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십자가를 통한 깨어짐의 고통 없이는 사람 앞에서 항상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는 삶을 살 수밖엔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심령이 깨어진 고통을 경험하게 하신후 비로소 우리를 성숙케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더 온전해 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수술하신다. 하나님은 마취제를 쓰시지 않고 수술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수술하실 때 우리에겐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이 수술을 통해 삶의 암 덩어리들이 제거된다. 그러나 우리가 수술을 받을 때 만약에 이때 아프다고 수술 도중에 수술실 밖으로 뛰쳐 나간다면 우리는 그 암 덩어리들을 몸에 달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아픈 수술과정을 우리는 깨어짐이라고 부른다. 이 깨어짐의 과정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이 깨어짐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꿈과 이상이 산산조작 나고 야망과 자만감이 여지없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한 심령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분노와 상처 그리고 교만과 욕망의 암 덩어리들을 제거하신다.
우리가운데는 자신의 건강과 지혜가 영원할 것 같은 착각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남보다 나음을 은근히 기뻐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적지 않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교만(pride)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이런 마음에 대해 예레미아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렘17:9)
마음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길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깨어짐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만일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잘못된 눈으로만 자신을 과대 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면서 살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픔을 겪게 된다.
1998년 여름 어느날 나는 환상을 보았다. 나는 그 환상 가운데 친구로 보이는 두 사람이 서로 다가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은 아름다운 포장지로 싼 조그만 크기의 선물 박스를 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그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포장 속에 귀한것이 들어 있다고 추측한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선물의 포장을 뜯었다.
그 포장속에는 손으로 만든 조그맣고 예쁜 컵이 한 개 들어 있었다. 값이 나가는 컵이었다. 그런데 그 컵에는 금이 나 있었기에 물을 담아 마시기에는 부적절하였다. 그 친구는 컵에 금이 난 것을 알아차렸다. 선물을 받은 이 친구는 왜 자신에게 금이 간 컵을 선물하였을까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그 친구는 자신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선물을 한 친구가 실망할까봐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그리곤 그 컵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금이 가서 물을 담을수 없는 컵을 어떻게 사용할 방법이 없어서 그 친구는 그 컵을 다시 박스에 넣어 다락방에 집어넣었다.
그 장면이 끝나자 다른 환상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컵을 가져다주었다. 주님은 조심스레 컵을 받아들고 사랑스런 컵을 바라보았다. 그 컵은 첫 번 장면에서 본 것과 동일한 금이 간 컵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환상속에서 나에게 " 너는 이 컵이 왜 나에게 소중한 컵인 줄 아니?" 라고 물었다. 나는 "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환상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 이 컵이 깨어져 금이 간 컵이기 때문에, 이 컵 안에 나의 영광을 담을수 있단다.
내가 나의 영광을 이 컵에 담으면 깨어진 틈 사이로 나의 영광이 흘러나와 주위 사람들에게로 나의 영광이 흘러들어가게 할수 있단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일단 자기중심적이 되면 가인이나 사울왕처럼 제일 좋은 것은 자기가 갖고 하나님에게는 그보다 못한것을 바치게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심령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되면 하나님께 최고의 것, 곧 자기 자신을 바치게된다. 바로 " 자신 " 이라는 깨어진 컵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노력을 바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분의 위대한 계명을 지킬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쳐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상한 심령을 갖게된다는 말은 우리가 계속해서 고난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우리가 점점 더 많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그 대신 하나님을 점점 더 많이 소유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또한 세례 요한이 외쳤던 소리 즉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망하여야 하겠다" 는 말을 매일 되새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상한 심령을 갖고 살아간다는 말은 " 나는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는 삶을 살리라" 라는 결단을 매순간 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깨어짐의 상태는 하나님의 임재의 불로 점령당한 상태이다. 깨어짐의 상태는 또한 이 세상에선 결코 온전히 도달할수 없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보좌에 가고 싶어하는 하나님에 대한 향수병에 걸린 상태이다.
<출처:마크 듀퐁/경험/사랑과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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