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2010

오메가 - 자주 묻는 질문

. 성경 해석에 관한 질문들
1)성경에서 특별히 상징적인 것이라고 언급하지 않는 한,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 해석해야 한다는 정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라는 말은 가장 적합한 말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은 분명 예수님의 몸이 문고리를 가진 문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우리가 너무 기뻐서 좋아 죽겠네라는 표현을 할 때, 이건 정말 죽겠다는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통상적인 이해를 가진 통상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종말 예언의 해석 방법을 수식하는 가장 좋은 말은, 그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으로혹은 명백한 의미로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그 당신의 청중들이 듣고 이해한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 구절들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되었을까?

문법적 해석 방법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개념 안에 있는 그의 본래의 의도를 분별하기 위하여 언어의 법칙들을 따르는 것이다. 일단 성경 구절에 대하여 본래의 문맥적인 의미를 확실하게 한 후라면, 현재 시점에 그 구절들을 자유롭게 적용해 나갈 수 있다. 성경의 예언들이, 본래의 청중들을 위하여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이 있고, 동시에 주님의 재림하는 세대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 있음을 우리가 이해할 때, 성경에 예언된 많은 구절들이 가지고 있는 풍성한 의미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주님의 날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어떻게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용어를 이해하였는가? 이것을 말한 예언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며 전달하였을까? 대답은 이렇다. “주님의 날은 그 개념을 가지고 있는 많은 구절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과 그의 메시아를 통하여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을 나타낸 한 시간대로서 선포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심판의 시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는 문자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대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그 용어를 문법적으로 이해하고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2) 만일 종말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대부분의 교회들이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가? 산상수훈을 대부분의 교회들이 가르치지 않으며 예수님을 신랑이신 하나님으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대예언서나 소예언서도 실로 마찬가지이다. 설교자들은 자신들이 전달하기에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을 가르치는 경향이 있고 또 그들은 때때로 너무 바빠서 더 어려운 주제를 택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분야를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성경의 중요한 주제가 교회 안에서 그 대중의 인기에 의하여 결코 결정되지 말아야 한다(딤후4:3-4).

3) 우리가 구약 성경의 예언서를 읽을 때,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리스도가 오시기전이나 신약 시대와 마지막 때가 오기 전의 역사인 오직 구약 시대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이 그 구절들을 읽을 때, 그 구절에 묘사하고 있는 사건들이 이미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질문해보라. 그리고 만일 그 사건들이 일어났다면, 그 구절들이 묘사한 그대로 모두 일어났는지를 다시 질문해보라. 대답은 간단하지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구약 역사를 공부하며,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것을 요구하기에 도전적이다. 때로 어떤 구절들은 구약 역사에 대한 많은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의 묘사는 너무나 분명하여 그것이 미래에 일어나게 될 사건들임이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는 이사야 4장으로 그 때 모든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밀려 올 것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분명히 미래의 사건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 구원에 관한 질문들
1)용서받지 못하는 죄란 무엇인가?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또한 성령을 훼방하는 죄로 알려졌으며(3:29; 12:10), 혹은 성령을 거스르는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떻게 당신이 이 정의대로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범하는가? 예수님은 마가복음 3 28절에서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2 10절에서 예수님 자신에게 반대하여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셨다. 그러나 성령을 훼방한 죄는 다시 돌이킬 기회가 없다고 하셨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령께서 예수님을 나타내실 때,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여러 가지 면으로 땅 위에 부어 주심으로서 축복과 유익을 사람들에게 가져오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주제의 핵심은 마음이 너무나 완악하게 되어 양심이 화인 맞아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돌리는 행위에 대한 것이다. 죄의 길은 위험하지만, 만일 그 시작 단계에서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큰 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고, 그 마음 상태가 밖으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마음이 매우 위험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더라도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능력으로 나타내 보이실 때, 사람들은 모독하므로 응답하였다. 마가복음 3장에 하나님에게 나온 역사를 그들은 바알세불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극심한 내부의 부패가 외부로 나타난 증거이다. 마음이 너무나 완악하여 이 사람들은 소위 유기된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귀나 혹은 귀신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2)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단인가? 아니다. 이단은 구원을 받지 못할 만한 길을 걸으며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든지,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일을 부인하는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여서, 이단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자는 참 신자가 아니며 그래서 마땅히 피해야 한다.

미혹을 가르치는 어떤 신자들이 있는데, 이는 성경에 관한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내어, 신앙에 지대한 장애와 해를 가져다 준다. 미혹에 대한 예로, 사람들로 하여금 닥쳐오는 위기에 대하여 심각하게 준비하지 못하게 내버려두는 환난 전 휴거 설이나,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역할을 부인하는 대체 신학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부지중에 미혹을 가르치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진실로 구원받은 자들이며 여전히 예수님을 신실하게 사랑한다.

세 번째 범주에 혹하는 것은 실수인데 이는 거의 심각하지 않은 것이다. ‘실수를 한다는 것은 성경의 여러 가지 진리를 오해하는 것으로, 믿음에 크게 손상을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비유를 오해 한다든지, 혹은 이사야 서가 한 저자에 의해서 기록되었느냐 두 저자에 의한 것이냐에 대하여 논쟁을 하는 것들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성경과 씨름하면서, 또한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나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나는 존 칼빈이 미혹되었다고는 믿지 않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정설의 개념을 오해하였으며 만일 당신이 이것에 대해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미 받은 구원을 잃을 가능성도 역시 있다고 생각한다. 단번에(6:4-6; 벧후2:20-22).

3)마지막 때의 기간 동안 배도’(많은 신자들이 신앙에서 떠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시간대)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면, 어떻게 신자들이 그렇게 쉽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란 말인가?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11-12절에서 (1)사람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며, (2)불의한 일에 즐거움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바울은 후에 디모데에게 믿음에서 떠난 자들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딤전4:1)고 설명한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신의 가르침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가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바울은 이런 형태의 신자들(그리고 불신자)을 디모데후서31-5절에서 묘사한다. 중요한 핵심은 그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2 11절에서, 승리하는 신자는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로 인하여 사탄을 이길 것이며,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4) 만일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으면 왜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짐승의 표는 우연히 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표는 사람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하여 충성된 헌신을 하도록 연결되어 있다. 적그리스도(짐승)는 자기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이 표를 줄 것이다. 이 표를 받는다는 것은 마치 여권을 받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다른 나라에서 온다면 여권을 얻기가 쉽지 않다. 당신은 그것을 간단히 상점에 가서 물건을 집어 오듯이 가질 수가 없다. 당신은 시민권을 먼저 획득해야 하며, 다음에는 신청 과정을 밞아야 하며, 그리고 난 다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적그리스도에게 충성하며 그를 경배하는 것과 연결된 이 표를 얻기 위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 대환난과 심판에 관한 질문들
1) 처음 네 번의 인의 사건들은 마지막 7년 기간에 있을 것인가 혹은 대환난보다 먼저 일어나게 될 것인가? 처음 네 번의 인들은 대환난의 부분으로 발생하며, 다니엘 9 27, 마태복음 24 15-22절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23-4절에서 이 시대의 마지막 3년 반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종말에 관계된 성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고 있는 시대의 마지막 3년 반의 시기이다(42개월 혹은 1,260; 12:7; 11:3). 이것이 전 역사상 가장 괴로움이 극심한 때라는 것은 분명하다. 대환난이 어떻게 시작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에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이때에 적그리스도는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 선포하고(살후2:4), 경배를 받기 위하여 자신의 우상을 지성소에 둘 것이다(14:15; 13:14-15).

2) 요한계시록 6 22절에 나오는 첫 번째 말을 탄 자는 누구인가? 요한 계시록에서 이 때를 시작하게 만들 격동의 사건은 무엇이겠는가? 요한계시록 61-2절에 나오는 첫 번째 인은 다음을 묘사한다. 적그리스도는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한다. 다니엘 7 21절과 25절은 적그리스도가 성도들과 싸워 이기려고 하나님으로부터 실제로 권세를 부여 받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도들은 3년 반 동안 그의 손에 주어진다. 이것은 두 번째 인의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세계 대전을 유발하는 동기가 된다. 두 번째 인의 세계 전쟁, 세 번째 인의 기근, 그리고 네 번째 인의 만연한 죽음과 재앙들은, 많은 사람을 정복하려는 악의 세계 지도자가 일으키는 새로운 선제 공격의 당연한 과정이 될 것이다. 이 기간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의 3년 반이다.

3)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 144, 000보다 더 많은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인침을 받는가? 그렇다.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인치는 것, 요한계시록 13장에서 후에 사탄이 가짜 인을 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실체이다. 이스라엘 각 지 파로부터 인침을 받은 자들은 주된 목적을 위하여 세워질 중요한 사람들이다. 무슨 목적인가? 부분적으로, (1)하나님은 여전히 초자연적이며 자비로운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 읽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이며, (2)이스라엘 역사에서, 애굽의 모든 집에서 장자의 생명이 죽는 재앙이 일어나는 첫 유월절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을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새롭게 심어주시기 위함이다(12)

바울은 신자들은 진노를 받도록 지정되지않았으며, 정해지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준다(살전5:9).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우리의 위치는 특별한 방법으로 표시된다. 에스겔 94절은 이에 관한 한 장면을 보여 주는데, 한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심판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 충성된 자들에게 표를 하기 위하여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충성이란, 이스라엘 안에 있는 충만한 죄악의 상태를 인하여 중보의 탄식을 하며 우는 자들의 행위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 이스라엘에 대한 질문들
1) 만일 이스라엘이 멸망 당할 것이면, 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알리야(Aliyah)를 돕고 있는가?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는 것을 말하는 알리야, 신자들이 돕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면 그들을 적극적으로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놀라운 복음 사역들이 많이 있다. 예레미야가 야곱의 환난”(30:7)이라고 불렀던 크나큰 고통의 사건들은 분명 이스라엘에 닥쳐 올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유대인에 대한 크나큰 핍박이 땅의 모든 나라에서부터 일어날 것이다. 유대인들을 죽이려는(12:7) 사탄의 분노의 불길이 타 오를 때, 그들 민족이 직면한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앞으로 당하게 될 대학살에서 구원받는 길이 딱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어떤 지역으로의 도피가 아니다. 심지어 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이나, 돌아가는 것을 거절하는 것도 아닐 것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일 것이다.

2) 다니엘 12 7절에 말하기를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성도는 유대인을 말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인가? 여기서 언급한 권세는 영적인 권세인가 아니면 자연적인 권세인가? 다니엘은 12 1절에서 말하기를 역사상 어느 때도 일어나지 않았던 고통의 때가 오는 데, 그 때 네 백성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이 문맥에서 분명한 것은 네 백성의 의미가 다니엘의 백성이란 것이며,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란 것이다. 대 환난의 끝에, “거룩한 백성즉 이스라엘은, 그들의 권세가 다 깨어질것이다. 이 권세에 대해 천사는 그들의 자연적인 힘을 가리키고 있으며, 어떤 의미로는 국가를 세우고, 정착시키고, 보호하는 국가적인 능력이다. 유대인들은 자연적인 능력에 따라 많은 것을 성취했으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성취들로 인하여 그들이 교만한 독립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나라들을 다스릴 수 있는 높은 위치를 주실 것이다(2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연단하며 크게 온유하게 만들어 이 권위를 행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실 것이다. 그들은 이 권세를 받기 전에 그들의 모든 교만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그들의 능력이 완전히 깨지는일들을 허락하실 것이다.

3) ‘억제자들은 누구인가? 앞으로 이 땅에 적그리스도가 활동하는 것을 억제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나, 그 때에 그들이 교회와 연결되거나 구원을 받을 것은 아닐 것이다. 오메가 코스에서 우리는 그들을 억제자로 언급하고 있다. 성경은 이 억제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온전히 성취되고 난 뒤 각 나라에 남게 될, “뒤에 남아 있는 자들이나 남은 자들이라고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 재림 후에 개심할 수 있는 시회를 가질 것이며, 그래서 천년왕국 동안 이 땅의 인구를 증가시킬 것이다(4:3, 10:20, 11:11, 49:6, 66:19; 31:2; 20:38-42, 36:36; 12:1; 9:9-10; 요엘2:32; 12:14, 13:8, 14:6)

. 휴거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질문들
1) 만일 휴거가 대환난 전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 환난 전 휴거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 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공중으로 옮겨가지 않아도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땅에서부터 옮기지 않으시고도 심판의 때에 보호할 수 있다는 예는, 노아나, , 그리고 모세의 경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적그리스도의 네트위크로부터의 핍박은 같은 것이 아니다. 비록 대환난 동안 많은 신자가 핍박을 견뎌야 할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여 그의 보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2) 성경은 휴거를 무엇이라고 하며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나게 될 사건인가? 가장 일반적인 설명을 마태복음 24 29-31절에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예수님이 공중에 나타나실 때 성도들을 모으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내신다고 되어있다(“그날 환난 후에 즉시”).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에도 재림과 휴거의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3) 예수님이 한 인간으로 이 땅 위에 한 장소에 재림하여 오신다고 한다면, 어떻게 모든 눈이 예수님의 오시는 것을 볼 수 있는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눈”(24:30; 1:7)이 그를 볼 것이라는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모든 눈이 동시에그를 볼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데 있다. 성경은 어느 구절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모든 눈이이 본다는 것은 그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4 29절에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오시기 바로 전에 하늘이 아주 어두워질 것이라고 하였고, 또한 그 다음절에는 예수님이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신다고 묘사되어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17-8절에는 그분이 능력의 천사들불꼿가운데 오신다고 묘사하고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 8절에서 바울은, “그 광채(공동번역)”를 가지로 오신다고 설명하였다. 요한계시록 1 12-17절에서 설명하는 예수님이 영광스런 재림은, 하늘에서 그와 함께 모든 천사가 따라오며 매우 캄캄한 하늘을 가로질러 여행하시는 영광된 예수님의 모습이다. 모든 눈이 그를 분명하게 보고 애통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4) 예수님이 만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타락한 자들이나 반항하는 자들을 죽이실 수 있는가? 불신자들은 종종 질문하기를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들을 선택하여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가 라고 말한다. 타락한 자들이 죽은 후에, 그들을 지옥에 보내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고 협박하는, 타락하고 악한 나라들을 죽이시는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시다. 사랑의 하나님은 여호수아서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사악한 나라의 사람들을 다 죽이게 하시고, 그 빼앗은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신 분과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사랑의 하나님의 죄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하여 사악한 나라들을 일으켜 이스라엘 나라를 침략하고 마침내 멸망시키도록 하실 그분과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조성하여 이러한 실제적인 일들이 이루어지게 하시며, 이 역사의 마지막 한 진행과정에서도,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리더십을 거역하는 자를 제거하실 것이다. 세상을 다스릴 통치자들을 훈련함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자유의지도 침해하지 않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깊은 사랑의 단계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가혹한 수단을 사용하신다.

5) 예수님의 재림 행진 기간이 30일이란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대환난은 3년 반이 될 것이며, 이는 1,260(11:3; 12:6) 혹은 42개월(11:2; 13:5)이다. 그러나 다니엘서 12 11절에는, 대환난은 1,260일 지속된다 할지라도, 멸망의 가증한 것은 1,290일 동안 세워진다고 나와있다. “ 30일이 더 있는가?”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성도의 대환난 기간은 적그리스도가 지상에 있는 기간 보다 30일 더 짧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나팔이 불려질 때에(고전15:52) 이 땅에 오실 것이란 내용이 요한계시록 11 15절에 있는 일곱 번째 나팔에 대한 계시에서 언급된다. 진노의 일곱 대접들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별도의 30일을 지내는 동안 이 땅 위에 쏟아지게 될 것이다.

6) 언제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벌어지게 될 것인가? 성경은 언제 이 사건이 일어날 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그것이 어느 한순간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지나가면서 일어나는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혼인 잔치가 예수님께서 온 땅을 다스리시는 때인 천 년 동안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천년왕국 동안에 태어나게 될 것이며, 그때 태어나는 사람 중에 분명히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것은 참 재미있는 이론이다.

7)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먼저 재림하지 않으시리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감람 산으로 먼저 재림하실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절로 사용되는 스가랴 14 4절은 예수님이 감람삼으로 먼저 오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단지 그곳에 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감람 산으로 오실 때, 그 산을 갈라지게 하여 예루살렘 성안에 갇혀 적들에게 포위되어있는 유대인들에게 도망칠 통로를 열어 주실 것이다. 이사야 63 1-6절에 보면 예수님은 보스라를 통하여 행군해오셔서 그 길을 따라 감함산으로 가셔서 유대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 부활의 몸에 대한 질문들
1) 예수님께서 천년왕국을 다스리시는 동안 부활의 몸과 자연적인 몸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교통할 수 있을까?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이와 같은 일을 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의 몸을 갖지 못한 제자들과 함께 살지는 않으셨지만,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셨으며(24:42; 21:1-14), 아버지 곁에 있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시기 전 40일 동안 정기적으로 그들과 만나셨다(1:3). 우리의 부활의 몸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요일3:1-3).

2) 부활의 몸을 갖게 된 후에도, 우리는 악의 유혹을 받게 될 염려를 해야 하는가? 부활의 몸을 가진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죄에 대한 투쟁이 끝났으며 그들은 죄와 죽음을 이긴 승리자들이다. 그러나 부활의 몸을 갖지 못한 땅 위의 신자들은 마귀가 없다고 할지라도 계속 죄와 다투어야 할 것이다. 스가랴 13 3절과 14 17-19절은 천년왕국 동안 마귀의 영향을 받지 않을 때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죄를 지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예다.

. 천년왕국에 대한 질문들
1)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새예루살렘이 이 땅에 영원히 거하게 될 장소를 준비하시는 것이다. 천년왕국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하신 약속, 특히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2) 예수님은 왜 단지 천년 동안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왕국을 세우시기 원하시는가? 한 사람이자 왕이신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온 세상은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을 주실 것이며, 동시에 그들은 모든 나라들을 훈련하며 제자를 삼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지키게”(28:19-20) 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근본적인 사명, 즉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록, “땅을 정복하라. 땅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수행하실 것이다. 1,000년 동안의 궁극적인 예수님의 사명은 하늘과 땅을 함께 한 영역으로 합하는 것(1:9-10)이며, 그러한 사역을 통해 그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육체와 함께 거하실 수 있게 하는 것이다(21:13). 예수님은 천년왕국의 끝에 그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발아래 두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 나라를 바치실 것이다(고전15:24-28).

3) 천년왕국에서 다스릴 자들은 대환난으로 목 베임을 당하게 될 바로 그 순교자들만이 될 것인가? 요한계시록 20 4절을 보면, 요한은 보좌들과 거기 앉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심판이 맡겨지는 것을 보았다. 이 큰 무리의 사람들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모든 성도들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이 큰 무리의 사람들 안에 포함된 작은 모임의 사람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요한이 강조한 무리의 사람들은 목 베임을 당한 종말 때의 순교자들이었다. 이들은 모든 나라들을 다스릴 권세가 주어질 큰 무리의 사람들 중에 단지 한 부분인 것이다.

4) 천년왕국이 시작되고 성도들이 모든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할 때, 적그리스도의 제국에 속해 있었던 모든 악한 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인가? 마태복음 2210절과 마태복음 2531-40절에서는 악한 자들을 죽이는 일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모든 나라들을 주님 앞에 세우고, 그들을 서로 분별해서 골라내는 일이 얼마나 오랜 작업이 되겠는가(25:32)? 나라들을 심판한다는 것은, 체포하고, 심문하고, 선고하고, 그리고 사형시키는 여러 단계의 활동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5) 천년왕국 통치 때에 죄는 단순히 나타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성경은 예수님께서 철장으로 나라들을 다스리는 것(2:9; 19:15)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을 질그릇 같이 그들을 부셔뜨릴 것이다. 그는 친절과, 자비, , 공의, 그리고 큰 애정으로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지만; 그러나 나라들 가운데 있는 죄와 반역을 다스릴 때는 강한 손을 사용하실 것이다(14:16-21). 1,000년 동안 사탄이 묶여 있으므로 죄는 사회에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며, 예수님은 순종과 온유함 속에 그리스도의 의로 세상을 인도하여 점진적으로 제자를 만들고 그리스도화되게 하실 것이다. 율법이 시온 산에서 세상 나라로 나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때가 될 것이다(2:3).

6) 천년왕국 통치 기간 동안 사람들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 계속 있을 것인가? 그렇다. 적그리스도를 대항하고 대환난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도()로 개심하고 제자화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천년왕국 때에 태어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 땅의 천년왕국의 영적인 중심지가 되어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모두 그곳에서 예수님의 도를 배우게 될 것이다(2:3).

7) 만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천년왕국이 이 땅에 임하였을 때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면, 믿음을 갖는 일이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사도들도 예수님을 직접 보았지만, 믿음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실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우리가 여전히 부족함이 많고, 심판을 받을 존재이며, 우리 자신이 우리를 구원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8) 천년왕국 때에 육체적인 노동이 있을 것인가? 산산이 파괴된 세상 나라들 안에서는 도시들을 재건하고 복구하기 위한 많은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할 것이다(61:4; 39:11-16).

9) 천년왕국 때에 우리가 무슨 일을 맡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온유함이 하나님 왕국 안에서 다스릴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자격요건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37:11; 5:5)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상급을 줄 근거가 겸손임을 강조하셨다(7:14; 19:30; 20:16, 26-28; 22:14; 13:24; 22:26).

10)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게 될 날은 언제가 될 것인가? 이때 누가 정죄를 받게 될 것인가? 심판은 예수님이 천년왕국 통치의 마지막에, 사탄에 의해서 직접 인도함을 받은 반역자들이 처리되고 나서 있게 될 것이다. 이 심판 후에 옛 것은 지나가고 아버지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새로 만들어 질 것이다. 그리고 영원이 시작된다. 이 심판은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모든 시대의 불신자들에게 행해지게 될 것이다. 부활한 신자들은 정죄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11) 왜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연적인 영역(세상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영역(하늘의 것)을 하나로 합치시는 것에 있다(1:10).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기를 원하신다. 한 순간의 변화보다는, 모든 나라에 대하여 자신의 지도력을 행사하시며 그들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실 것이며(9:7; 16:5; 23;5; 22:2),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도()에 동의하며 그의 왕국을 함께 건설해가는 파트너가 되게 하실 것이다. 대환난으로 황폐된 지상의 모든 땅과 정부들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천년왕국을 통과하면서 배우고, 또 배운 것을 적용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강조점이 될 것이다. 의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배우게 된다(26:9). 지혜를 얻고 적용하는 것을 통해, 삶의 많은 분야가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도착할 목적지보다는 성장과 변화의 진행이나 그 여정을 더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목표지향주의자가 아니시다. 그는 우리에게 동반 관계의 존엄성을 주시며, 사랑과 성숙함으로 성장하여, 우리가 그를 더 많이 알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셨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그의 마음과 결합하게 되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관계를 원하시며,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과 함께 그의 마음에 품고 계신 열정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한 사랑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바로 지금 제단 앞으로 부르셔서 단번에 말씀하시고 변화시키시지 않으시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기 원하는 소원으로 그것을 성취하려고 투쟁하는, 고상함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고 계신다.

12) 천년왕국 후에 실제로 새 땅이 임하게 될 것인가? 옛 땅은 없어지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땅은 완전히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땅이 새롭게 된다는 견해이다. 고린도후서 5 7절에서, 사도바울은 옛 사람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육체적인 옛 사람이 사라져 버렸는가? 아니다. 그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20 11절의 말씀을 근거로 땅이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고 주장하나, ‘피하여란 말은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새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만드신(그리고 좋았더라고 부르신) 이 땅이, 새 예루살렘과 하늘의 영역,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집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정결케 하는 불로 재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땅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지적하는 몇 구절들이 여기에 있다(37:29; 78:69; 10:5; 105:10-11; 125:1-2; 역대상23:25; 28:8; 60:21; 37:25; 3:20)

13) 예수님의 천년 통치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성경은 예수님의 천 년 통치 후에 신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있지 않다. 자궁 속에 있는 아기에게 세상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기는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은 들을 수 있다. 내가 앞으로 올 세상에 대하여 배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여정을 함께 하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면, 하나님에게는 천년왕국의 끝은 시작과도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 7천 년은, 70억 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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