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2010

한 알의 소금이 되어

옛날에 소금이 아주 귀하던 시대였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대궐 큰 연못가에 맷돌을 보물처럼 소중히 모셔놓고 있었습니다. 이 맷돌은 무엇이든지 원하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원하는 물건을 내주는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임금이 맷돌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나라에 퍼지자 한 도둑이 이 소중한 맷돌을 훔쳐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맷돌을 도둑맞은 것을 안 임금은 도둑을 잡아 오라고 명령하였고 도둑은 그 무거운 맷돌을 들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자 배를 타고 바다로 도망쳐버렸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로 도망친 도둑은 그제야 안심을 하고 맷돌 앞에 앉아 무엇을 요구할까 고민하다 당시에 쌀보다 귀하고 비싼 소금을 달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맷돌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맷돌아! 부자가 되고 싶으니 소금을 다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맷돌은 저절로 막 돌아가면서 소금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소금이 나오는 것을 보며 부자가 된 것에 흥분하며 좋아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점점 소금이 배 안을 가득 채우자 이제 소금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소금아 멈추어라.”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맷돌은 그 말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계속 돌아가며 소금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이 도둑은 소금을 멈추는 방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계속 쏟아져 나오는 소금에 그만 배는 가라앉고 결국 도둑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다 속에 가라앉은 맷돌은 지금까지도 계속 소금을 바다에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어렸을 적에 왜 바닷물이 짠가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동화책으로부터 본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만해도 정말 그래서 바닷물이 짠가 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때문에, 한 사람이 잘못해서 모든 바다의 물이 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염분이 많은 사해를 옆에 두고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소금이란 너무도 흔하고 값싼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자신들을 그렇게도 흔하고, 또 그렇게 흔하기에 값이 싼 소금에 비유하실 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을는지 모릅니다.

도리어 자신들을 세상에서 보물과 같은 존재로 말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존재를 사람들 앞에서 좀 치켜세워주시기를 내심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소금이 귀한 시대에 계셨다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소금.’ 이것이 주는 역할도 많고 담겨져 있는 의미도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소금은 썩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 자체가 썩지 않는 불변물이니까 다른 물체에 접합하는 동시에 그 물체도 썩지 않고 불변하게 됩니다. 썩고 변하는 물체는 자체로 생명을 양육하는 고로 결국 자기 전체가 썩고 또한 다른 물체까지도 썩게 하지만 소금은 자체로 균을 말살하여 자체가 완전히 보존될 뿐 아니라 다른 물체까지도 불변하고 썩지 않게 합니다.

왜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이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도망하다 그만 그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까?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은 염분이 많은 사해 근처에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주위의 가득했던 염분이 룻의 아내가 죽은 후 그녀의 몸을 덮어서 소금 기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은 타락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 땅을, 썩어져 가는 그 땅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그곳에 살고 있던 롯이 했어야 하는데 롯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날 롯을 통해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이 사회를 썩지 못하게 하는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경고가 그 소금 기둥에 담겨져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10일 한국의 한 영어학원 안에 어느 남자가 학원장인 여자만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 상담을 받는 척하다가 갑자기 흉기를 들이댔습니다. 코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원장은 기절한 척 바닥에 쓰려졌다가 이 사람이 당황해 하며 머뭇거리자 일어나 “나에게 왜 이러냐.”라고 말하며 이 남자에게 의자를 권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원장이 책상 위에 성경책을 꺼내놓고 말하기 시작하자 이 남자는 지난해 이혼하고 직장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일을 저지르게 되었노라고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준 것에 고마움을 느낀 이 남자가 원장에게 용서를 빌자 원장은 오히려 찬송가가 담긴 MP3를 손에 쥐여 주고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20분도 채 되지 않아 학원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사정했으며 원장이 신고하지 않으려 하자 끝내 이 남자는 스스로 수화기를 들고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생활 30년 만에 이렇게 드라마 같은 일은 처음”이라며 “강도상해가 무거운 죄이긴 하지만 진술이 서로 일치하고 원장이 처벌을 원치 않아 불구속 기소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한 여인이 한 알의 소금이 되어 썩어져 가는 한 사람을 썩지 아니하도록 막은 것입니다. 그 원장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사회에서 영원히 썩어진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남자 때문에 사회는 점 점 더 썩어져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원장 자신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있는 그 사회를 썩어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이 말은 우리가 세상에서 소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미 세상에서 소금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이 말은 우리가 이 세상 전체를 썩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거창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내가 있는 이 자리, 내가 있는 우리 가정, 내가 있는 이 지역을 썩지 않게 하라는 말입니다.

소금 기둥이 된 이름도 모르는 롯의 아내를 생각하면서, 한 알의 소금이 된 이름도 모르는 한 여인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한 알의 소금이 되어 나 자신이 있는 이 자리부터 썩어가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맡기신 소금의 사명을 감당합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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