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2010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한번 보는 것으로 - 마크 듀퐁

장의 이미지가 마다 말보다 설득력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이 이미지와 그림에 강하게 반응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7번이나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작품을 생각으로만 감상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바라보시며 감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바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 우리 안에서 어떤 감각이나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지금은 봄이 오기  전입니다. 지난 겨울을 굉장히 추웠고, 눈보라도 잦아서 유난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12월은 역사상 번째로 추웠던 달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다른 도시에 있으면서 세상이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새싹이 움트고 꽃들이 피어날 아니라 하늘이 너무나 파랗다는 소식을 아내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듣게 되었다면, 저는 단지 봄이 오고 있단 사실에 감사하는데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사무실 창문 너머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봄이 활기찬 기운과 생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제가 모든 것을 직접 바라봄으로 인해 실재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대화하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우리와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믿습니다. 마태복음 179절에서 보듯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경험한 것도 환상을 통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은 환상을 통해서 경험한 예수님의 모습에 매료되어 예수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엘리사가 그의 스승인  엘리야에게 갑절의 기름부음을 요청했을 엘리야는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일이 네게 이루어지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대답했습니다. 엘리사 자신이 원했던 것을 받을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가 들을 귀와 보는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수레와 불말들이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들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열왕기하2:11-14)

일이 있은 엘리사는 엘리야의 사역을 그대로 물려받은 수준 이상을 감당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엘리사가 환상을 있는 눈을 소유함으로써 엘리야의 능력의 겉옷을 취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도록 기도했습니다. 물론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거듭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대화를 경험할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이고 개념적인 지식을 뛰어 넘어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게 되길 진정으로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청결한 마음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계속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하나는 욥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욥기서 초반부에서 욥은 의인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께서 도대체 욥의 삶에 그런 비극들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셨을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욥이 더욱더 깊은 친밀함 속으로 들어오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욥이 겪은 모든 불행에 대한 대가는, 잃었던 가족이나 재산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게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얻은 진정한 부는 욥기서 마지막 장에서 스스로 고배하듯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이 선하고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친밀함의 수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욥이 마음의 으로 직접 하나님을 보게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확립되고 성경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이후,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주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성경은 자체만으로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 외적인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 주장하면서 계시를 사모라는 것에 대해 경계해 왔습니다. 이러한 논쟁의 근거는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계시는 중요성 면에서 모두 동일한 수준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라고 하면 사무실에나 사도 요한과 동일한 수준의 권위를 가져야만 한다.’ 주장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와 예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으로부터 꿈과 환상과 말씀을 받았던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선지자들도 있다는 것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야나 엘리사 혹은 사무엘의 시대에는 그들 외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선지자의 생도들 존재했지만 그들의 예언에 대한 기록은 찾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시를 제한하셔서 당대의 백성들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일에만 사용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서는 당대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들의 예언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며, 헌대 교회들에게도 여전히 영향을 미칠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복음 전도자였던 빌립에게는 명의 결혼하지 않은 딸들이 있었는데 모두 예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해 주신 말씀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수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계시(extra-biblical)’ 성경이 가지는 최고의 영적 권위를 실추시키는 성경과 대치되는 계시(anti-biblical)’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다소 역할의 차이는 있지만 계시의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들은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존재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정확히 듣고 말해야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죄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영적인 영역을 듣고 있도록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신약시대에 대해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자까지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라고 다시는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계시를 통해 이해한 성경 지식은 지금의 신약시대에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일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게 일상적으로 썼던 편지의 내용을 수백년 전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깊은 수준의 계시를 받아서 예언적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던 것이나, 또는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말했던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채울 있었던 것은 그에게 영적인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막에 있을 눈을 들어 하나님의 형상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덕분에 아브라함 부부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경험할 있었고, 이를 통해 주변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던 사건이 마침내 모든 인류를 주님과 연결시켜 주었던 것처럼, 뼈에 관한 단순한 환상 하나가 상처 입은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교회를 시작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앞에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던 주님은 떠나시기 , 그에게 당시 죄악이 극에 달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과 비밀을 알려 주셨을까요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기를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친구로서 그를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범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친구되기/마크 듀퐁/큰믿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