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2010

중보기도: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계속되는 생의 단계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면이 결여 될 때 신앙 생활이 그저 오리무중의 상태에만 머무르기 마련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참모습과 기쁨을 저버리는 결과로 되고 만다.

인도를 받아야 할 이유와 그 당위성
1. 하나님의 인도자 되심 - 13:21-22; 23;4, 32:8, 48:14, 17; 48:17; 3:6
2.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 10:9; 4:34, 5:30, 6:38-39; 22:42; 1:4
3. 성도들의 전례
① 개인적 다윗(삼상23:2; 삼하2:1; 25:4-5, 27:11; 13:22) 바울(18:21; 1:10; 고전1:1)
② 중보적 바울(1:9), 에바브라(4:12), 히브리서 기자(13:20-21)
③ 연합적 아가보 등(21:14)
④ 거역적 여호수아(9:14), 사울(대상10:13-14), 바리새인(7:30)
4. 성경의 명령 12:2; 5:17, 6:6
5. 신자의 의무 6:10, 7:21, 12:50; 9:31; 벧전4:2; 4;15; 12:17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고찰
1. 확정된 뜻 - 이는 인간의 순종이나 협동 여부에 관계 없이 하나님께서 실행하시기로 작정한 불가변동(不可變動)의 계획이다. 이런 뜻은 이미 확정되고 계시된 것이므로, 다른 가능성을 조사하는 등 더 알고자 하는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2:33, 20:27; 9:19; 1:11; 6:17; 4:11)

2. 바라는 뜻 -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되 인간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시 일반적인 뜻(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성경에 명확히 제시된 원리들-2:18)과 특정적 뜻(각 그리스도인마다 다르게 적용되며 성경에 세칙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는 것들-결혼 대상, 직업 선택, 학교 결정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일반적인 뜻 18:14; 살전4:3, 5:16-18; 벧전3;17, 4:19. 그 이외에 성경에 나타난 각종 교훈(십계명, 명령과 권면 등이 이에 속한다. 28:19-20; 고전10:31; 고후6:14; 4:29; 4:4; 12:15-16 일반적인 뜻과 관련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때는 이미 제시된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특정적인 뜻 18:21, 21:14; 1:10, 15:32; 고전4:19, 16:7; 고후8:35. 특정적인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일일이 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을 통해 분별하고 확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특정적인 뜻을 아는 길
1. 성경을 통해 - 때로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어떤 특정한 구절에 감동을 받고 우리의 행 방침을 결정하는 수가 있다. 바로 나의 상황에 맞게 성령께서 어떤 구절을 통해 말씀하시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대부흥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교인을 독려해 어떤 사업에 착수함으로써 교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으려는 비전을 갖게 될 수도 있다. Deborah 의 예) 중보기도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고, 그들의 각자의 영성 형성을 돕는다. 그들의 부족한 부분들을 일으켜 세우고, 장점은 더욱더 계발할 수 있도록 영적 성벽을 쌓으며 한 손에는 말씀과 다른 손에는 기도로 영적 전쟁에 임할 수 있도록 일깨울 것이다.     
          
단지 조심해야 할 것은 성경 구절의 전후 문맥은 무시한 채,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에게만 유리하도록 함) 격의 변덕스러운 해석을 시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공상에 잠기기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일수록 심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전체적 뼈대와 여러 가지 원리들에 익숙해 있을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시1:2, 주님과 깊은 교제하는 가운데에서 이러한 인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다른 인도 방법으로 보증 및 확인이 될 때에야 비로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할 수 있다.

2. 자신을 통하여 - 하나님의 뜻은 우리 자신이 기도 중에 갖는 확신이나 직관을 통해서, 또 성화된 이성에 입각한 자신의 판단력과 평가를 통해서, 때로는 자신이 갖는 개인적인 취향과 소원을 통해서 분별할 수도 있다.

기도 중의 확신이나 직관 하나님께 어떤 특정한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 가운데, 때로 마음속에 예상하지 않았던 안정감이나 확신 또는 반대로 부담감이나 가책 등이 찾아오는데,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감정적 변화는 많은 경우 신적 의미와 무관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최종적 근거나 독특한 요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고 이미 주어진 다른 인도 방법주로 성경의 윤리, 판단력 등에 종속되는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성령의 음성 8:29, 10:19, 11:28, 13:2, 20:23, 21:4, 11. 이상의 성경 구절에 기초한다면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에 있어서 매우 확실하고 중요한 수단이 틀림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한 개인이 무엇을 보고 성령의 음성이라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성령께서 오늘날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지 않다거나, 이상과 같은 인도를 안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확실한 역사를 어떻게 자기 욕망의 투사나 혹은 심한 경우 사단의 시험과 구별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의 몇 가지점을 고려해야 한다.
   1) 성령의 음성이 극적으로 개인을 인도하는 역할은 주로 사도행전의 몇 부분에만 언급되어 있다. 만일 이런 식의 인도가 아주 본질적이고 표준적인 것이라면 신약의 다른 부분특시 서신에 분명히 제시되었을 것이다.
   2) 성령의 음성과 역사를 말할 때 꼭 한 가지 형태만을 전제하거나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예루살렘 공회에서는 주로 보고, 토의, 의견 교환만 했는데행15:6, 7, 12, 13, 19 그들이 편지를 보낼 대는 성령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28. 즉 내적 음성뿐아니라 별로 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합리적 토의 과정을 통해서도 성령께서는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3) 초대 교회에는 오늘날처럼 신약이 존재하지 않았고 전혀 기독교가 생기지 않은 실정이었기 때문에, 사도와 선지자를 중심한 몇몇 인물들에게 이런 인도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도외시하고 주관적인 내적 음성에만 영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성경적인 일이다. 물론 이 말이 사도행전과 같은 인도가 오늘날에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히 예외적이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4) 자신에게 성령의 음성이 들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날카로운 자기 성찰의 과정(영성 훈련)을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욕망의 투사나 사단의 시험이라는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이의 경험이 성령의 음성에 의거한 것이라면, 절대 기록된 성경의 원리에 배치되지 않을 것이며, 공동체의 유익에 기여할 것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판별을 부과하지 않을 때에는 성령의 음성이라는 미명 하에 여러 가지 비성경적인 생활 태도가 난무하게 되고, 이기주의로 가득 찬 변덕과 기습(奇襲)이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며, 사단의 육신적인 가치관이 진정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조차 삼켜 버리게 될 것이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일은 반드시 성경의 원리, 공동체적인 확인, 다른 인도 요인과의 합치 여부를 조사하는 등의 진지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5)비록 자신이 특이한 성령의 음성을 들었고 그 진정성이 입증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영성spirituality이 남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남도 자기처럼 특이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내세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어쩌면 그 당사자가 너무나 강팍하고 이미 말씀에 나타나 있는 명백한 원리를 뻔히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불신의 상태와 영적 미숙성을 깨뜨리기 위해서 성령의 음성을 특이하게 들려 주었을 수도 있다. 자신에게 있는 특이한 체험과 경험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생명이 아니다, 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이 정말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면 그의 인격과 가치관, 삶의 모습을 통해서 그 열매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판단력과 평가 5:38-39; 6:5; 고전16:8-9.  성경의 원리와 하늘의 지혜약3:17로 무장이 될 때 우리는 건전한 판단력과 논리적 분석이나 종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주어진 정보와 개인의 가능성을 분석 · 평가함으로써, 여러 가지 변수와 적합성 여부를 궁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이다. 이것은 특히 장래의 진로에 관한 계획을 세울 때, 일꾼을 선발할 때 더욱 그렇다.

취향과 소원37:4; 2:13; 딤전3:1.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데 있어 우리의 내적 욕구와 소원도 한 가지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늘 신령한 생활을 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오류 없이 하나님의 뜻이냐라고 생각하는 착각의 자세이고, ‘나 같은 세속적인 인간에게서 무엇이 나오겠는가? 내가 좋게 여기는 것들은 대개 하나님의 뜻이 아닐거야라고 부정적이고 자멸적이며 소극성에만 머무르게 된 태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건전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타인을 통해서 -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님께서는 동시에 다른특히 믿는 이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 주로 성숙한 이들의 조언이나, 공동체적 문제가 있을 때 갖는 의사 교환, 협의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

1) 예언 기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예언이란 망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대언하는 것으로서 윤리적이고 권면적인 성경이 강하다. 그래서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안위하는 일을 한다고전14:3, 31. 물론 대로 미래에 관한 일을 예견하는 요소가 있을 수는 있다행11:28, 21:11. 그러나 한 개인의 미래사나 궁금증과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는 식의 예언은 사실상 미신적 복 개념과 성경의 가르침을 피상적으로 엮어 놓은 야릇한 혼합주의적 시도일 뿐이다.

2) 조언과 충고 12:15, 13:18, 19:20. 성숙하고 경험이 풍부한 이로부터 조언과 충고를 들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도움을 얻는다. 이것은 특히 직업을 결정하거나 결혼 등 인생의 대사에 부딪혔을 대 더욱 그러하다. 어떤 충고를 안 받아들임으로써 어려움을 겪는 수도 있다바울의 충고를 거절한 백부장(27:9-11, 21), 노인들의 교도를 무시한 르호보암(왕상12:6-8, 12-16). 그러나 조언 자체를 하나님의 인도로 간주하거나, 그 조언 내용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힘이 된다기 보다는 여러 조언자들의 말을 들음으로써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좀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게 해서는 결코 우리가 성숙해 나갈 수 없다.

3) 토론과 의사 교환 및 협의 6:2-6, 15:6-22, 28, 15:36. 이 같은 수단은 한 개인의 문제보다도 공동체와 관련된 의사 결정의 경우에 필요하다. 이 때에는 개인의 의견, 주어진 상황, 의논과 평가, 공동의 기도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4. 환경을 통하여 1:8, 8:4, 13:50-52, 14:6, 20:3, 25:10-11; 1:13; 고전16:8-9.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데 있어서 환경의 요인을 고려한다 함은, 어쩔 수 없이 반응하게 하는 급박한 상황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가능성의 문들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관찰하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어떤 환경과 기회가 주어졌다 하여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런 환경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성경의 가치관에 입각해 반응할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는 환경적 요인이 오히려 옳지 않은 방향으로 인도한 경우이다. 다라서 각 사람은 그 환경에도 불구하고 거슬러 행동했다(혹은 해야 했다). 삼상24:4-7, 26:5-12; 삼하11:2-3; 요나1:3.

5. 기타의 인도
1) 구약적 방식: (20:3, 31:24; 왕상3:5; 31:23-26; 2:12, 22). 양털(6:36-37). 우림과 둠밈 (출 28:30; 27:21; 33;8; 삼상28:6). 제비 뽑기(16:33; 요나1:7; 1:9; 1:26). 이상의 방법들은 그 모두가 성령님이 신자 각 사람과 공동체에 내주하시기 전에 채택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기록된 말씀, 성령님의 내주에 따른 판단력과 의견 교화 등의 방법으로 더 확실하고 올바른 인도를 받게 되었다. 기드온의 양털 시험은 그 당시 기드온에게는 성령이 없었거나 매우 적었기 때문이요, 또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하신 약속들을 못 믿을 정도로 믿음이 약한 것 때문에 그 믿음을 받쳐 주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었으나 결코 기드온을 본받으려 할 필요가 없다.

2) 환상과 천사: 환상(9:10, 10:3, 17, 16:9, 18:9, 22:17-18, 고후12:1). 천사(1:20, 2:19; 5:19, 8:26, 10:3, 11:13, 12:7, 27:23). 이 두 가지 인도 방법은 다른 어떤 것보다 드물고 가장 예외적인 수단이었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물론이고, 환상을 보거나 천사의 인도를 받은 몇 인물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와 같은 인도 방법이 오늘의 우리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거의 드물다고 하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의 어떤 구절도 환상이나 천사의 지시가 하나님의 인도 방법 가운데 있으리라는 암시가 없기 때문이다. 또 설령 이런 식의 인도를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더 신령해지거나 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에 허락하시는 기본적 인도 원리즉 우리가 의거해 살아야 할 기본적 확신, 자세, 생각 및 가치 판단 등이 서서히 침투되는 것 는 말씀과 동떨어져 주어지는 내적 자극의 문제가 아니요, 성령님이 조명시키고 적용시키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의해 양심이 지도를 받는 문제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기본 형태는 우리를 위한 생활 지침으로 주어지는 적극적인 이상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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