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2010

하이드의 세 가지 비밀 - 존 하이드

하이드의 삶을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그에게 가지 남다른 특징이 있었다는 것을 있다. 그가 사람들에게 그만한 영향을 끼칠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다. 언젠가 하이드에게, 아내가 있으면 많은 위로가 텐데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것이 있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잠시 뒤에 마치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전에 나는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무엇인가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분께 나를 드렸습니다. 나는 그분 외에는 아무도 속에 들어오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분을 향한 나의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주님께 결혼하지 않고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헌신적인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충실하게 약속을 지켰는가! 그에게는 그리스도가 전부였다. 하이드가 기도하는 삶을 있었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은사다. 우리도 같은 은사를 받을 있다. 하이드는 더욱더 자신을 낮추어 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속에 쏟아 주어져 내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내릴 있도록 자신의 삶을 그분께 온전히 열어 놓았다. 우리도 이렇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의 삶에서 기도가 자연히 우러나올 텐데.

둘째,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다. 따라서 그는 모든 것을 그들을 위해 희생할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먹고 잠을 잤다. 나는 그의 친절한 마음씨를 이용해 그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자신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심지어 자신의 물건을 훔쳤더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것이니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물건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는 이런 일로 인해 종종 동요 선교사들로부터 핀잔을 듣곤 했다. 하지만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한번은 하이드가 고향인 하늘나라도 돌아간 직후 얼마 되지 않아 펀자브의 인도 의사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얼마 전에 아리아 사마지(the Arya Samaj:산스크리트어로 존귀한 자들의 모임이라는 의미, guse 흰두교의 종파로서 1875 다야난다 사라스바티가 창시했다.  ‘사마지 모임이란 의미로 지역의 사마지에서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임원을 선발했다-역자 ) 하이드의 설교를 듣고 개종한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에 매우 당황하여, 사람을 보내 하이드의 삶을 샅샅이 조사케 하고 그의 약점을 찾아내 내용을 널리 알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하이드의 명예를 실추시켜 사람들에게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끔 하려는 계책이었던 셈이다.

그들 회원 사람이 기독교 신앙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인 위장을 하고 하이드를 찾아갔다. 하이드는 그를 친절하게 맞이하면 자기와 함께 머물자고 했다. 사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하이드와 3, 4 정도를 같이 지냈다. 하지만 그는 이상 있지 못하고 달아나 자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가서 그에게는 아무런 약점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이드와 3, 4 밤낮을 같이 지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아무 약점도 없다고 했다.

우리 가운데 과연 그런 시험을 통과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는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를 만나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을 있었다. 그는 아무런 결점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결점을 보았지만, 그것을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고 자기의 것을 훔쳐 가는 일을 겪더라도 그들을 이해했다. 그는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과 똑같았다.

진실로,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한다면, 그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게 것이다.

셋째, 그는 동료 선교사들에게 참된 사랑과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때로 주님께서 원하신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그들의 의견을 논박하기도 했다. 그가 속했던 선교부의 몇몇 선교사들은 처음 동안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그를 이해하게 되자 그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이드는 때로 비판과 험한 말을 듣기도 했지만, 번도 동료 선교사를 향해 불손한 언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내게 선교사들 가운데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고 한두 말한 것이 있다.

그가 까다롭고 우울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실 그렇게 보일 때가 있었을는지 몰라도 사실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얼마나 밝고 명랑했는지 모른다. 그는 순결한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농담도 잘했지만, 결코 도를 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매우 어울렸다.

생애 마지막 년을 남겨두고, 그가 동료 선교사들에게 끼쳤던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는 인도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던 기도의 용사들과 더불어 펀자브에 새로운 시도의 장을 열어 놓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인도를 사랑했고, 하이드와 함께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가 기도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기독교인들은 항상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으며, 그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는 양식처럼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하이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충성했다. 사람들이 주님이 아니라 자신을 우러러보는 같으면, 멀찍이 달아나 아무런 보지 않는 장소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곤 했다.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11:4) 말씀은 진실로 그를 두고 하는 말씀인 같다. 그가 하늘나라의 고향으로 돌아간 수년이 흘렀지만 그는 지금도 살아서 우리에게 말하며, 그리스도의 기도생활에 관한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그와 어울려 지내게 때마다 그리스도를 좀더 확실히 알게 되었으며, 항상 전보다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겨났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보다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쉬웠다. 만일 그에 대한 이러한 기억을 통해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기도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다면, 글을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잠들지않는기도의사도/ 하이드/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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