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산 예언 즉석 참고 도표
The Seven Mountain Prophecy Quick Reference Chart
일곱산에 관한 예언 즉석 참고 개관 The Seven Mountain Prophecy Quick Reference Overview
1장 쓰나미 – 2004년 아시아에 있었던 쓰나미가 갑자기 바다 수위를 높이고 그 길목에 있던 모든 지형을 바꾸었던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영적 쓰나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갑자기 바꾸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쓰나미의 결과는 결코 재앙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어둠의 악한 세력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황폐화 되었던 지역들을 품기 위해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임하게 할 것이다.
2장 엘리야의 혁명 – 세상과 교회는 철저히 새로 수리될 필요가 있다. 다가올 엘리야 혁명은 쓰나미와 같이 변화시키는 역동성을 가질 것이며, 이것은 교회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엘리야 사역의 모든 특징들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예언적이고 강력하며, 그리고 주님의 재림 전의 길을 예비할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모든 그의 적들이 발밑에 굴복할 때까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실 것이다. 엘리야 혁명은 이것을 완수할 것이다.
3장 약속의 땅으로의 진격 –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언약궤를 따를 때 엘리야 혁명은 약속의 땅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여호수아서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언약궤를 2천 규빗 뒤에 따랐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이 지구상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2천 년 후에 따르고 있다. 우리는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인도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은 나라들이다. 그리고 그 나라들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추구하는 동안, 약속의 땅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함을 체험할 것인데, 이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4장 더 많고 힘 있는 일곱 족속들 – 하나님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동안, 우리는 우리보다 “더 많고 힘 있는” 일곱 족속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신7:1). 여호수아의 적은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여부스 족속이었다. 우리에게 이러한 족속들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곱 ‘산들’과 일치한다. 그것은 미디어, 정부, 교육, 경제, 종교, 축전과 예술, 가정이다. 이러한 산들은 한때 각각 그러나 동시에 로렌 커닝햄과 빌 브라이트에게 계시되었는데,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핵심으로 그들에게 계시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전략과 능력을 가지고 엘리야 혁명가들이 이 산들 위에 있는 악한 권세들을 쫓아낼 전에 없었던 은혜를 입게 될 것이며, 그 산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함께 점령할 것이다.
5장 히위 족속과 미디어의 산 – 히위 족속이라는 단어는 ‘공포’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왔다. 이것은 압도적인 양의 부정적인 뉴스를 방송하고, 또한 의도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이야기가 가장 많이 방송되어야 하며 가장 중요하게 방송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현대 뉴스 미디어의 정확한 특징들이다. 주권자 아볼루온(파괴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은 미디어의 산의 정상에 앉아서 뉴스를 왜곡하고 사람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킴으로써 그들은 노예로 삼고 있다. 본질적으로 참된 복음전파자들로 활동할 엘리야 혁명가들은 뉴스를 정확히 보도할 것이며, 심지어 부정적인 뉴스일 경우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도하는 내용의 모든 부분에서 구속의 은혜를 찾아내어 전할 것이다. 그들의 말들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들을 강력하게 예언할 것이다.
6장 기르가스 족속과 정부의 산 –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를 ‘악한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마귀에게 내어주어 버렸기 때문이디. ‘진흙 속에 거하는’이라는 뜻을 가진 기르가스 족속은 이 산에서는 매우 흔한 것들인, 이 땅에서의 욕망들과 타락한 열망들을 뜻한다. 이 산의 왕인 루시퍼는 교만과 반대되는 영인 겸손과 섬김의 영을 소유하고서 이 산을 오르는 자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다. 진정한 사도들-‘사도’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성경이 정의를 내린 그 역할대로 활동하는 자들-이 정부의 산을 취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사의 더함이 무궁하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사9:7).
7장 아모리 족속과 교육의 산 – 수세기 전에 기독교대학과 대학교에서 영향력이 매우 컸던 교육기관들이 이제는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철학으로 물들어 버렸다. 교육의 산은 세상의 수많은 지도자들을 교육한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과 같은 학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 산의 아모리 족속은 교만, 자랑, 거만함을 대표하며, 인간을 숭배하는 사상인 인본주의, 자유주의, 이성주의, 무신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과연 계신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보다는 하나님이 계신 데 대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을 만큼 분명하게 임할 것이다.
모든 교육제도의 전반에 나타나는 잘못은 진리를 좌뇌로만 이해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뇌로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 극단적인 편견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창조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직감적인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이성적이고 비판적이며, 그래서 매우 제한된 인간의 오감만을 받아들이는 아이들로 변화시킴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엘리야 혁명은 바알세불을 이 산의 왕좌에서 쫓아낼 것이며, 교육을 우뇌를 사용하는 것이 주가 되는 일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분간하고 하나님의 비밀들을 예언하는 방법을 열어 놓을 것이다.
8장 가나안 족속과 경제의 산 – 탐욕과 가난의 거짓은 서로 쌍둥이와 같으며, 맘몬 또는 바벨론 권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라난다. 거짓의 영은 모든 사람들에게 돈이 그들의 진정한 공급원이 된다고 설득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가난으로 속박하는 것을 선호하나, 하나님이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곳에서는 그 풍성함을 더욱더 바라기만 하는 탐욕으로 왜곡시켜 버린다. 그러나 이 땅의 경제적인 구조는 언젠가는 붕괴될 것이며, 가난과 탐욕의 영 아래서 활동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러한 시스템에서 나오도록 부르신다.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은 ‘모든 나라들의 부를 얻게 될 것이다.’ 풍성함은 하나님이 그분의 종들을 통해 주시는 예언적인 말들에 대한 믿음의 결과로 올 것인데, 이것은 성경에서 종종 증명되는 역동적인 사실이며(요셉,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보여진다).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페루 그리고 다른 여러 곳에서의 나의 경험을 통해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바벨론은 무너지기 전까지 계속 진동될 것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부족함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9장 브리스 족속과 종교의 산 – 우상숭배는 사람들이 이행할 수도 없고 또한 하지도 않을 헛된 약속을 하는 신들에게 복종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공급과 보호를 제거한다. 이것은 브리스 족속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이다. 종교의 영은 종교의 산의 정상에 있으며, 하나님께로만 향하도록 되어 있는 예배를 빼앗아 가기 위해서 그것이 노골적으로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든, 교회 내에서의 아주 잘 준비된 종교행위이든, 아니면 이 둘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고 있다. 이 영은 우리의 예배를 현재는 진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독이 섞여 있는 교리들로 왜곡시키고 있다. 심지어 성숙한 기독교인들조차도 산 정상에서의 경험이나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보다 교리를 더 높임으로 예배에서 실패할 수 있다.
이 장은 독자로 하여금 이 산은 성령의 역동적인 인도와 능력에 의해서만 취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엘리야 혁명가들은 성령이 예기치 못한 방법들로 일하실 것을 기대할 것이며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매우 기울일 것이다. 무조건적이며 열정적인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그들은 진부한 말들과 원칙들, 시간이 잘 짜여진 예배들, 그리고 단정하고 산뜻한 신학에 근거를 둔 종교적 행위들을 거부할 것이다. 현재 담보 상태에 있는 기독교의 전통들과 기대들을 거부하며, 대신에 하나님과의 초자연적인 경험들을 갖게 될 것이다.
10장 히위 족속과 축전의 산 – 축전의 산은 미술, 음악, 스포츠, 패션, 오락을 포함하며, 우리가 인생을 즐기며 축하하는 모든 방법들을 포함한다. 이 산은 사탄의 무리들에 의해 모든 부분들이 완전히 점령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믿는 자들이 산이 점령될 수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그분의 백성들의 창조성과 열정을 통해 자유로이 움직이기 원하신다. 이 산을 진정한 축전을 타락한 모조품으로 대체하는 히위 족속으로부터 반드시 되찾아져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에 의해 제공된 진정한 쾌락과 기쁨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이세벨의 영으로부터도 반드시 되찾아져야 한다.
이세벨의 영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들을 타락하게 만들었으며, 이에 대한 선지자들의 역할은 대중문화의 속임수를 뚫고 지나가서, 참되고 변치 않는 대안을 우리 사회 특별히 자신들의 청소년기를 이 산에서 살며 호흡하며 지낼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인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엘리야 혁명가들이 음악, 미술, 문학 그리고 모든 다른 형태의 축전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만들어 낼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창조성이 자신들을 통해 나가도록 함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세상은 기독교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가치 있게 보고 그것을 좇기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작품의 탁월함이 그들의 작품의 근원이 초자연적인 분임을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11장 여부스 족속과 가정의 신 – 말라기 4장6절은 엘리야가 올 것이며 “아버지들의 마음을 그들의 자녀들에게로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려놓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마지막 약속이며, 심지어 마지막 구절에 있는 약속이다. 엘리야는 올 것이며 가정들을 구할 것이다.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에 없었던 가정 붕괴의 시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중심에는 가족들의 삶에 완전히 참여하여 관계를 맺는 아버지들의 부재가 있다.
그 결과는 수많은 사회적 그리고 육체적 질병들이며, 그것들은 거절을 포함한 우울증, 두려움, 성적 일탈, 중독, 분노, 폭력들로 인해 주어진 것이다. 이 산에 있는 권세는 종종 성적인 제사행위들과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와 연관된 바알이다. 목사들의 참된 역할은 시장경제에서, 정부에서(특별히 재판의 권위가 있는 곳에서), 그리고 또한 교회에서, 이 가정의 산으로부터 바알을 제거한 뒤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의 관계를 실현하는 가정들로 대체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엘리야 영의 회복의 사역을 모든 나라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받을 것이며 그 일을 수행할 것이다.
12장 꼬리가 아닌 머리 – 하나님의 피로 산 우리가 놀라운 축복이 가득한 산의 정상에 있는 것이 항상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분의 백성이 고생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즐기시는 가학적인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무한한 풍부 – 육, 혼, 영 – 가 있는 약속의 땅을 통해 우리에게 동기부여 하기를 항상 원하셨다. 하나님은 신명기 28장 13절에서 그분의 백성을 ‘머리가 되게 하고 꼬리가 되지 않게’할 것을 약속하셨다. 기독교 역사의 대부분은 세상이 항상 선두에서 달렸고, 기독교는 세속적인 음악, 미술, 정부, 사업 등등을 ‘기독교화’ 함으로 그 뒤를 좇았다.
엘리야 혁명은 이것을 바꿀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특출한 방식의 창조적인 예술, 사업, 경영, 국가를 다스림, 그리고 믿음과 예배의 행위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축복을 볼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풍기는 하나님 나라의 향기를 맡고 예수님께로 나아올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엘리야 혁명가들은 문화의 산에 살고 있는 거인들에게 항복한 기독교인들과는 다른 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하위 기독교 문화만으로는 만족하니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나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기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일곱산에 관한 예언/조니 엔로우/순전한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