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에덴 동산을 거닐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그 영이 죽었으므로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정*의를 소유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만물을 아시고 슬퍼하시고 분노하시며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영이 살아났고 이제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 대화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논리를 세워 정연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할 때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리있게 하나님께 구하면 먼저 우리 자신에게도 확신이 오고 은혜가 되면 하나님께서도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기준을 삼아야 하나님 앞에 질서 정연하며 논리가 서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재판관과 변호사가 헌법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하듯이 우리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 축복을 기도할 때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8:9)는 말씀을 들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가 있습니다.
또 병든 사람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라는 말씀을 들어 병 낫기를 간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생명감으로 넘치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생활의 터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중언부언한다든가 인간의 생각을 내세워 억지를 부린다면 그것은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을 근거로 하여 나누는 대화는 하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복이 나의 복이 됩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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