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적으로 보는’ 기름부음은 특별히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가 그분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 교정해주는 하나님의 전략적인 도구 중에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이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닐 때 그를 잘못된 열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도록 그의 생각을 교정해 준 사건은 ‘다메섹’에서 주님의 빛을 보고 그 빛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하여 잠시 눈이 멀었지만 영의 눈을 통해서 본 환상을 통해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를 찾아오 안수하고 기도할 때에 그의 눈이 나을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 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3-4)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행9:11-12)
아나니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나니아의 바울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와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하나님이 환상 중에 불러 말씀하실 때에도 바울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환상을 통하여 바울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으로 자신을 교정하게 되었습니다.(행9:10-19)
심지어 베드로는 “내가 깨끗하다 한 것을 네가 왜 더럽다고 하느냐?”라는 질책의 음성이 포함된 환상을 체험하고도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한 후 그는 환상을 통한 그의 잘못 된 생각에 관한 하나님의 교정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교’에서 ‘교회’가 분리되어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유대인들만의 구원을 주장하던 초대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완전히 바꾸는 큰 사건이므로 성경을 통하여 자세히 다시 확인하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1가이사라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3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9이튼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때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11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4-17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밖에 서서”(행10:1,3,5,9,11,14-1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8)
아직까지도 기독교 안에서 각 교파와 교단의 ‘교리적 논쟁’으로 완전한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당시 에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구원’의 교리를 받아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예언적 체험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마19:26)
은사의 활성화/임동철/HP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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