라도 영혼을 도로 찾아가실 있습니다.

대통령직을 물러난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평생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을 테고,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대우받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부하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 텐데, 년을 살며 자손만대로 물려줄 것인 엄청난 재물을 쌓으려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요?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것이 있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빌딩이 있으면 개를 갖고 싶고, 개를 갖고 있으면 개를 갖고 싶고, 신형자가용을 갖고 있으면 좋은 신형외제차를 갖고 싶고, 자가용 비행기 온갖 것을 갖게 되면 만족이 있을 싶지만 막상 그런 것을 가져도 만족은 없습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아름다움과 부귀, 영광, 권세 모든  것을 몸에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도 행복하지 못했고 결국 수치스럽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 일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무엇을 해봐도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 전에는 만족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6).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사람이 늙어서 죽든지 병이 들어 죽든지 무슨 사고로 죽든지 죽으면 심장이 멈추고 그때부터 썩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예쁘거나 유명한 사람도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육체의 가죽이 썩을 육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영혼인데, 사람의 영혼은 육체 밖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도서 12:7).

영혼과 육신이 나누어지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흙으로 돌아가고(창세기 3:19) 영혼은 영혼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조차도 조금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없음이니라” (잠언 27:1).

늙고 병든 사람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도 갑자기 죽을 수 있습니다. 오래 산다고 해도 불과 몇 십 년 안에 다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내 손이며 내 발, 내 몸, 내 얼굴 등은 모두 나의 껍질에 불과합니다. 건물 안에 사람이 살듯이 흙집 안에 영혼이 살고 있습니다(욥기 4:19).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말씀처럼 죽으면 영혼이 실제로 육체 밖으로 나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저는 죽었다가 살아난 네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중, 목포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은 돌아가신지 이틀 후 장례식을 하기 전날에 살아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제게 자기가 죽었을 때 있었던 사건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또 한사람은 수원 가까운 반월에서 사는 57세 된 남자 분이었는데 병을 앓다가 심장이 멎고 죽었는데 자기의 죽은 시체를 자기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홑이불을 덮어 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우는 것을 꿈이 아니고 실제로 본 것입니다.

소련에서 40년간 의사생활 하던 한 사람이 환자들 중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있어서 만났습니다. 이 사람이 그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메모해 놓은 것이 신문에 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약 5분에서 15분 동안인데, 이 때 이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죽을 때 자신의 육신을 빠져나와 자신의 시체가 누워있는 것을 내려다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의사들도 죽었다가 살아난 이야기를 종합하여 한 이야기에 의하면 오토스코프 (autoscope-오토는 스스로란 말이며, 스코프는 본다는 말임) 곧 육체 밖에서 자기의 시체를 내려다보게 되며 주변에 누가 왔는지를 깨어난 후에 생생히 말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지난 번 SBS TV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프로그램에서 사후세계, 즉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얘기를 방영했는데 그것도 내용이 동일합니다. 죽음 건너편의 세계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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