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올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그 결과, 그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이사야 선지자가 본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분”(사 6:1)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렸고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무한히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신앙인들은 그렇지 않았다.우리가 어떤 존재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를 존경할 수 없다.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존경할 수 없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예배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크신 하나님 으로 본다면 우리의 예배는 살 것이고,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 으로 본다면 예배는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당신도 잘 알 듯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셨다. 복음의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성육신(成肉身)의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오순절의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이 앞서 가셔야 한다.하나님이 항상 처음에 계셔야 한다.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이 먼저 계셔야 한다. 그곳에 계신 하나님은 대량생산된 싸구려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진열대 위에서 먼지가 쌓이도록 팔리지 않아 결국 할인가격표를 붙인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시요, 두려운 분이시오, 경외하는 분이시요, 신비로운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세계를 내려다보는 분이시오, 큰 날개로 온 우주를 감싸고 계신 분이시다. 우리는 바로 이런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神)개념을 오류(誤謬)에서 건져내야 한다.
우리는 두려울 정도로 잘못된 오류에서 우리의 신(神)개념을 구해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무한히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무한히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고 해도 그가 당신을 속이려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없다. 그 사람과 마주 앉아서 마음이 편하려면 그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간들 사이에서도 교제가 성립되려면 먼저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의심, 불안, 두려움과 같은 것들이 없어야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만일 우리 안에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하고 우리를 속이고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 3:4)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절대 거짓을 행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이것을 온전히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예배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무한히 신뢰하는 것, 이것이 예배의 시작이다.
<이것이 예배이다 - A.W 토저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