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1]
이 성경 구절을 읽다보면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큰 날개로 열심히 날갯짓해서 창공을 비상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 구절을 묵상할 때마다 주먹을 뿔끈 쥐며, "나도 독수리처럼 최선을 다해 날갯짓해서 저 멀리 하늘로 날아오르겠다"라고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비장한 모습으로 기도한다.
"하나님, 독수리처럼 잘 날 수 있도록 저에게도 강한 날개를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독수리는 자기 날개를 휘저으며 비상하는 새가 아니다. 사실 독수리는 나는 것에 약한 조류로, 날기에 굉장히 열악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활짝 펴면 2미터에 이르는 육중한 날개를 지녔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하늘을 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독수리는 자기 날갯짓 대신에 공기의 흐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태양열이 땅에 비취면 공기가 따뜻해지고 그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갖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상승 온난 기류'를 찾아 들어가 날개를 펼친 상태로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다. 성경이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영어 성경 NIV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40:31) 에서 '올라감
이라는 단어를 "soar on"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단어는 마치 상승 기류를 타기 위해 접근하는 글라이더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메시지 성경은 "날개를 펴 날아오르다"라고 번역해 이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 독수리가 가지 날개를 이용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글성경의 표현처럼 "날개치며" 자기 몸부림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상승 온난 기류'를 만날 때 자기 날개를 펴서 그 기류를 타고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다.
그렇다. 독수리가 자기 날개를 이용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글성경의 표현처럼 "날개 치며" 자기 몸부림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상승 온난 기류'를 만날 때 가지 날개를 펴서 그 기류를 타고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몸부림으로 날아보려고 바둥거리며 산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참새의 모습과 같다.
겉으로 보기에 참새는 독수리와는 달리 날기에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벼운 몸통과 날갯짓하기에 적당한 아담한 날개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참새는 날기에 좋은 그 신체 조건을 이용해 날갯짓하며 하늘을 가벽게 날아다닌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결과적으로 참새가 높이 나는가? 독수리가 높이 나는가?
게다가 참새처럼 자기 날갯짓으로 살아가는 존재는 금방 지칠 수밖에 없다.
이사야서 40:30절에 나오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설명한다.
원어로 보면 여기 나오는 '소년'이라는 표현은 "인생의 전성기에 속하는 젊은 남자"를 뜻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힘이 펄펄 넘치는, 인생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소년'이라도 결국은 피곤하며 곤비하며 쓰러지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이와 같이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 이루어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신앙생활은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 참새처럼 날개짓하는 내 노력을 내려놓고 독수리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상승 온난 기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상승 기류를 만날 때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서 그 상승 기류에 내 몸을 맡겨야 한다.
<보호하심중에서...이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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