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2011

신령한 웃음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 즉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욥 8:20~22).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예배 중에 성령의 은사로 기쁨의 웃음이 폭발하고 있다. 이것을 ‘거룩한 웃음’(Holy laugh)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에 관해 무지한 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마귀 웃음’이라고 단정한다. 즉 악한 마귀의 역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전 3:4).

성령께서 나의 심령에 애통하는 마음을 가득히 채워주시면 우리는 흐느껴 울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성령께서 나의 마음에 넘치도록 기쁨을 채워주신다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질까?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거룩한 웃음’의 은사이다.

 1. 거룩한 웃음의 두 가지 주체
‘거룩한 웃음’이 폭발할 경우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다. 첫째는 나의 영이 기뻐 웃는 ‘내 영의 웃음’이 있다. 곧 내 영의 기쁨이 육체를 통해 웃음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둘째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웃음’이 있다. 즉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기쁨이 나의 육체를 통해 웃음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웃으시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웃음
규칙적으로 중보기도를 힘쓰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중에 종종 이유를 알 수 없는 탄식과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누구의 것일까? 나의 것이 아니라 내 육체 안에 거하고 계시는 성령의 탄식과 성령의 눈물인 것이다. 나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 나로 하여금 성령께서 그렇게 눈물로 중보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눈물로서,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나를 통해 우시는 것이다.

그와 똑같이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웃으실 수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웃으시도록 허락해 드리면, 그분은 마치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예언 혹은 중보)과 똑같이 우리를 통하여 웃으신다. 하나님은 언제 나를 통해 웃으시는가?

  a. 적의 계획이 좌절되었을 때
 기도나 찬양 가운데 터져 나오는 웃음은 원수의 계획이 깨어졌다는 표시이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웃으시며 우리를 해치려 하는 적을 모욕하시는 것이다. 이때에 성도들의 웃음은 사단의 진을 흔들고 부수는 영적 전쟁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를 웃으시리니 모든 열방을 비웃으시리이다”(시 59:8).

  b. 주님이 나를 지극히 기뻐하실 때
웃음이란 기쁨이 넘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쁨이 넘치게 되면 미소만 짓고 있을 수가 없다. 큰 소리로 웃게 된다. 기도나 찬양 가운데 폭발하는 웃음은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기뻐한다는 표시이다. 즉 그것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기 때문에 나를 통해 웃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웃음’은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기뻐하신다는 표적(sign)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singing) 기뻐하시리라”(습 3:17).

그러므로 기도나 경배 중에 거룩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하셨고 열납하셨다는 증표이다.

예수님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기쁨을 우리 안에 주신다는 것은 내 안에서 예수님이 기뻐하시니 내가 기쁨의 표현으로 웃는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더욱 자주 웃으시도록 허락해 드리자.

 2. 내 영의 웃음
하나님이 나를 통해 기쁨으로 웃으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내 영이 기쁨에 넘쳐 웃게 하실 때도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a. 나의 기도가 응답되었거나, 응답이 오고 있다는 표시
기도하고 웃음이 나오면 응답받은 줄 믿고 계속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라. 만약 당신이 한 시간쯤 방언으로 기도한 후에 갑자기 웃기 시작 하였고, 또 방언으로 찬양까지 했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당신이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던 간에 그 문제가 완전히 기도로 끝났다는 것, 곧 기도한 것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희락’이며(롬 14:17), 또한 희락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갈 5:22). 그래서 웃음이란 응답의 실상이요 증거이다(히 11:1).

  b.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표시
성령은 희락의 영이다(갈 5:22). 그러므로 기도나 예배 중에 웃게 되었다면 그것은 나의 심령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다는 표적이다. 웃음이란 기쁨(희락)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롬 14:17).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주께서 내 마음 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 그런데 어떻게 웃음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2. 거룩한 웃음의 은사가 주는 복
거룩한 웃음의 은사는 다음과 같은 복을 가져온다. 그것은 내적인 치유(Inner Healing)와 외적인 치유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웃음치료 전문가’이시다.

1) 웃음은 마음의 양약
웃으면 심령이 치유를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웃게 된다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기적이 온다. 그러므로 거룩한 웃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여 축복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증거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성령의 역사 속에서 웃음을 경험하신 분들은 한결같이 심령 천국을 맛보았다고 한다. 심령 천국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내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 따라서 거룩한 웃음을 통해 상한 마음이 치유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앞에 닥쳐있는 어려운 문제까지 해결을 받는 은총이 임한다.

  2) 웃음은 육체의 보약
웃음은 심령이 치유될 뿐만 아니라 육체의 질병도 물리친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기 때문이다. 모든 질병의 약 70%는 마음에 원인이 있는 심인성 질환이라고 한다. 질병의 원인은 대개 마음으로부터 온다. 마음의 병이 심령을 상하게 하고 면역력을 떨어뜨려서 육체의 질병을 가져오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웃고 또 웃으면 양약이 되어 나의 심령이 모든 질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심령이 상하면 고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현대 과학도 웃음은 엔돌핀을 끌어내어 면역체계를 강화시켜주므로 투병중인 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또한 웃음은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고 장기에 마사지 효과를 준다. 즉 우리가 웃는 동안 횡경막이 움직여 신장, 간, 위 같은 장기를 자극해 오장 육부에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5분 동안 웃는 것이 5시간의 운동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현대의 ‘웃음치료전문가’들은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 웃음‘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분명히 성경적,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다.

  ‘거룩한 웃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신령한 역사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잘 알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말을 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욥기에 성령의 역사 즉 ‘거룩한 웃음’을 방해하는 자들을 향하여 무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 하신즉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욥 8:20~22).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뿐이다(잠 26:3). 계속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면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는 말과 같이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 이유는 희락(기쁨)은 성령의 열매인데 성령을 거스르고(행 7:51), 근심하게 하며(엡 4:30), 훼방한다면(마 12:31~32)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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