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4-26)
Ⅰ. 하나님 아버지에 관한 나의 개인적인 여정
A. 학대를 받고 자라오면서 나는 하나님을 마치 나를 적대시하는 분으로 여기게 되었다.
B. 왕국에 들어와 하나님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얻다.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C. 나는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갔다.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단호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스스로 부적격자라는 느낌을 떨쳐내려고 애를 썼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3).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Ⅱ. 하늘 아버지에 대한 그릇된 견해들
A.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모호하거나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품고 있는 생각들은 종종 이 땅에서의 권위적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말미암은 것일 때가 많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견해들 중 많은 것들이 권위적인 인물들을 인식하는 방식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이 형성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은 대체로 육신의 아버지이다. 물론 어머니나 육상코치, 학교 선생님, 가정교사, 심지어 피아노 선생님일 수도 있다. 존경과 우러름의 대상은 누구나 여기에 해당된다. 어린 시절 이러한 권위적 인물들과 주고받은 경험들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다. 다음에 소개하는 내용은 여러 상이한 유형의 아버지상들에 관한 것이다. 이 내용은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견해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에 관해 깨달음을 줄 것이다.
B. 수동적인 아버지
1. 수동적인 아버지는 정서적으로 소원한 존재이다. 다시 말해 지극히 최소한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아버지이다. 이런 아버지는 자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줄을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고 억측한다.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통이든 기쁨이든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일도 드물다. 뭔가 경이롭거나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더라도, 이러한 아버지는 대체로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만다.
2. 수동적인 유형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하늘 아버지도 육신의 아버지처럼 수동적인 분이라고 생각한다. 달리말해,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을 느낄 줄도 모르시고 기쁨도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의 혹은 전혀 애정을 표현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런 유형의 아버지를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들이 현재 견뎌내고 있는 압박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분이시다.
C. 권위적인 아버지
1. 권위적인 아버지는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강제로 개입하여 중단시킨다. 이런 아버지는 분명한 행동요령 목록을 제시한다. 그는 당신이 말할 때마다 끼어들어 방해하며, 당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일들을 최소화시켜 버린다. 결국 자라나는 동안 경험해온 이런 유형의 의사소통방식으로 인해 당신의 마음은 점차 냉랭해진다.
2. 이런 유형의 아버지는 자녀의 개성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는 자녀들이 무엇을 갈망하며 어떤 목적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깊이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는 자녀들과 더불어 실제적인 친밀감이나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녀들이 자신에게 순종하는 것만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대체로, 하나님이 봉사와 희생 그 이상의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마치 ‘위대한 목적’을 위해 연속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곳으로 오해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녀들과의 친밀한 우정을 갈망하시는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D. 학대하는 아버지
1. 학대하는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자녀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정서적, 정신적, 신체적, 때로는 성적인 상처를 입힌다. 이 세상에서 학대하는 아버지를 통해 받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없다. 아버지로부터 받는 학대는 자녀의 사고과정과 정서과정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자녀들의 행동에 지대한 여향을 미친다. 나아가 자녀와 하나님과의 관계방식마저도 파괴시킨다.
2. 이런 유형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가혹하게 대하실 거라며 두려워한다. 하나님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가혹하고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곤 하는 중대한 거짓말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되돌려주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E. 함께 있어주지 못한 아버지
1. 네 번째 유형의 아버지는 함께 있어주지 못한 분이시다. 사별이나 이혼, 혹은 버려짐 등으로 인해 아버지를 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살아계신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일 중독자였기에 집안에서 거의 마주칠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 이런 아버지는 함께 있어주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 수동적인 아버지와는 다르다. 부재의 아버지는 자녀가 혼란스러워하고 문제에 빠져 있어도 결코 도움의 손길을 뻗쳐주지 않는다. 자녀는 이런 아버지로 인해 종종 버림받은 듯한 강한 느낌을 받는다.
2. 이런 유형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대체로 하늘 아버지로부터의 인정과 애정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에 방치해버리신 분이라고 억측한다.
F. 비난하는 아버지
1. 다섯 번째 유형의 아버지는 비난하는 아버지이다. 이 사례는 가장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당신을 전심으로 사랑한다고 큰 소리치지만, 동시에 매번 실수할 때마다 판단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의 의도는 당신을 자극하며 행동을 바로잡아 주는 데 있다. 아버지가 당신을 칭찬해주거나 당신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이런 유형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사람은,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는 일도 몹시 어려워한다. 당신은 하나님도 언제나 당신을 비난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2.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세상의 권위적인 인물들과도 같지 않은 분이시다. 시편 50편21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8-9).
Ⅲ. 생각의 견고한 진
A. 우리는 우리 안에 심겨왔던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온갖 거짓말과 오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도록 배우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과감하게 무시해버릴 줄도 모르고 있다. 이 같은 그릇되고 부적절한 개념들은 우리를 엄청나게 위태롭게 한다. 우리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견해가 하나님의 진리보다 천박하면 할수록, 그만큼 우리는 약해지고 패배자가 된다. 왜곡된 진리를 근간으로 하여 사단을 입지를 마련하고 우리 삶속에 견고한 진을 확립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B. 우리가 영적 견고한 진을 파쇄하고 자유케 되려면, 반드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자유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진리도 알아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도 알아야 한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Ⅳ. 아버지 하나님은 최초로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계시하셨다
구약성경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A.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아버지’로 언급한 경우는 한 번도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기도를 드리거나 하나님께 말씀을 건넬 때에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줄곧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스스로를 드러내신다. 특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 맺은 언약을 묘사하는 구절에서 그러하다. 아버지-아들이라는 주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신8:5)
“어리석고 지혜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32:6)
B. 하나님은 이스라엘 그의 자녀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내시겠다고 친히 약속하셨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기를 거절하자, 질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전술적인 심판으로서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신다. 바로가 하나님의 맏아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았기에, 대신에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들을 취하셨다.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은 열방중에서 선택된 하나님의 맏아들이다.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심으로써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하셨다-내 백성들을 놓아 보내라!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4:22)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호11:1)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적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1:30-31)
C. 첫번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히브리인들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 각각의 문설주에 피를 발랐다. 주님의 천사가 그 땅에 찾아왔을 때, 그 천사는 문설주에 피가 발려진 히브리인의 집은 그대로 넘어갔다. 피는 그들의 순종과 야훼께 속한 자들로서의 충성심을 의미했다. 이후로 유월절은 역사적인 행사로서 그들의 창조주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기념하는 의식이 되었다.
D.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결코 이스라엘이 남다른 힘과 영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엄밀하게 말해서 이스라엘은 약속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 민족을 위대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셧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6-8)
E. 성령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사63:16)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64:8)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렘3: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렘3:19)
Ⅴ. 예수님: 아버지를 완벽히 표현하신 분
A. 이사야 9장6-7절 메시아에 관한 예언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다루고 있는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이는 앞으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심도 있게 계시될 것이며,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연합이 얼마나 유일무이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후일 예수님은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메시야로서의 정체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오실 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인격과 성품을 그대로 지니고 계실 것이다.
B. 시2:7-12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과 맺은 약속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2:7-12)
C.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직전, 주님의 사역이 지향하는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주셨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하나님을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초월적인 창조주로서 이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계시해주기 위함이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 앞에서 늘 떨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아버지이기도 하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다. 그들은 주님의 부드러운 사랑 앞에서 확신을 갖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7-9)
D. 하나님 아버지는 각 개인들과 더불어 친밀한 관계 맺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각 개인을 향한 애정과 계획을 품고 계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교와 성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들을 연구하다보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에 관해서도 배우게 된다. 복음서를 읽어내려 가면서,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나타난 권능의 하나님은 다정다감한 아버지이기도 하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E. 예수님의 성품, 사역,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들은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물러 있기를 몹시 좋아했다. 주님은 만일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알았더라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도 동일한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앞에서 떨기도 했지만,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가지신 애정에 대해서도 확신했다.
F.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이 갖는 서로 다른 다양한 국면들을 계시해준다.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이름은 거의 300개 이상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시면서 주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 초점을 두셨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신 분으로서, 가족들과 더불어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는 분이셨다. 예수님은 애정이 많으시고 깊이 관여하시고 관계를 중시하시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된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1-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타나내셨느니라”(요1:18)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1-3)
Ⅵ.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
A. 최상의 본보기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말할 때에 횰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17:5)
B.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순간부터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셨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하나님 아버지는 다시금 동일한 표현으로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으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했다.
“내 사랑하는 아들”-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하나님이 총애하는 자.
“내 기뻐하는 자”-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
C.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의 교회-하나님이 예수님께 대한 애정과 사랑을 품고 계셨음을 이해하기는 쉽다. 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렵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만큼 우리도 사랑하실까?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측량해볼 수 있을까? 이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궁극적으로 계시해준다. 이 계시를 통해 모든 신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 바라볼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3)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동일한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당신보다 더 사랑하시지도 않으시고, 예수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시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당신을 동일하게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분량을 결코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시듯, 주님의 몸 된 교회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셨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3)
D. 우리는 성령님께 간구함으로써,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에 관한 진리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E.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과 초점이 동일하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도록 도와주신다. 성령님은 ‘양자의 영’의 부르짖음으로써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신다. 아빠는 ‘파파’처럼 친근한 표현이다. 아빠는 존경과 동시에 애정과 친밀함의 대상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F. 양자의 영은 인격체이신 성령님이시다. 그분은 위로의 성령님, 진리의 성령님, 소망의 성령님, 거룩하신 성령님,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님, 능력의 성령님 등으로도 불린다. 성령님의 다양한 이름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우리 신자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계신지를 알게 된다. 양자의 영으로서의 성령님은 양자요 양녀인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런 신분을 가진 자들인지를 계시해주신다. 양자가 된다 함은 특권을 누릴 법적 위치에 있다는 의미이다. 양자는 입양된 가문의 이름과 자원들과 재산들을 물려받는다.
G. 양자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양자가 됨으로써 얻어지는 유익들이나 진리들에 관해 깨닫게 해주신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빠 하나님의 마음과 만날 수 있다. ‘아빠에 관한 계시’는 우리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이 계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절망적인 실패자라고 고소하는 사단의 참소를 물리칠 수 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5:5)
H.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우리를 받아들여주셨음을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안정된 닻’을 상실한 채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된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가진 온갖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Ⅶ.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아버지 사역을 풀어 놓기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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