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사랑으로 예수님과 동일한 멍에를 지는 부르심
A. 성령님의 첫번째 중요과제는 교회안에 첫계명을 첫번째 자리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B. 사랑으로 동일한 멍에를 지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C.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이면서 영원한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위한 신실한 자녀들과 예수님의 영원한 동반자로 함께 동일한 멍에를 지는 주님의 신부를 포함하는 것이다.
1. 의무적인 순종: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이 예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실 것이다 (빌 2:9-11).
2. 자발적인 사랑: 사랑의 참된 정의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관계를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자발적인 것이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그 분을 초대하기 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D.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초자연적인 권능을 부여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그 분께 그 사랑을 돌려 드리는 기름 부으심이야말로 성령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5:5)
D.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초자연적인 권능을 부여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그 분께 그 사랑을 돌려 드리는 기름 부으심이야말로 성령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5:5)
E. 우리는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사랑의 방식대로 그렇게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로 부터 사랑을 원하시는 데,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의 주권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사랑이다. 마지막 때의 핵심적인 이슈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정의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사랑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적인 문화가 아닌, 하나님이 규정하시는 방법으로 사랑 을 정의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 가운데서 사랑, 해방, 그리고 자유에 대한 많은 정의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 많이 있다. 하나님은 성경에 있지도 않은 사랑의 정의로 우리를 부르시는 히피(hippie: 인간적으로 자유로운 사랑을 외쳤던 자들로 1960년대 197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다)족이 아니시다.
F.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순종의 영 가운데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서 정의를 내리셨 다(요14:21).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 리라. 23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 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15-23)
G. 산상수훈(마5-7)은 하나님의 규정대로 사랑을 정의한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의 정욕과 관계된 6 가지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거부하고(마5:21-48),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도와주는 긍정적인 5 대 영양소들을 추구함(마6:1-18)으로, 온전한순종을 사모하면서 팔복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초청이다(마 5:3-12).
H.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산상보훈의 삶을 얼마만큼 살아가고 있는 가에 따라 영적인 성숙함을 측량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역을 받고 있는 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만큼 이런 가치들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에 따라 우리의 사역의 영향력을 측정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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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크고 첫째되는 계명
A.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키워 나가는 것이 하나님께는 최우선 순위이며, 성령의 첫번째 강조점이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B. 예수님은 이것을 첫번째 선택이라 부르지 않으셨고 첫번째 명령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주님을 향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이 성령의 첫번째 강조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지만, 주님이 첫번째 원하시는 그 무엇을 여전히 찾고 계신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첫번째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분이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좇으신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비밀을 이 진리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
C.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돈독하게 키워나갈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부르심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구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가 보다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가장 큰 부르심의 소원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의 마음의 크기 보다는 사역의 크기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는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자유함을 가져다 주고, 우리에게 가장 큰 상급이 되는 것이다.
III. 본문 #1 전심으로 사랑하라
A. 본문 #1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우리는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의무적인 봉사 이상의 것을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감성주의로 빠지지 않고도 우리의 마음을 만진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 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자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더 큰 사랑을 키워 나아갈 수 있게 된다.
B.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어떤 것에 대해 우리의 사랑이나 애정을 거기에 “고정”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추구하기로 결정한 것에 우리의 감정이 따라가게 된다. 우리가 마음을 바꾸면 성령님은 우리의 감정을 바꾸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당신의 마음을 정하면 당신의 사랑의 감정이나 애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 "(시91:14)
C.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선택을 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했다.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D. 우리가 지닌 감정들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으로 부터 사랑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늘 부지런히 정결케 하고 주님께 집중되어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돈이나 명예욕, 부적절한 관계, 중독, 쓴뿌리, 상처 등과 같은 데에 부적절하게 연결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E. 기독교는 한 사람과 지속적인 사랑의 대면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의 대면을 하지 않으면 불타는 헌신과 의에 대한 과격적인 선택들도 우리를 견고하게 지켜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F. 우리는 우리의 감정들이 다양한 정욕에 점차적으로 동요되게 만드는 헛된 상상력에 빠지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뜻에 반대되는 감정들을 거부함으로 주님의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IV.본문 #2: 뜻(생각)을 다해 사랑하라
A. 본문 #2: 뜻을 다해 사랑하라: 우리는 우리의 생각(뜻)을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분발시켜 주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의 올바른 것들로 우리의 생각을 채우게 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용량도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잘못된 것들로 생각을 채우게 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용량도 줄어들게 된다.
B. 우리의 생각은 속사람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되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도 큰 영향을 준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생각 속에서 일어난다. 인간의 영의 언어는 영상이나 그림이다.
C. 우리의 생각은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내면의 영화 스크린”이다. 우리의 기억속에 저장된 카메라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연출가가 되기도 하고, 주연 배우가 되기도 하며, 내면의 영화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 영화를 제작하기도, 출연하기도 하면, 보기도 한다. 우리는 거기서 영웅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D. 우리의 생각은 결코 끌 수 없는 우리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우주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속에 있는 영상들의 방향을 바꿀 수는 있지만 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두운 생각들을 새로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규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함으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 내면 안에 보는 영화의 대사를 새롭게 쓸 수가 있다.
E. 우리의 생각은 그렇게 놀라운 잠재력과 커다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성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가볍게 여긴다. 그들은 성령과 성경으로 생각을 채울 수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헛된 것을 공상하고 오락들로 채우고 있다.
F. 우리는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채우는데 시간을 투자함으로 하나님을 생각(뜻)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이것을 통해 그 분에 대한 진리에 동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데 시간을 투자함으로 열정적인 왕이신 신랑과 온유한 아버지이신 그 분의 마음에 대해 거짓말하는 마귀의 속임수를 거부할 수 있게 된다.
G. 예수님은 부도덕의 영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드러내셨다. 그것은 먼저 생각 속에 뿌리를 둔다(성적인 상상들), 그리고 보는 것이나 “음란하게 (사람이나 혹은 미디어를 통하여) 쳐다보는 것”을 통해 자극받게 된다.
H. 간음의 진행: 눈으로 간음하는 것은 마음의 간음으로 인도하고 그것이 육체적인 간음의 상황으로 유도하게 된다. "28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I. 원리: 성적인 순결과 통제는 눈의 영역에서 먼저 확정이 된다. 예수님은 부도덕의 영의 역사를 막기 위해 최전방에 있는 눈의 관문의 역할을 우리가 깨닫게 되기를 원하신다. 원리: 성적인 순결과 통제는 눈의 영역에서 먼저 확정 된다. “눈의 관문”을 닫는 것이 부도덕한 열정의 불을 끄는 것 보다 더 쉽다.
J.욥은 제 7계명의 영과 눈의 간음이 가지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9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욥31:1,9)
V. 본문 #3: 힘을 다해 사랑하라
A. 본문 #3: 힘을 다해 사랑하라: 이것은 우리의 자연적인 자원(시간, 돈, 힘, 재능, 말씀과 영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자원을 지혜롭게 사용함으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원들을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편안함과 명예를 증진하는 데 사용한다.
B.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투자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도울 때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께 보여 드리는 그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우리는 산상수훈의 5 가지 행위를 통해 우리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한다(마6:1-8). 우리는 섬기고 베풀며(6:1-4, 19:21), 기도하고(6:5-13), 원수를 축복하고 용서하며(6:14-15; 5:44) 금식(6:16-18)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C. 하나님은 우리의 힘을 배가 시키시고 다시 그 힘을 우리에게 돌려 주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그렇게 하신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고 이것을 사랑의 표현으로 높이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VI. 본문 #4: 영혼을 다해 사랑하라
A. 우리의 영혼을 다해 사랑하라: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성취나 다른 사람으로 부터 받는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하여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우리의 성공이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B.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성취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서 찾을 때, 우리는 허무함에 사로잡히는 감정의 폭풍에 휘말리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우리 자신의 성취를 매우 작거나 하찮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절감과 무시받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C. 우리는 우리의 성공을 하나님께 사랑 받고 택함을 받은 존재로,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을 다시 드리는 존재로 정의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개인의 소중함을 결정하는 것이 된다. 우리의 성취나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 또는 물질의 소유보다는 이 진리에 우리의 성공과 가치를 두는 닻을 내려야 한다.
D.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사랑받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그 분을 사랑하는 존재로 정립되어야 한다. 우리의 고백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연인이다. 그럼으로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E. (영적) 탈진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마음으로 일하는 데에서 온다. 우리가 성공을 위하여 일하게 되면 탈진한다. 그렇지만, 성공에서 일을 하게 되면 우리의 영은 오히려 힘을 얻게 된다(골1:10).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감정적인 혼란”이 더 없어지게 되고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F.우리는 우리 사랑의 크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닌 “모든” 사랑으로 예수님과 동일한 멍에를 진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이다. 주님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사랑받기를 바라신다.
G. 백퍼센트의 순종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그것을 “달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죄를 범할 때,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결단을 새롭게 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사랑안에서 자라가는 여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려는 노력은 주님을 감동시킨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공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의의 선물(고후5:12),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우리의 마음의 간구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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