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칼날을 날카롭게 하실 때, 우리는
싸움에 임할 지략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영적인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눈을 열어 원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이는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사오니”(삼하22:40)
날카로워야 안전하다 - 하나님의 말씀은 날카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도서10:10)
우리의 영적
칼날이 무딜 경우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할 수 있다. 사전에서는
‘무디다’라는 말을 “감각이
부족하다, 느낌이나 지각이 둔하다”라고 정의한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무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이전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칼날을 의미하며(무딘 칼), 일반적으로 예리함, 맛, 정신, 강렬함 등을
잃은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영적 톱날(칼)을 간다는 것은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가길 수 있다.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일은 효과적인 중보 기도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나라를 가르치시면서 듣는 귀와
보는 눈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13:14-17)
영적 민감성 -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선지자들이 보기 원했던 많은 것들을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시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듣기 거부하는 백성들을 상대해야 했다. 듣기를 거부한 이들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귀는 듣는 데 무디어졌고, 눈은 보는 데 어두워졌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인들도 똑 같은 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중보기도자들은 이렇게 말씀에 민감하게 깨달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귀를 예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께 영적 주파수를 맞추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 게으름의 위험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義)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인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1-14)
지혜로 날카롭게 -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영적 칼날 가는 법고 중보기도에서
영적 도약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잘라버리는 방법을 배운다. 하나님의 지혜는 승리와 평안을 가져다 준다.
깨끗해진 마음 - 지혜를 얻고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씻는 일이다. 씻음은
평생의 과정이다. 우리는 거듭나는 순간 예수님을 거부했던 조에서 씻음을 받는다. 그렇더라도 삶의 여정에서 쌓이는 먼지와 티끌은 매일 씻어내야 한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깨끗케 하시도록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태도를 고집하고 싶어할 때가 종종 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지 말라는 행동을 계속 한 이스라엘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 7장은 이스라엘이 아간의 죄 때문에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불순종한 첫 번째 사건이다. 범죄한
사람은 아간 하나이지만,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 죄의 책임을 져야 했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셨기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죄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도 있지만 분명히 집단적인 책임과 결과도 있다. 원수를 물리치려면 먼저 자신부터 깨끗이 씻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
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받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수7:13)
개인적으로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승리를 얻기 위해 집단적인 성결이 필요할 때도 있다.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 우리의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또 다른 부분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일과 관계가 있다. 두려움은 믿는 자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영적 무기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전쟁터에서 진짜 적은 칼과 총알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오직 성령님
만이 숨어 있는 원수의 정체를 드러내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준비해두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원수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그러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만 신뢰하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언29:25)
두려움은 인생 곳곳에 출몰할뿐더러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방해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라”(시편91:1,2)
강한 믿음 - 우리의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은 강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믿음은 믿어지는 것 또는 신앙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믿음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우리가 거듭나면, 십자가에서
완전히 성취된 그 일을 온전히 믿게 된다. 그 믿음으로 우는 구원의 확신 갖는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것이 믿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중보기도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며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응답 받는 능력이 없다면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이 되어버린다. 믿음은 초자연적인 사역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 신뢰는 배 안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하지만, 믿음은 폭풍과 바람과 산을 향해 생명을 외치게 한다-
맞는 옷을 입어라 - 우리의 마음이나 삶을 더럽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깨끗이 씻어 내신 다음, 모든 두려움에 맞서며, 중보기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옷은 각자에 꼭 맞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각기 다른 일을 맡기셨다.
당신(나)의 사명은 그들이 받은 사명과 다를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이 맡은
사명이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다르다는 뜻이다. 당신을
위해 디자인된 옷을 입어라.
어린 다윗은 이 원리를 알고 있었다.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삼상17:38,39).
중보기도 자들마다
영적 성숙의 정도가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 있다. 겁을 먹거나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의 일과 비교함으로써 하나님의 군대에서 자신이 맡은 위치를 잊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맞지 않는 갑옷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옷을 입었다. 그런 다윗이었기에 비록 어린 소년이었으나 사울의 군대를 두렵게 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날카로운 영적 칼 날 -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칼 날을 날카롭게 하실 때, 우리는
싸움에 임할 지략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영적인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눈을 열어 원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적인 능력을 얻으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할 수 있다. 싸움에서 힘을 덜 들이고도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당신의 영적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 중보기도의 승리를 맛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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