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2010

하나님 사랑하기: 첫째 계명이 가장 우선 순위의 자리로 회복되는 것 - 마이크 비클

. 사랑 안에서 예수께 동등한 멍에를 지는 자리로의 부르심
A. 성령의 첫번째 안건은 첫째 계명이 교회 안에서의 가장 우선 순위가 되도록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22:37-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B. 사랑 안에서 동등하게 멍에를 진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우리를 그분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C. 창조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궁극적 목적은 그분 자신에게 신실한 자녀들을 포함한 가족 부여하시는 것이며 예수님께 그분의 영원한 동반자로서 동등하게 멍에를 지는 신부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1. 의무적인 순종: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이 예수께 순종하도록 만드십니다(2:9-11)
2. 자발적인 사랑: 사랑의 정확한 정의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사랑의 교제에 들어가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가장 깊은 부분에 그분을 초청하기를 기다리십니다.

D.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도록 초자연적으로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하나님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에 반응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기름부음은 성령이 우리에게 부으시는 가장 은사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이니”(5:5)

E.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그분이 정의하시는 사랑의 정의에 의거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우리 모든 삶의 온전한 리더십을 드림으로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종말의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함이 없이 사랑을 추구하는 인간 적인 문화에 의거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에 의거하여 사랑을 정의하여야만 합니다. 우리의 문화에 의거한 사랑, 자유, 해방에 대한 많은 성경적이지 못한 정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성경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히피가 아니십니다.

F.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순종의 영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21).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14:15-2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23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말을 지키리니

G. 산상수훈(5-7) 하나님의 방식에 의거한 사랑을 정의합니다. 100% 순종을 추구함으로서의 팔복(5:3-12)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릅니다.(5:48) 우리의 본성적인 탐욕에 관련된 6가지의 부정적인 작용을 거부하고(5:21-48) 5가지의 영양소를 추구함으로서(6:1-18) 성령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을 있는 자리에 우리는 있게 됩니다.

H. 매일 매일의 삶을 얼마나 산상 수훈 안에서 걸어 가는가에 의하여 우리의 영적인 성숙도를 측정할 있습니다. 우리 사역의 영향력의 척도는 우리 사역을 받은 사람의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느 정도로 산상수훈의 가치에 의거하여 사는 가에 있습니다.

. 크고 첫째가는 계명
A. 하나님의 최우선 사항과 성령의 첫째 중심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경작하는 것이다.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B. 예수님은 이것을 첫째 선택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첫째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경작하는 것이 성령의 첫째 중심사역이라고 밝히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소유하셨음에도 여전히 첫째로 원하시는 무엇인가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가장 그리고 첫째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분께서 쫓으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 생명의 신비는 바로 진리에서 발견되어 집니다.

C. 하나님을 향한 사람을 경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에 가장 영향력 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많이 사랑하게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부르심입니다.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추구하는 사람중의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나 보다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아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가장 위대한 소명을 원하는 것에 대하여 말할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의 크기 대신에 사역의 크기를 인용합니다. 우리가 받을 있는 가장 위대한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표현할 있는 기름 부음입니다. 그것은 가장 자유 가져오고 거기에 가장 상급 있습니다.

. 영역#1: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A. 영역#1: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우리의 감정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무감으로 가득찬 봉사보다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감정주의에 치우치지 않게 하면서 우리의 감정을 만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영역에서 자라가도록 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가장 애정을 경작할 수가 있습니다.

B. 무엇에 우리의 사랑과 애정을 쏟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기로 결정한 그것이 무엇이던지 우리의 감정은 결과적으로 그에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성령은 우리의 마음(감정) 바꾸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두십시오. 여러분의 감정과 애정은 시간이 가면서 따라 것입니다. 시편91:14 “저가 나를 사랑한즉(마음으로) 내가 저를 건지리라

C.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자신의 마음을 두기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시편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D. 우리의 감정은 우리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하고 능력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삶의 부분에서 사랑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은 초점이 맞추어 있어야 하고 부지런히 깨끗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물질, 명예의 자리, 잘못된 관계, 죄악에 중독, 쓴뿌리, 실족함등에 부적절하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지킵니다.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E. 기독교는 인격체이신 그분과의 계속적인 사랑의 만남입니다. 사랑의 만남이 없는 같은 헌신과 의를 향한 극단적인 선택은 우리를 견고히 지켜 주지 못합니다.

F. 우리의 감정이 여러 가지의 욕심으로 점차적으로 흔들리는 헛된 망상에 빠지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분의 뜻과 상반되는 감정에 대항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 영역 #2: (생각) 다하여 사랑하라
A. 영역 #2 (생각) 다하여 사랑하라: 우리는 우리의 생각()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감소시키는 대신 영감을 더하여 주는 것으로 채웁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사랑을 있는 우리의 용량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의 생각을 옳은 것으로 채우면 예수님을 사랑 있는 용량이 증가되고 우리의 생각을 잘못된 것으로 새우면 예수님을 사랑할 있는 용량이 감소됩니다.
B. 우리의 생각은 속사람에게로 향하는 관문이며 사랑할 있는 용량에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이 생각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인간 영의 언어는 그림들의 영상입니다.

C. 우리의 생각은 우리에게 연속적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내면의 영화 화면입니다. 우리의 기억들을 저장하는 사진기 같은 것이지요. 우리는 연출가, 주연 배우이며 우리 내면의 영화관객입니다. 우리가 연출하고 연기하고 그리고 관람합니다. 우리는 영웅이며 동시에 악한입니다.

D. 우리의 생각은 우리 안에 있는 절대 쫓겨나지 않는 광대한 우주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의 영상들을 버릴 수는 없지만 방향을 돌릴 수는 있습니다. 어두움의 생각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내면에서 보고 있는 영화의 대본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다시 있습니다.

E. 우리의 생각은 우리 안에 있는 절대 쫓겨 나지 않는 광대한 우주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의 영상들을 버릴 수는 없지만 방향을 돌릴 수는 있습니다. 어두움의 생각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하여 내면에서 보고 있는 영화의 대본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다시 있습니다.

F. 하나님에 관한 진리에 동의하게 되도록 우리의 생각을 말씀으로 채우는 것에 시간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묵상하는데 시간을 투자함으로 하나님이 온유한 아버지, 열정적인 신랑되신 왕으로의 마음을 가지신 것에 대하여 거짓을 고하던 것들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G. 예수께서는 부도덕한 영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드러내셨습니다. 먼저는 생각에서 (성적인 상상) 그리고는 시야와 욕심으로 보는 (사람이나 디지털 영상) 통하여 부추겨 집니다. 5:28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H. 간음의 진행: 눈의 간음이 마음의 간음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신체적인 간음으로 이끄는 환경으로 이끕니다.

I. 원칙: 성적인 순결과 절제는 시각에서부터 성립됩니다. 예수님은 부도덕한 영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전방 전쟁터의 문으로서의 눈의 역할을 우리가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도덕한 열정의 불을 끄기 보다 눈의 문을 닫는 것이 쉽습니다.

J. 욥은 7계명의 영과 눈으로 짓는 간음의 힘을 이해했습니다. 31:1,9 “1내가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9언제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 영역 #3: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A. 영역#3: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우리는 자연 자원(시간, , 에너지, 재능, 그리고 영향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개인적인 편안함과 영예를 증가시키기 위해 자원을 사용하는 통상적인 방법에 반하여 우리의 자원을 어떻게 달리 사용하는가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B. 하나님께서는 그분과의 관계를 향하여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분을 사랑하도록 돕는 데에 우리의 힘을 투자할 그분께 보여 드리는 사랑을 아끼십니다. 산상 수훈의 다섯가지 활동을 통하여 우리의 힘을 보입니다(6:1-18). 봉사와 베풂(6:1-4, 19-21), 기도(6:5-15), 원수를 축복하고 용서함(6:14-15, 5:44), 금식(6:16-18).

C. 하나님은 우리의 힘을 증식시키고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때와 방법에 의하여 이루십니다. 여기에 믿음이 요구되고 믿음을 지켜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사랑의 표현으로 여기십니다.

. 영역 #4: 혼을 다하여 사랑하라
A. 영역#4: 혼을 다하여 사랑하라: 우리의 정체성을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이나 성취에 두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하는 것으로 재조정합니다. 우리의 성공이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우리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B. 성취나 인정 받는 것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얻게 되면 공허한 편견의 감정적인 폭풍에 빠지게 됩니다. 거의 자동적으로 우리 자신의 성취는 보잘 없고 중요치 않은 것으로 보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C. 우리는 하나님에게 선택되고 사랑 받는 자로서 그리고 하나님께 사랑으로 답하는 존재로 있는 것으로 우리의 성공을 정의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개개인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우리의 성취, 인정받는 , 소유한 것이 아닌 바로 진리를 성공의 토대로 하여 닻을 내려야 합니다.

D.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사랑받고 그분께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에 의해 성립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고백은 나는(하나님께) 사랑받고 나는 연인이다(하나님의), 그래서 나는 성공한 자이다.”

E. 소진 상태는 열심히 일한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영으로 일하는 데에서 옵니다. 성공을 목적으로 일할 우리는 소신하게 됩니다. 성공한 데에서부터 일하면 우리의 영은 강건하여집니다(1:10). 마음과 생각 안에 감정적인 혼선이 줄어 들어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게 것입니다.

F. 우리의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 사랑의 전부를 가지고 예수님과 동등하게 멍에를 집니다. 우리의 전부라 하는 것이 비록 보잘 없어도 전부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바로 그대로 사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G. 100% 순종을 향해 지속적으로 쫓아 가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이루었다 것과는 다릅니다. 죄지었을 때에 우리는 회개하고 그분이 우리를 즐겨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려는 쫓아감을 다시 새롭게 결정합니다. 주님은 사랑 안에서 계속적으로 자라가려는 우리의 헌신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분을 사랑하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발돋움이 그분을 움직입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승리합니다. 이상 우리의 실패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안에서, 의의 선물 안에서(고후5:17),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영의 부르짖음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향한열정컨퍼런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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