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2009

바로 듣기, 바로 보기, 바로 말하기


 - 우리는 흔리 언어라고 하면 말하는 것을 생각하고, 언어 능력하면 곧 말 잘하는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말하기'는 '듣기', '보기'가 있은 다음에 오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적 심중 구조입니다. 그 구조는 바르게 잘 듣기, 바르게 잘 보기, 바르게 잘 말하기입니다. -
 
        바르게 잘 듣기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잘 듣지 못합니다. 들리지 않아서 못 듣는 것이아니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못 듣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고 유리한 것만 들으려 합니다. 선입관을 가지고 듣습니다. 
그러므로 듣지 못합니다. "너희가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6:9)는 말씀입 그 뜻입니다. 미국 CNN 방송국의 명 대담자 래리 킹은 대화의 법칙 제 1조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마음 문을 열고 열성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듣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다음에 자기가 할 말을 생각하느라 바쁩니다. 우리들은 집 식구들의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삽니다. 남편이 부인 말을, 부인이 남편 말을, 부모가 자녀의 말을, 자녀가 부모의 말을 건성으로 듣습니다. 성의 없이 듣습니다. 잔고리로 듣습니다. 우리네 가정불화의 많은 부분이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겨은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리하라'(약1:19)고 하셨습니다.

        바르게 보기란 무엇인가?
 검은 안경을 쓴 사람 눈에는 세상이 모두 시커멓게 보이는 것처럼, 바르게 듣지 못하는 사람은 바르게 보지도 못합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 유익한 것,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하지 때문에 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마음을 담지 않고 보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마음을 담고 천지자연을 보면 보는 것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마음을 담고 사람을 보면 보는 사람마다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마음을 담고 글을 읽으면 글자 하나 하나 문장 사시사이에 숨겨진 비밀한 의미가 또렷이 드러납니다.  바르게 보기란 따뜻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보고, 글으 ㄹ읽고,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바르게 말하기란 무엇인가?
 '바르게 말하기'는 '말 잘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모세나 바울 사도의 경우를 보십시오. 저들은 '말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르게 잘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니다(시19:14).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빙하는 말을 바라라(벧전2:1)
 
이 말씀들은 '바르게 말하기'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밝여주고 있습니다. '바르게  말하기'란 경우에 합당한 말, 진실한 말, 선하고 따뜻한 말을 의미합니다. '바르게 잘 말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 '바르게 잘 듣기'와 '바르게 잘 보기'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잘 듣지 못하고 잘 보지 못한 사람이 경우에 합당한 말, 진실한 말, 선하고 따뜻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은 바르게 잘 듣고, 바르게 잘 본것을 바르게 잘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은 바르게 잘 듣고, 바르게 잘 보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듣고 잘 보면 자연히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샘물 제5권> 이정수

  
   - 죽음이 아니고 생명을, 저주가 아니고 축복을 선택하는 것은 흔히 침묵을 지키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또는 치유의 길로 향하는 문을 여는 말을 선택함으로써 시작된다 - 
<말을 현명하게 선택하기> 헨리 나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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