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2009

제 3 성령의 물결 - 능력 전도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는 20세기 성령운동을 3기로 나누어 제 1, 2, 3 성령의 물결로 표현했다. 리차드 리스(Richard M. Riss)는 제1성령의 물결을 주요 재(再)각성운동이라 불렀다. 제 1 물결은 오순절 운동이요, 제 2 물결을 카리스마적 운동이며, 제 3 물결은 오순절 운동과 카리스마적 운동을 합친 것을 말한다.

제3의 성령의 물결은, 피터 와그너 박사에 의하면 1980년대에 시작한 운동으로서 제1의 성령의 물결로 알려진 오순절 운동과 제2의 성령의 물결로 알려진 은사주의 운동과 유사하다. ‘제3의 물결’이라는 말은 피터 와그너 박사가 1983년 「목회갱신」(Ministry Renewal)이란 잡지의 케빈 페로타(Kevin Perrotta)와 인터뷰할 때 처음 사용했다.

제3의 물결은 제1, 2 물결의 내용을 받아들이면서 성령 충만을 통한 성령의 능력(power)을 강조한다. 제1, 2, 3의 물결이 유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역사 하시는 분이 같은 하나님의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에서는 병자가 치유 받으며, 절름발이가 걸으며, 귀신이 쫓겨나며, 신약시대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능력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에서도 여러 해 동안 나타났다.

제1, 2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이 구별되는 중요한 변화는 성령세례의 의미와 성령세례의 표식으로서의 방언의 역할과 성령 충만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하는데 있다.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에서는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보지만 제3의 물결에서는 방언을 은사중의 하나라고 본다. 또한 성령세례는 한 번 받지만 삶 속에서는 계속 성령 충만을 받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성령이 충만하면 은사와 능력이 임하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도 임한다고 설명한다. 은사주의에서는 분열이 많이 일어났었지만 제3의 물결의 특징은 분열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분열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은사주의 운동에서는 축사사역과 치유사역은 은사를 가진 사람이나 지도자가 했으나 제3의 물결에서의 축사사역과 치유사역은 어떠한 특정한 층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예수 믿고 교회의 지체된 사람은 누구나 축사사역과 치유사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한다. 제3의 물결은 은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제 3의 물결은 성령의 임재하심과 기름부으심을 강조한다. 찬양도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하고, 기도도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하고, 말씀도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예배의 시종은 성령의 임재와 기름부으심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며, 예배드릴 때 성령이 임재 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치유와 구원의 역사들이 일어남을 강조한다.

제3의 물결이 일어난 것은 존 윔버(John wimber)목사의 빈야드(Vineyard)교회였으며, 빈야드 교회에서 일어난 성령의 물결은 ‘토론토 브레싱(Tornoto Blessing)’으로 알려진 존 아놋(John Arnot) 목사의 토론토에어포트교회로 이어졌으며, 이 물결은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의 브라운스빌교회로 연결된다.

제3의 물결 선두주자 존 윔버 - 존 윔버 목사는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에서 50명으로 빈야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개척, 6천명으로 부흥시켰다. 그 교회에서 마태복음 10장 1절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약에서 말하는 병자가 치유 받고 귀신이 쫓겨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존 윔버 목사와 그 교회의 교인들을 통해서 나타내기 시작했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존 윔버 목사와 함께 풀러신학대학에서 MC510 ‘표적, 기사, 교회 성장(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이란 과목을 개설했다(후에 이 과목 명칭은 ‘기적과 교회 성장(The Miraculous and Church Growth)’으로 바뀜). 1982년 1월에 강의를 시작했는데, 강의시간이 끝나면 사역 시간을 갖고 강의내용에 따라 기도시간을 가졌다. 바로 그 강의 시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밤마다 그 자리에서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사실로 증명됐으며, 병자가 즉시 치유함을 받았고, 악령이 쫓겨났으며, 많은 다른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피터 와그너 박사도 진물이 흐르는 목의 종기를 고침 받았다. 피터 와그너 교수와 수백 명의 목사들의 목회에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풀러신학대학에서 4년간 4만 명 이상의 목사들에게 기적과 교회성장 이론을 가르쳤다.

그 당시 세계 신학계에 제일 유명한 강의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스위스 바젤대학 칼 바르트(Karl Barth)의 교의학(dogmatics)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풀러대학 존 윔버의 MC510이었다. 존 윔버의 MC510 강의 내용은 「기독교 생활」(Christian Life) 지의 편집자 로버트 워커(Robert Walker)에 의해 1982년 10월호의 전체 특집으로 다루어졌고, 마침내「오늘날의 표적과 기사」(Signs & Wonders Today)란 책으로 출간돼 전 세계 교회와 기독교 단체와 대학에 소개됐다.

풀러신학대학의 MC510 강의 내용은 풀러신학대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기적종료론자들의 반대의 소리에 직면하게 됐다. 기적종료론자들은 사도시대 이후에는 표적과 기적이 종료됐으며, 모든 표적과 기사와 기적은 성경(정경)을 쓰기 위한 증표로 된 것이므로 성경이 주어진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육적• 정서적 치유함을 받았으며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됐고, 1984년 풀러신학대학에서의 존 윔버의 강의는 LA를 넘어 전 세계의 화제가 됐다.

존 윔버 목사가 강조한 것은 ①찬양 ②말씀(선포와 증거) ③기도(치유 강조) ④전도 ⑤구제(예산의 60%) 등이었다. 그 중에도 존 윔버 목사는 말씀 사역을 위해서 예수의 복음 사역 패턴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의 복음사역은 말씀선포+증거 - 존 윔버 목사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예로 들면서 말씀을 선포하고 표적과 기사와 기적으로 그 말씀을 증거하면 복음은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누가복음 4:18~19(이사야 61:1~2), 마태복음 4:23~25 혹은 9:35~36, 마가복음 16:14~20 등을 예로 들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proclamation) 하실 때 표적과 기사와 기적이 일어나 그 말씀을 확증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효과적으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존 윔버는 예수의 말씀의 핵심 사상의 하나로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임하는 것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생애 전체가 말씀 선포(Word, what he said)+실증(works, what he did)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마가복음 16:14~20에서 온 천학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고 하셨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다음에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성경은 분명히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한다고 했다. 모든 기적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전파를 위한 것이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 1979년 5월 어머니날, 교회창립 2주년 주일 저녁예배는 존 윔버 목사와 빈야드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오래 기억되는 예배가 됐다. 그 날 윔버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로니 프리즈비(Lonnie Frisbee)란 청년의 뒤를 따라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때 주님께서 “오늘 저녁 예배 때 이 젊은 사람이 간증을 하도록 요청하라”고 말씀하셨다. 로니는 갈보리채플교회의 목사였고 부흥사였다. 윔버와 로니는 서로 깊이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날 저녁 간증을 마치고 난 로니는 25세 미만의 젊은이들을 강단 앞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로니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Come, Holy Spirit!)” 라고 외쳤다. 그 기도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나님의 성령은 문자 그대로 사람들을 바닥에 쓰러지게 했으며, 바보처럼 자기 몸을 떨며 진동하게 했다. 사람들은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았다. 쓰러져 넘어지고 뒹구는 모습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그 후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성령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존 윔버 목사도 놀라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밤새껏 성경책을 뒤적였다.

그 이후에 제3의 물결에서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은 ①성령의 권능으로 넘어짐(환상을 봄) ②진동 ③치유 ④거룩한 웃음(holy laughter) ⑤방언 ⑥축귀 등의 현상이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통한 표적과 기사는 말씀을 증거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표적과 기사를 통한 복음전도를 윔버는 ‘능력전도(Power-Evangelism)’, ‘능력치유(Power-Healing)’라고 명명, 오늘날 새로운 신학적 어휘들로 사용되고 있다. 이 능력전도는 전 세계의 침체된 전통 교회와 비전통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대중전도를 확산시켰다. 미국과 캐나다와 세계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전체 4만2천 교회 중 1만2천 교회가 활성화되고, 전 유럽, 남미, 아프리카, 아세아에 영향을 주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복음전도 - 존 윔버는 열심을 다하는 개인 전도자다. 그는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그는 부인과 함께 LA 남부 오렌지카운티의 모든 골목, 모든 상점, 모든 식품점 어디고 다니며 전도하지 않은 골목이 없다. 그는 1963년 회심이후부터 1970년까지 5백명 이상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으며, 한 주간에 11개 성경공부 반을 인도했다. 그는 식품점 시장에 가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서 큰 집회를 무수히 인도했다. LA의 오렌지카운티에 3천2백석의 대형 교회를 짧은 세월에 성장시켰다. 그의 책들이 팔려 인세가 연간 30만 달러가 넘게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는 많은 돈을 복음 전도에 사용하면서 자기의 몫을 챙기지 않았다.

존 윔버 목사는 불신가정에서 자라나 세속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전도를 잘했다. 미국에서 히피(Hippie)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자신도 히피였다. 히피는 퇴폐 풍의 옷차림을 치렁치렁 걸치고,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집을 나와 맨발로 거리를 배회하며 반전, 자유, 이상주의에 젖어 평화를 노래할 때였다. 당시 월남전쟁이 한창이어서 젊은이들을 국가가 명령하여 징집할 때였다. 젊은 여자들도 합세하여 머리와 옷에 꽃을 달고 마치 평화의 나라를 향해 가는 이상적 순례자의 모습을 여기서 생겨난 그들의 슬로건은 반대주의(-antism)였다. 반문화, 반전통, 반체제, 반정부의 사상이 그들의 전유물이었다. 히피들의 의식과 문화와 이상은 미국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Baby boomer)’들의 중심 사상이 됐다. 베이비 부머는 2차대전 이후 태어난 세대들을 지칭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오자 미국 젊은이들이 아기를 많이 낳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 히피들은 술과 마약의 밥이 되었다. 그들의 젊은 감정은 부도덕의 탁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존 윔버 목사는 이들을 이해했다. 히피 세대는 사회에 진출하면서 그들의 반대주의(-antism)를 사회 속에 심으려 했다. 훗날 존 윔버 목사는 이상사회 건설에 꿈을 가졌으나 수포로 돌아간 젊은이들의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존 윔버 목사는 그들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예배형식을 과감히 실험했다. 그는 베이비 부머 세대를 전도하려면 옛 교회 전통보다는 그들에게 맞는 새로운 교회전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존 윔버 목사는 오늘의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의 언어로, 오늘 우리의 노래로,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랑으로, 오늘 우리의 자유로, 오늘 우리의 악기로, 오늘 우리의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자고 주장했다. 태초 이래 복음은 절대 불변이지만,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복음을 담는 그릇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각으로 태어난 것이 빈야드 교회의 ‘열린 예배’다.

빈야드교회의 예배혁명 ‘열린 예배’ - 열린 예배에서는 주기도문 암송이나 교독문, 사도신경 암송도 축도도 없다. 사도시대 때에도 이런 것은 없었다. 이런 것들은 후에 교회가 발전하면서 교회지도자들이 모범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갖추게 된 순서일 뿐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이것이 의식으로 발전되고, 개신교에서는 예배의 필수적 요소가 되기도 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26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오늘날 전통적 주류교회의 예배와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예배엔 계시도, 방언도, 통역도 없다. 우리가 잘못된 것인가? 사도 바울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의 전통이 잘못된 것인가? 초대교회가 잘못된 것인가?

빈야드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예배순서를 갖는다. 사람들은 빈야드의 예배 형식을 격찬하기도 하고, 또 격렬히 반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빈야드 사람들은 절대로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

‘경배와 찬양’ 몰고 온 빈야드의 찬양 - 존 윔버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악단의 단장으로 라스베가스의 2개 로큰롤 쇼 그룹에서 이름을 날렸다. 재즈 음악에 심취하여 악단에서 색소폰을 불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연주하기도 했다. 1976년 10월 어느 날 당시 존 윔버 내외는 함께 모인 10여 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기타를 치며 복음성가를 불렀다. 그들은 몇 개 안되는 복음 송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열심히 부르며 울고 있었다. 이 작은 모임은 훗날 5천명에 이르는 빈야드교회의 초대형 찬양단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모여서 복음 송을 불렀고 변화를 체험했다. 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찬양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빈야드 교회에서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찬양대원이다.

1982년부터 빈야드의 찬송 음악이 전 세계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의 ‘경배와 찬양’을 통해 빈야드 찬양이 소개됐다. 한국의 복음성가는 빈야드 찬양으로부터 약 75%의 영향을 받고 있다.

1982년 윔버는 처음으로 영국 전도여행길에 올랐다. 윔버 목사의 빈야드교회 사역은 잠자던 영국 교회에 불씨를 던졌고, 오늘날 영국 교회를 성령의 불길에 휩싸이게 했다. 그가 영국 교회에 미친 영향은 그에게 ‘제2의 웨슬리’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이 성령의 불이 영국 주류교회를 소생시키고, 다시 더 큰 불이 되어 전 구라파는 물론 미국으로 되 불어오고 있다.

윔버 목사의 사역에 접목된 니키 검블(Nicky Gumble) 목사는 켐부리지대학 출신의 변호사다. 그는 법률을 접어두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검블이 개발한 알파(Alpha) 성경공부 교재와 교과과정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로 소개됐다. 지금까지 알파 성경 코스에 참여한 인원은 50만을 넘는다. 미국 교회에도 알파 성경 공부의 바람이 불어와 1998년 한해에 1만 교회 이상이 알파 코스에 참여했다.

한국의 강단과 신학교에서도 존 윔버 목사와 제3의 성령의 물결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져 그가 기독교회에 공헌한 것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예영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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