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도입
A. 하나님의 운동이란 성령님이 고양된 방법 혹은 평상시와는 다른 매우 놀라운 방법으로 활동을 풀어놓으시는 시기를 말한다. 앞으로 수많은 하나님의 운동들(moves)이 도래할 것이다. 이 운동들은 성경에서 예언된 최후의 거대한 전 세계적인 하나님은 운동(Move)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준비시키는 일에 함께 합력할 것이다. 이 최후의 운동은 사도행전을 훨씬 능가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종결될 것이다.
B. 우리는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온전히 받아드릴 수 있도록 헌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령님의 리더십에 협력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의 영으로 행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열광적으로 과장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한다.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마3:3)
C. 성령님이 고양된 활동을 풀어놓으시는 목적은 대체로 세 가지이다.
1. 첫째, 하나님은 구원과 치유 또는 회복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권능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신다.
2. 둘째, 하나님은 지혜의 다양한 국면들을 접목시켜 주신다. 모든 하나님의 운동들마다 특별히 진리의 양상들이 존재하고 있다. 주님은 보다 많은 부분의 그리스도의 몸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
3. 셋째, 하나님은 겸손한 삶을 원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운동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이 겸손케 되도록 하신다. 때로는 굴욕을 당하게 하실 때도 있다. 여기에는 기름부음 받은 자들, 그들의 친구들, 수동적으로 부흥을 무시하는 자들, 적극적으로 부흥에 저항하는 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등불은 온 집안을 환하게 밝혀주기도 한다. 그러나 등불은 벌레들도 끌어들인다.
D. 역사전반에 걸쳐 성령님의 운행하심에 있어서 밀물과 썰물이 존재했다. 하나님은 특별한 부흥의 ‘밀물’ 이후에 반드시 ‘썰물’을 풀어놓으신다. 성령님의 활동이 다소 후퇴될 때도 있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주님께로부터 접목 받은 것들을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사역은 마치 일종의 연속체와도 같이 기능한다. 하나님의 방문은 다음번의 방문을 위한 준비단계이다. 주님은 다음에 도래할 하나님의 운동들에 동참할 사람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신다.
E. 우리는 예수님을 능력과 지혜와 겸손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우리가 묻는 질문이 있다. “주님,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바를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운동의 여파로 말미암은 환멸감을 최소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지혜(하나님이 나누어주고 싶어 하시는 메시지)를 받고 겸손하게 성장해가기보다는, 단지 하나님의 능력만 즐기게 되기를 바란다.
F.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과 장소들, 하나님의 운동들, 방문의 계절들은 수도 없이 다양하다. 하나님은 온전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한 세대를 준비시키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들 빛 우리 세대의 리더십과 관련하여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과 제대로 협력하는 자들이 될 수 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섬기다가...”(행13:36)
G. 우리가 사랑과 겸손을 목표로 삼고 나아갈 때, 승리는 언제나 우리 몫이 될 것이다. 사랑과 겸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쉽게 실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된 기대감을 가지고 봉사하는 자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Ⅱ. 도전 #1: 열정적이면서 동시에 분별력을 가지라
A.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열정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단지 성령님의 활동에 개방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덜 훌륭한 것들 중에서도 훌륭한 것들을 분별하고 사랑하는 일에 있어 탁월한 자들이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14:1, 12)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1:9-10)
B. 기본적인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과연 그 일이 성경적인가? 그 일이 많은 이들의 유익을 위한 것인가? 초기에는 성령님이 조금만 가시적으로 나타나도 많은 이들에게 덕이 된다. 왜냐하면 이는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C. 성령님을 소멸시키는 두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성령님의 활동들을 거부하거나, 육신적인 행위들을 사용하여 일부러 조장하는 것.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19-20)
D. 우리는 선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님이주시는 것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울러 가장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지혜를 추구하는 가운데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도’ 안 되겠지만, 열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지나치게 수용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사독의 자손...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겔44:15, 23)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3:18)
E. 어떤 이들은 성령님의 운동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도구들은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잘못되었거나,” 둘 중의 하나이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덜 훌륭한 것을 분별하면서 실제적으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F.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는 통로로 쓰임받기 위해 성령님께 선택되었다고 해서, 이미 가지고 있던 약점들(인격, 교리, 사역방식)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님은 말과 행실이 전적으로 옳은 사람들만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잘못된 신념을 품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시려고 상처를 주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무엇을 풀어놓으실지, 그들이 공격받을 뿐 아니라 번창케 되기 위해 어떻게 하실 것인지도 보여 주신다.
G. 하나님은 연약하고 깨어진 질그릇을 사용하신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광을 받거나 자랑치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이...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31)
H. 우리는 덜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를 은혜 가운데 분별해내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부족한 훌륭함을 지적해내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벧전4:8)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주님의 도구들을 존경하면서도, 우리 가신의 책임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적인 것들만을 받아들이면 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Ⅲ. 도전 #2: 문제들의 중요도를 규정하라
A. 우리는 하나님의 운동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문제인지를 구별하고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덜 중요한 ‘사소한 문제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묵인하면서도, 더 중요한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반발하고 거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이 점에서 실패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소한 문제들을 놓고서는 분투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그대로 묵인하고 말았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23:23-24)
B.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들이 교리와 사역방식 등 ‘덜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탁월하지 않더라도 은혜로써 인내해야 한다. ‘그들의 기름 부으심’을 받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억지로 그들을 모방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C. 우리는 새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전통적으로 존재해온 성경과 겸손이라는 경계선을 존중해야 한다. 한 부흥의 지도자들의 행위라고 해서 모든 걸 순진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되지만, 무조건 비판적으로 거부하지도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13:52)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기 말지니라.”(잠22:28)
Ⅳ. 도전#3: 어린아이처럼 믿고 어른처럼 분별하라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큰 자니라.”(마18:3-4)
A.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함: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험이다. 배우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배우며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만 만족함을 누리는 배고 품이다.
B. 우리의 관점은 아이처럼 유치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만사를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과 자신들의 필요에만 집중되어 있다. 아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들에게만 쏠리기를 바란다.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20, 39-40)
Ⅴ. 도전#4: 하나님의 운동에 수반되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A.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에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편성해 넣으신 오점이 붙어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12:7)
B. 성령님의 활동이 새로운 차원으로 풀려나온 후에는 반드시 마귀의 공격이 뒤 따른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절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였다. (예수님, 세례요한, 바울, 베드로 등)
“내가 생각하건데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 즉 참고.”(고전4:9-12)
Ⅵ. 모든 하나님의 운동에 내재하는 세 요소들: 하나님의 능력, 마귀, 육신
A. 하나님의 능력: 가시적인 현상들, 기적들, 회개에 수반되는 깊은 뉘우침(마10:8; 막16:15; 요16:8)
B. 마귀의 활동: 어디서든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만 하면, 그와 멀지 않은 곳에 반드시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 점치는 귀신이 들렸던 여자아이의 예를 들 수 있다(행16:16-34). 바울은 귀신들을 향해 꾸짖었다(행16:18)
C. 육신적 과장함: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처럼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을 한다. 어떤 이들은 ‘성령님을 임하게 하는 자’라는 정체성을 얻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이들은 성령님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Ⅶ. 출처를 분별하기: 하나님? 마귀? 육신?
A.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분별하라. 만약 어떤 복음전도자가 어떤 것을 말하고 성경이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말씀이 옳다! 우리가 만일 말씀가운데 그것을 찾을 수가 없다면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21)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 깨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14:12, 26)
B. 가르침 혹은 가시적인 현상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열매가 맺혀졌는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고 의로워지고 있는가? 자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가? 근본적은 원리들은 과연 그 일이 성경적이며 많은 이들에게 덕을 세우는 일인지의 여부이다. 하나님은 비범한 일들을 행하시지만, 언제나 그 일들은 선한 열매로 귀결된다. “이르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Ⅷ. 리더십의 원리들: 집회 중에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시중들기.
A. 원리#1: 성령님은 말씀을 사랑하신다. 성령님을 말씀에 영감을 주신 분이시다. 성령님은 말씀을 선포하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주신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으셨다. 성령님은 기록된 말씀에 기름을 부으심으로써 살아있는 말씀 자체가 되신다. 우리는 성령님과 기록된 말씀 중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양자 모두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면 된다. 사람들이 현상들을 나타내기만 하면 말씀을 가르치기를 아예 배제하는 이들도 있다. 이따금씩 그럴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원칙 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B. 원리#2: 우리는 성령님에 관한 올바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령님은 지극히 오래 참으시는 분이다. 성령의 열매는 인내이다.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성령님은 연약하지만 매우 탄력적인 분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집회를 올바로 인도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거역할 때 슬퍼하신다. 우리는 지도자들이 어떻게 가시적인 현상들을 수반하며 ‘집회들을 인도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 관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성실하신 성령님은 ‘목표가 크신 하나님’이시다.
C. 원리#3: 성령님이 우리를 만지실 때, 반드시 우리가 언어적인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가시적인 현상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그 현상 속에 보다 깊이 들어갈 수도 있다. 집회 도중 주님의 기쁨이 몇몇 소수에게만 임했을 뿐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번져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쁨이 임한 그 몇 사람들을 옆방으로 보내드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단의 나머지 사람들도 방해받지 않고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 다른 방으로 옮겨진다고 해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고전14:32)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