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0/2009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골 3:16).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을 다해 찬양해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세 가지 유형의 찬송을 나열했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에 언급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똑같은 찬양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세 가지 모두 다른 유형의 찬양이다.

‘시’(psalm)는 구약의 시편을 말하고, ‘찬미’(hymns)는 시편 이외의 찬송을 뜻한다. 그렇다면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성령의 감동 아래 즉흥적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일반 찬양과는 다른 독특한 장르의 찬송인 것이다. 다음과 같은 노래들이 신령한 노래이다.

 1. 영으로 하는 찬양- ‘신령한 노래’의 첫 번째 유형은 “영으로” 하는 찬양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서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찬양’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방언’에 대하여 말하다가 나온 말이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4~15).

여기에서 ‘마음으로’는 헬라어로 ‘누스’(νους)인데, ‘이성적으로’라는 뜻이다. 방언기도는 영 (spirit)이 하는 기도이므로 통역의 은사가 없으면 그 기도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나의 마음(mind), 곧 지각(the understanding)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영으로’(with the spirit) 기도하고, 또한 ‘지각으로’(with the understanding)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바울은 나의 영이 ‘기도’할 수 있듯이 나의 영으로 ‘찬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b). 영으로 찬양하는 것은 마치 방언기도를 드리는 것과 같다. 곧 이성의 영역을 떠나 내 영이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찬송의 장르가 있다. 이것을 보통 ‘방언 찬송’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교회 성도들이 방언 찬송을 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기존의 찬송가 곡에 맞추어 부른다. 그것은 내 영이 ‘자유롭게’ 부르는 신령한 노래가 못 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진정한 영의 찬송은 일정한 곡이 없고, 곡조에 자유함이 넘친다. 다시 말하면 가락이 제마음대로란 얘기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가사와 가락(곡조)을 주셔서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으로 하는 찬양이 ‘신령한 노래’인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 신령한 노래로 찬양할 때 그것은 수십 성부의 아름다운 찬송이 된다. 성령이 각 개인의 목소리를 인도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모아서 화음을 이루며 영으로 찬양하게 할 때 창출되는 그 조화란, 참으로 천사들의 합창 그 자체처럼 들릴 때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3층천’ 예배인데, 이 때 회중은 강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

 2. 새 노래(a new song) - ‘신령한 노래’의 또 한 가지 유형으로서 “새 노래” 라는 것이 있다. 성경은 도처에서 ‘새 노래’로 주를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33:3; 42:10; 5:9). 이 ‘새 노래’ 역시 ‘영의 찬양’처럼 악보도 없는 노래를 즉흥적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으로, 곧 지각을 사용하여 노래한다는 점이 ‘방언 찬송’과 다르다.

즉 ‘새 노래’는 성령께서 곡조와 함께 내 이성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를 즉흥적으로 주시는데, 바로 그 가사와 가락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한 가사와 곡조가 없는 노래다. 이것은 '예언적 노래'로서 배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하느님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9). 하느님은 예레미야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그는 예언할 수 있었다. 그 하느님은 우리 입에 노랫말도 주신다. 그래서 우리로 새 노래로 찬양하게 하신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느님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1~2).

그리하여 우리는 즉흥적으로 ‘예언적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초자연적 노래이다. 이러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하느님께 굴복한다. 성령의 능력이 그 노래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내 입에 새 노래를 두셨으니, 곧 우리 하느님께 드릴 찬양이라.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주를 의지하리로다”(시 40:3KJV).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됨으로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하느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 하리라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고전 14:24~26).

이와 같은 ‘신령한 노래’는 초대교회에서 체험하였고, 일찍이 ‘다윗의 장막’에서도 불리어졌었다.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 로 일하는 자의 수효가 이러하니라”(대상 25:1).

여기서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라는 것은 “예언을 하게 했다”(prophesy)는 뜻이다(영어 성경과 비교해 보라). 이 귀한 노래가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다시 회복되고 있다.

  3. 높은 찬양(high praise) - ‘신령한 노래’의 범주에 ‘높은 찬양’(high praise)이라고 하는 또 한 가지 유형의 찬송이 있다. 영적으로 깊고 강한 찬송으로서, 시편 149 6절에 나온 찬양이다.

 “그들의 입에 하느님을 향한 높은 찬양들이 있게 하고, 그들의 손에는 양 날 이 있는 칼이 있어”( 149:6 KJV).

여기에서 ‘높은 찬양’은 원어 ‘로맘’(םםור)의 번역이다. 이 단어는 시 66:17과 함께 성경에 꼭 두 번 사용되었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시 66:17). ‘로맘’(םםור)은 ‘룸’(םור)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룸’은 ‘높이다’ ‘높게 하다’의 뜻이다. 높이는 것은 ‘찬양’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맘’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이 ‘높은 찬양’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찬송’이 실제로 어떤 찬송을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찬양과 경배’ 사역에서 찬양 인도자(worship leader)로 종사하고 있는 분들은 이 찬송이 영적으로 하느님과 좀더 친밀하게 되었을 때 나오는 자연적이고 즉흥적인 노래(spontaneous song)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찬양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면 음량은 작아지고, 템포는 느려지고, 소리는 높아진다. 가사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찬송이 영적으로 매우 높은 경지에 있을 때 나오는 참으로 신비한 찬양이다. 이것이 ‘높은 찬양’으로 이때에 회중은 하느님의 임재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된다.
  
이 ‘높은 찬양’은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사단의 진을 쳐부수는 역할을 한다. ‘높은 찬양’은 영적 전쟁의 아주 강력한 무기이다(시 149:6~9).

6. 그들의 입에 하느님을 향한 높은 찬양들이 있게 하고, 그들 의 손에는 양 날이 있는 칼이 있어

7. 이방에 복수하며 그 백성을 처벌하고

8. 그들의 왕을 쇠사슬로, 그들의 귀족들을 쇠 족쇄로 묶어

9. 기록된 판결을 그들에게 시행하게 할지니, 이 영광이 그의 모든 성도들에게 있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할지어다.

우리에 입에는 높은 찬양이 있고, 손에는 양날 선 칼이 있어야 한다. 칼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6:17; 6:17).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을 향한 높은 찬양’은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영적전쟁의 강력한 무기다. 말씀의 검을 높이 들고, 주께는 찬양을 높이 올 릴 때, 성령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여 흑암의 세력이 쫒겨 가게 된다.

맺는말 - 우리는 모두 ‘신령한 노래’를 부르도록 요청받았다. 그러므로 ‘신령한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것은 방언찬송, 새 노래, 높은 찬양 등과 같은 '초자연적 노래'이다. 이러한 찬양들은 우리의 의지를 뛰어 넘는 신비한 찬양들이다. 이 놀라운 영적 찬양들은 성령의 역사가 강했던 초대교회에선 예배할 때마다 흔히 불려졌던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방언과 더불어 교회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오다가 20세기에 이르러 성령의 역사와 함께 찬양과 경배라는 새로운 양식의 예배가 시작되면서 마침내 신령한 노래들도 다시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신령한 노래’가 회복되고 있다. 의식적이고 예전적인 예배에서는 이러한 놀라운 찬양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순서에 따라 예배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배를 우리가 만든 순서에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맡길 때, 우리는 모두 예배 가운데서 ‘신령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결국 더욱 풍성한 찬송생활의 권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유석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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