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2011

요한의 뒤에 오시는 분의 세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8:34)



세례 요한은 아주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체험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도 분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중요한 특징은 첫째, 그의 메시지는 체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입니다. 둘째,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의 관계도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간증을 보면 늘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장 15절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보다 앞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신앙 고백인데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의 선재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났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먼저 계신 분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선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 보다 앞서 계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충만’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헬라어로 보면 차고 넘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치 컵에 물을 더 부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찬 것을 의미합니다. 루터는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샘이 바로 충만의 개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이 충만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 그분의 능력, 그분의 지혜,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7절에서는 ‘주어졌다’‘왔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주어졌다는 말은 누구누구를 통해 온 것으로 율법은 모세로부터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주님으로부터 임하는 은혜는 온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온 것의 의미는 예수님 자체가 은혜라는 말씀이고, 예수님 자체가 구원이며 우리의 전부라는 설명인 것입니다.


18절은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해의 능력에 들어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19절에 나오는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스스로 그려갑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실족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을 믿어야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셔서, 성경대로 사시고, 성경대로 가신 후, 성경대로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다시금 예수님에 대해 재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한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내가 그리는 예수님에 그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목동제일교회 김성근목사)

오늘의 Daily Bread는 (http://blog.naver.com/paul_jhkim)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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