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종종 실수를 한다. 의도적으로 죄를 짓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유혹을 따라 죄를 짓는다.
이것으로 인해 오는 자기 양심의 가책과 주변의 냉소와 비판은 자기 자신을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냉소와 가책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며 우리 스스로 경계선과 울타리를 단단히 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 심판 자책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비록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치욕스러운 실수, 그리스도를 욕하며 배반했던 일로 다시 주님을 만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뱃사람이 되기로 했다. 만약 주님이 다시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는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주님은 베드로가 가책하며 자신의 자아를 경멸하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그의 자아를 보호하고 경멸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수치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린다. 연약한 자아를 경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용맹과 강함을 위해 다시금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 그분의 십자가의 사랑을 무효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범죄와 실수를 인정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양심이 무디어지라는 말도 아니다. 단지 우리의 실상을 깨닫고 부끄러움과 가책을 느끼는 순간이 있지만 그것을 지속해서 붙들고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에 범했던 죄나 실수나 잘못이나 나쁜 습관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경주하는 자는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뒤는 것이지 그 자리에 앉아서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는 않다.
자책하고 슬퍼하며 장애물을 넘지 못한 것을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는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 그것은 주님의 권고요, 명령이다. 지금 당장 다시 시작하면 된다.
과거의 죄나 실패에 대한 기억은 이제 등 뒤로 돌려야 한다. 주께서 그렇게 하셨고 거기에 얽매이지 않도록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으로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들 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면 실망과 좌절의 혼돈으로 인해 삶은 뒤엉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방해하는 것을 과감하게 던져버려야 한다. 주님은 복음을 위해 양식이나 주머니의 전대 돈까지도 걸리적거리면 과감히 버릴 것을 요구하셨다. 아무 짐도 지지 않고 가벼운 심령으로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강력한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 양봉식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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