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2010

영적 지도자의 범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 – 릭 조이너

20세기에 공공연히 성직을 빼앗긴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건에서 범한 것만큼의 죄를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간음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덮기 위해서 자신의 충실한 신복을 살해했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압살롬이 다윗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몄을 때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압살롬에게 합류했을 것입니다. (삼하 15:13)
 
그런 행위를 자행한 후에도 어떻게 다윗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일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다윗에게서 기름부음을 거두어 가신 적이 없습니다. 그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사독은 기름부음이 아직도 다윗의 위에 있음을 인정했고 그래서 그에 대해 계속 신실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독을 축복하셨고 그의 아들들이 항상 주님 앞에서 그분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독의 분별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죄는 주님을 깜짝 놀라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다윗을 부르셨을 때 그분은 이 악이 다윗의 마음 속에 있으며 적당한 환경이 주어지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타락 전에도 또 후에도 다윗을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의 가장 위대한 시편들은 그의 타락 이후에 쓰여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는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자의 은혜의 깊이를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그 은혜를 아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더욱 위대한 영적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불가해한 증거들 중 하나는 주님이 실제로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에게 기름부으시고 그를 왕위의 계승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로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주님은 이런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실제로 간음과 심지어 살인까지도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와 구원의 마음의 또 다른 계시일 뿐입니다. 주님은 심지어 우리의 가장 나쁜 실수들까지도 취하셔서 그것들을 선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솔로몬을 선택하신 것이 놀라운 일인 것처럼 그분이 아담의 자손들을 선택하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심지어 우리들 중에 그분의 거처를 두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걸려 넘어졌던 지도자들 중 어떤 이들은 다시 일어 설 것입니다. 사실 그들 중 일부는 오히려 더욱 위대한 영적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정말로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가장 비극적인 실수까지도 속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더 큰 은혜가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죄를 지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바울은 그런 어리석음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여 함이니라 ( 6:1-4)
 
회개 때문에 다윗은 회복되었고 성령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뿌린대로 거둔다는 법칙은 여전히 적용되었고 다윗은 이 죄 때문에 큰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그의 가정은 다시는 평화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죄가 그의 자녀들에게 되물림되었습니다. 은혜를 넘치게 하려고 죄를 짓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는”( 10:29) 일이고 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천박하고 덧없는 즐거움 때문에 후퇴하는 일입니다.
 
비록 다윗의 죄가 그 자신의 가정에 비극의 씨를 뿌려 놓았지만 주님은 다윗의 왕위를 완전하게 보존하셔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다윗의 왕좌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그의 전임자 사울에게 그토록 많은 은혜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다윗에게 그토록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심지어 주님이 사울 왕에게서 성령을 거두어 가신 후 그가 다윗에 대해 가장 잔학한 행위들을 자행했을 때에도 다윗은 그를 대적하기 위해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삼상 24:6)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실수가 얼마나 비극적인 것이었든 주님이 그를 권위의 자리에 앉히셨기 때문에 주님 자신이 사울을 거두어 가셨어야 했을 것입니다.
 
실패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을 교정하려는 자들에 대항하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주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건드리지 말라”는 방패를 사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알려진 죄가 계속 되도록 하고 그것을 범한 자들이 계속 교회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도록 우리가 허용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가 위험에 처하지 않게 되려면 남을 교정하는데 대한 성경의 지시를 조심스럽게 따라가야 합니다. ( 18:15-17)
 
이 말의 뜻은 우리가 실수에 대해 소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심지어 가장 위대한 영적 영웅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에 있어서 잔인할 정도로 정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수는 그들을 벌하고 굴욕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들 뒤에 올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그것들은 구설수에 오를만한 행위들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되었거나 심지어는 우리를 위협하거나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기록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단지 죄인들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죄인들을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 ”( 6:1) 만약 우리가 올바른 정신으로 교정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일한 유혹들과 죄악에 대해 우리 자신을 개방할 수 밖게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름부음을 받았든 혹은 어떤 죄들을 과거에 물리쳤든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만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은혜를 거두어 가신다면 우리는 자신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 속으로 빠져 버릴 수 있습니다.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에서/릭 조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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