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나의 24/7 기도 여정
A. 나의 사역 초기에는 나는 오직 전도에만 초점을 두었다. 나는 부흥에 관하여 기도하는 신학적인 개념이없었다. 1983년 5월에, 저희 교회가 함께 21일 간 금식기도 하는 동안 주님께서 시편 27:4절을 통하여 나의 귀에 들리게 말씀하셨다. “내가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24시간 기도운동을 허락하리라”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가지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
B. 다윗은 그의 세대에 4,000명의 full-time 연주자들과 288명의 full-time 예언적 찬양대를 세워서 기도와 예배사역에 리더십을 발휘했다(역대상23:5, 25:7) 다윗은 하나님의 보좌를 나타내는 언약궤 앞에 예배자들을 세웠다. (마6:10) “하늘 아버지의 뜻이(예배를 포함하여)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C.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사랑의 노래들을 주님께 올려드렸다. 전쟁의 함성과 같은 교회의 중보기도의 부르짖음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이 사랑의 노래에서 나올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용장이었지만, 동시에 상사병을 잃듯이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사모하던 예배자였다. 사무엘상 23: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D. 성령께서는 제1계명의 최우선 순위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마가복음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하다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E. 1988년 7월에 아가서 8장 6절 말씀을 읽고 있을 때, 밥 존스 형제가 내게 전화하여 바로 그 시간 성령님께서 귀에 들리게 말씀하시며 약속하시길, 아가서 8:6-7절의 말씀으로 행할 은혜를 온 세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허락하실 것이며 아미크 비클 목사가 앞으로 바로 이 주제에 그의 사역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너는 나를(예수님을)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9하나님의]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강요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핍박, 죄, 외부의 압력, 등등)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아가서8:6-7)
F.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불의 인”을 쳐 주시는데, 고대사회에서 중요한 문서를 초를 사용해서 인봉했던것과 같다. 옛날에는 촛물을 녹여 문서를 봉하고는 왕의 옥쇄와 같은 인장 반지를 찍었다. 황제의 인장으로 그 문서가 보호받고 진짜임을 증명했다. 그 인장이 문서에 대한 왕의 소유권, 보호, 권위를 상징했다. 그 인장에는 온 왕국의 권세가 따라온다.
G. 하나님의 인장이란 결코 꺼질 수 없이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불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름부으심을 말한다. 우리 속에 그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또는 죽음처럼 포괄적이다. 자연계에 죽음의 권세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투기하시는 사랑은 죄의 어떤 부분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신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질 때(또한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에게 순복할 때) 그 사랑은 그 어떤 죄와 유혹의 어두운 물결보다 강하다. (로마서5: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H. 물은 언제나 불을 끄게 됩니다.(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불은 예외이지만). 원수는 핍박, 휴혹, 무관심(냉랭함), 실망, 고통등의 물을 보내 이 불을 소멸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홍수란 말세에 사탄의 핍박과 같은 환란을 말하는 것이다(계12:15; 사43:1-2)
I. 하나님의 사랑의 인장은 제일 계명과 동일한 진리를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예언하시기를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불로 인쳐주심이란 (롬5:5)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으시는 성령의 능력이 점진적으로 강하게 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성령과 교통하는 것을 우리가 현재 체험하는 것이 바로 이 인쳐주심이다(엡1:13)
J. 예수님께서는 술람미 여인에게 당신을 도장처럼 마음에 품으라고 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기 위해 부르짖으라고,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리는 강한 사랑의 하나님을 알기 위해 부르짖으라고 권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과 순종의 마음으로 주님께 구하므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도장을 품듯 모시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그 불 같은 임재를 구해야, 그분의 인쳐주심을 어루만지심을 우리 마음에 경험케 된다. 주님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관계를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으로 당신을 초청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K.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 속에 인처럼 품고 모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임하사, 그의 사랑이 점진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사역의 더 많은 부분에 부어지도록 구하는 것이다. 기도와 금식, 말씀 묵상과 순종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이런 것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이런 행위가 하나님의 은택을 얻어내는 우리의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비유> 우리가 신령과 진리로 말씀안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의 차가운 심령을 하나님의 임재의 불길 앞에 세우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점진적으로 열어주시는데(조금씩) 우리의 영이 그의 말씀을 섭취하는 시간만큼 열어 주신다.
L. 아가서는 예수님과 그의 신부된 교회간에 어떻게 사랑의 꽃피는지를 8장에 걸쳐 묘사하는 사랑의 노래이다. 아가서 말씀은 보통 2가지 방법으로 해석한다. <자연적인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인 술람미 여인 사이애 사랑의 노래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혼한 부부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존중하는 성서적인 원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영적인 해석>: 솔로몬 왕과 그의 신부 간의 사랑 이야기를 왕이신 예수님과 그의 신부인 교회의 관계에 영적인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결혼하는 일은 멈출 것이나 주의 말씀은 영원할 것이며, 말씀은 우리로 신랑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영감을 줄 것이다(마태22:30)
M. 말세의 교회는 성령님과 깊은 연합 가운데서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교회도 말하고 행할 것이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그분은 예수님께서 속히 오시도록 중보하고 계신다. 성령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가? 그분은 교회가 예수님의 신부됨을, 우리의 신부의 정체성을 계시해 주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도다”(계22;17)
N. 계시록 22:17절의 말씀은 말세 교회의 역할을 예언하신다. 1)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는다. 2) 중보기도에 힘쓴다. 3) 신부된 정체성에 세워진다(견고히 선다) 4) 영적 추수에 힘이 있다(열매가 풍성하다)
O. [신랑 메시지]는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나오라는 부르심이다. (예수님을 애인, 남자친구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신부메시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을(감정, 애정) 심오한 것들을 체험하라는 하나님의 초청이다. 예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을 느끼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10-12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체험케) 하려 하심이라”
P.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기에, 우리는 그의 능력을 유업으로 받을 후사,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경험할 수 있는 신분을 얻었다(계3:21; 롬8:17). 우리를 [신부]라 부르심은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하는 (우리 향한 주님의 애정이나 감정을) 체험하는 신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특권있는 위치와 신분을 말하는 것이지, 아들이라고 남성, 신부라고 여성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Q. 대개의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것은 [아들됨]이 자신들의 여성다움을 버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말씀에 대해 갈등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신부]라는 말씀이 자신들의 남성다운 이미지를 버려야하는 것처럼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됨을 누리는 것이 실제적으로 형제들의 남성다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확실하게 강화시키는 것이다.
R.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신부메시지>의 핵심적인 실체를 체험했다. 다윗왕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용장이었지만, 동시에 상사병 앓듯이 주님을 사모하던 예배자였다. 사도요한은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이 붙은 자였지만,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라고 5번이나 묘사했다(요13:23, 19:26, 20:2, 21:7, 20). 세례요한은 여자에게서 난자 중에 가장 “큰자”라고 예수님께서 칭하신 선지자였다(마11:11). 그는 예수님이 신랑되신 하나님 되심을 알았다(요3:29)
S. 예수님이 재림을 대망하는 <말세 교회>의 3가지 기도:
1.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임하소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 심령에 개인적인 영적 도약을 갈망함)
2. 부흥으로 우리에게 임하소서
(성령님의 역사로 지역적, 또는 국가적으로 영적 돌파구를 체험함, 공동체적인 부흥)
3. 우리를 위하여 하늘로 임하소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역사적 돌파구)
T. 1995년 11월에, 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헵시바”라고 부르라는 예언적 꿈을 꾸었습니다.
“4...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5...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즐거워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6내가 너희 성벽 위에 파수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입다물고 조용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7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62:4-7)
U. <헵시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마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가서의 메시지나 다윗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사모한 것을 노래한(시27:4) 메시지와 동일하다. 나는 수 년동안 헵시바의 메시지를 경험하지 못한 체, 영적부흥의 돌파구를 구하며 기도해 왔다. 중보기도자들이 탈진을 경험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영적부흥의 돌파구를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는 수년의 기간동안 주님과의 친밀한 만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V. 신랑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기초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아버지의 마음)에 관한 메시지이다. 신랑 메시지는 신랑된신 예수님의 우리를 향하신 마음, 감정의 계시를 포함하는 것이다. 신랑되신 예수님은 부드러운 긍휼로 충만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온유로 대하신다. 어떤 이들은 반항(거역함)과 미성숙함을 혼동한다. 하나님은 거역함에 대해 분노하시지만, 순진하게 주님께 순종코자 하는 성도의 미성숙함은 부드럽게 대해 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한 와중에도 우리를 기뻐하신다(시18:19, 35; 130:3-4)
W. 신랑이신 예수님은 희락의 마음(행복한 마음)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역사의 그 누구보다 더 큰 즐거움을 누리신 분이었다(히1:9,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료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기독교 역사의 대부분,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실 때 대개 분노하시거나 슬퍼하시는 분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신랑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뜨거운 애정과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계신다. 교회는 우리를 아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체험함으로 씻김을 받을 것이다(엡5:26-29). 예수님이 열정적인 신랑이신 것을 깨달을 때, 곧 우리 자신이 주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신부인 것을 깨닫게 된다.
Ⅱ. 예수님을 신랑되신 하나님으로 아는 계시: 친밀함의 기름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리...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A. 마태복음 25:1에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 천국은 마치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으러 나가는 처녀들과 같으리라 하신다. 질문은 “그 때가 언제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25장은 종말에 관한 교훈이다. 마태복음 25장의 메세지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세대에 사역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말씀하는 것이다.
B. 말세에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님을 신랑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신랑을 향해 충절있는 사랑을 가진 신부의 시각으로 천국을 보게 된다.
C. 말세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며, “예언적인 찬양과 함께 기도하게” 될 것이다. 전쟁의 함성과 같은 교회의 중보기도의 부르짖음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사랑의 노래에서 나올 것이다. 이사야 42:13-15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하고, 이사야 42:10-12은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일어날 예배운동에 대한 묘사이다.
(이사야42:10-15) 10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서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찌어다. 13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14내가 오래 동안 고요히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15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초목을 마르게 하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라(요한계시록에서 보는 재앙들을 말씀하심)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Ⅲ. 왜 친밀함의 신랑 메세지가 중요한가?
A. 우리의 가장 큰 상급은 주님 그분 자신이신데,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당신으로 인해 놀라도록 하시는 그분 자신이다. 그리고 부차적인 상급이 우리의 사역과 육신의 치유, 재정, 재정 그리고 대인관계에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이 나타나는 영적 돌파구의 경험이다.
(창세기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근 상급이니라”
B. 우리가 예수님과의 “친밀함이라는 기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사랑받는 느낌, 그리고 나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쉽게 타협하게 되고, 낙심하거나 상처를 받고, 영적인 지루함을 느낀다. 우리는 부차적인 축복, 환경적인 축복에 더 관심을 집중하면서 우리의 건전한 시각을 상실할 수 있다. 우리의 가진 “친밀함의 기름”이 떨어질 때, 우리 마음은 상처를 받고 지치게 된다. 우리가 가진 상처나 실망 중에 어떤 것은 부차적인 상급이 우리 마음 속에서 제일 중요한 우선 순위가 되어버렸다는 경고 신호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어떤 아픔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상급이 되신다는 것에 마음을 다시 집중하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장치이다.
C.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힘을 얻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실망되는 일들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훨씬 이겨내기 쉬워지는데, 우리의 시야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이렇게 예수님과 친밀함을 적극적으로 누릴 때에 유지될 수 있고,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되신 그분을 우리 마음으로 경험하길 원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외형적, 환경적인 부분에 하나님의 측복과 능력이 임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를 지탱해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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