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2010

"회개하지 않고 나에게 나아오는 사람은 그냥 자기 혼자 앉아있는 자이다"

회개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17:30)

하루는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회개하지 않고 나에게 나아오는 사람은 그냥 자기 혼자 앉아있는 자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받는 체험도 없고 용서받음에 따르는 능력도 없다. 그러한 교인들은 그저 속고 있을 뿐이다.

가룟유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희생을 사람이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으며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박해의 뜨거운 맛을 보았으며 귀신을 내쫓고 병자를 고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근본 동기는 처음부터 그릇된 것이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이기심을 회개하지 않았다. 모든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결국 마지막에 이득을 보기 위한 계산적인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속인 자이며, 그의 속임은 갈수록 심해지다가 급기야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반면에 젊은 관원은 적어도 솔직했다. 그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그는 구원받는 길을 이해하였으나, 결국 예수님을 등지고 떠나갔다. 나도 모르겠다---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부자청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하지만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청년에게 사랑가운데 진실을 말하심으로 진리를 알게 주셨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에서 부부가 헌금에 대해서 거짓말을 적이 있었다. 땅을 팔아서 몽땅 주님께 바치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실제로는 일부분만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겼던 것이다. 문제는 땅을 전부다 바쳤느냐 아니냐가 아니고, 그렇게 약속을 했었다는 것이 문제 였다. 다른 문제는, 돈을 바치는 순간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땅의 전부를 바친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베드로 사도는 부부와 맞닥뜨렸다, 결국 부부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게 거짓말을 결과,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교회가 두려워 떨게 되었고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많으니 남녀의 무리더라( 5:12~14)

사람들은 너무나 두려워서 이상 교회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정나미가 떨어졌을 법한데, 사실은 반대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의 눈에는 모순인것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다"는데 어떻게 교회가 부흥 있었다는 말인가? 이이야기는 간단히 설명될 있다. 진정한 회개 없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진리와 순수성을 회복한 교회는 급속도의 성장가두를 달리게 되었다.

" 하필이면 부부만 죽어 넘어졌는가? 목회자 앞에서 거짓말하는 많은 다른 사람들은 전부 멀쩡히 살아가는데!!"라고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이유가 다음 성경구절에 제시되어 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때에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나음을 얻으니라( 5:15~16) 
하나님의 영광이 베드로에게는 너무나 강력하게 임했기에, 그에게 가까이만 가도 죄인들은 몸이 아프거나 죽거나 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반대로 병자라도 믿음을 가지고 진리 가운데 회개하면서 베드로에게 가까이만 다가가도, 병이 치유되었다. 사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인간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거짓말을 한것이다. 죄가 하나님의 영광과 맞닥뜨리면 강렬한 반응이 일어난다.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파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다윗 왕과 그의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레를 끄는 소가 뛰어서 웃사가 손을 뻗어 언약궤를 잡았을때, 그는 자리에서 죽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곁에서 죽으니라"(삼하 6:7)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의 시대만큼 영광과 권능으로 우리시대에 임하지 않으시냐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만약에 현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자리에서 바로 엎드러져 죽을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므로 말세에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같은 예언자를 보내서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실 것이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저히 주님의 재림을 제대로 맞이할 없을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너희가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3:1)
  
-존비비어의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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