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2011

보는 기름부음의 활성화 –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럽에서 그를 부르는 한 환상을 본 것이었습니다.

환상은 특별히 우리에게 방향 제시적인 메시지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믿습니다.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구약에서 특히 선견자라고 불리어지는 선지자들은 구체적인 어떤 사실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향제시적인 기름부음이 특히 넘쳤습니다. 최초의 이스라엘의 왕이어던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된 이유는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은 선견자를 찾아 사무엘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삼상9:10-11)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사실 선지자와 선겨자는 넓은 의미에서는 같은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삼상 9:9절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줍니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선지자와 선견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고 사실입니다. 선지자와 선견자가 좁은 의미에서도 완전히 같은 뜻이었다면 대상 29:29에서 사무엘, 나단, 선지자를 선견자선지자로 구분하여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상29:29)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삼하24: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선견자는 선지자이지만 선지자라고 해서 모두 선견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기름부음의 차이는 오직 글자 그대로 보는 기름부음의 차이입니다. 선지자들 중 환상을 보는 기름부음이 탁월한 선지자를 선견자라고 불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환상을 보는 선견자이었기에 잃어버린 짐승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가르쳐 줄 수 있는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이 강한 선지자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날에고 릭 조이너, 밥 존스, 톰 모리슨, 폴 케인, 짐 골같은 선지자들은 모두 환상을 보는 선지자들이며 그들의 예언은 아주 예리하고 국가적인 어떤 중요한 사건에 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하여 적중한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911사태와 후세인의 검거, 미국 서부지역의 큰 지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저들고 같은 하나님의 강한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을 가진 자들을 일으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대는 너무나 약해져서 여간해서는 하나님을 시인하고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죄가 넘치는 곳에 더 많은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넘치는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으로 고전14:23-25을 성취시켜 주실 것입니다.

(고전14:23-25)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일을 초대교회에만 행하시고 오늘날은 포기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분은 극도로 사랑이 마르고 이지주의가 되어 악해진 이 세대에 더욱 더 이러한 기름부음으로 교회가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또 그분은 이러한 그분의 뜻을 믿고 주님 제가 여기있습니다. 그 일에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손을 들어 구하는 자들에게 이 기름부음이 넘치도록 활성화 시켜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도시 니느웨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로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축복, 축복, 축복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역자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풍요롭게 잘 살 것이라고만 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도시 니느웨를 주님께로 돌아오게 한 것은 예언의 기름부음으로 넘치는 요나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은사의 활성화/임동철/HP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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