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2010

하나님의 사랑 3 - 율법 행위에 속한 자는 결국 저주를 받음, 율법과 은혜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0).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이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표준인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평생 죄만 짓는 사람도 많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도 부지기수인데, 이들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니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해야 이해하기가 쉬운데, 오히려 “저주(詛呪) 아래” 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율법이 정한 바를 행하고자 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해야 맞을 것 같지 않습니까? 물론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행할 수만 있다면 복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죄성(罪性) 갖고 태어나 죄악 세상에서 죄를 범하고 사는 인간이 율법이 규정하는 의와 선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율법의 모든 계명을 규정대로 항상 행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율법을 범한 것이 죄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에, 율법을 범한 죄의 대가(對價)는 죽음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행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저주입니다.

율법을 지켜 하나님께 가려고 하는 사람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각해 보면 자명합니다. 제대로 다 지키면 저주를 받을 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지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몇 가지는 지키고 몇 가지는 못 지키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키려면 성경이 요구하는 대로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야고보서 2:10) 된다는 말씀도 같은 원칙을 설명합니다. 가령 열 개의 고리로 이어져 천국에 걸려 있는 줄을 어떤 사람이 붙잡고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줄의 고리가 끊어지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합시다. 그 열 개의 고리가 십계명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고리가 몇 개 끊어지면 떨어지겠습니까? 하나 끊어져도 떨어지고, 열 개 다 끊어져도 물론 떨어집니다. 주전자나 솥 밑의 구멍이 열개 뚫어지나 하나 뚫어지나 사용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십계명 중에 몇 개범하면 지옥 갑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했는데, 큰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럼 작은 죄 값은? 그것 역시 사망, 즉 죽어 심판받고 불못에 던지우는 것입니다. 꼭 행위로 범죄하지 않았을지라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도 지옥에 들어갑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도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율법을 지켰다고 있습니까? 말로 욕설도 하고 마음으로 미워하며, 실제 행동으로 죄도 지었습니다. 마음으로, 말과 행동으로 율법을 이미 철저히 범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율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사람은 결국 저주 아래 있습니다.  

요즈음 수영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산항에서 헤엄쳐서 미국까지 건너갈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미국 가는데 비자 받고 비행기표 사고, 그렇게 복잡하게 절차 밟고 돈 들여 갈 것 뭐 있느냐? 나는 수영 잘 하니까 헤엄쳐서 가련다”며 한 100명쯤의 사람이 헤엄쳐서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까지 헤엄쳐서 건너가면 경비절약이 문제가 아니라 영웅이 될 것이지만, 건너가다 실패하면 죽습니다. 100명 가운데 몇 명쯤이나 건너가고, 몇 명 쯤 못 건너갈 것 같습니까? 다 죽습니다. 10,000명 쯤 출발한다면 몇 명 정도 건너갈 것 같습니까? 그래도 역시 다 죽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출발하면 어떨까요? 물론 다 죽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것은 비겁도, 어리석음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림도 없는 일, 하나마나 뻔한 일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구원의 조건을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선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수영으로 미국까지 건너가려는 사람보다 훨씬 어리석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라는 말씀과 같이, 그들은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고서도 끝내 지옥에 가는 결과를 맞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쌓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공로(功勞)와 선행이 어떠하든, 또한 그것들이 천국 가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발견함으로 갖는 허무함이 어떠하든, 떨쳐버릴 것은 떨쳐야 합니다. 자기 공로와 생각이 다 깨져야 한다고 해서 억울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밑천을 많이 들여 벌인 사업이라도 안 될 것이 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투자한 밑천만 아까워하여 끝까지 끌고 가다가 결국 다 털어먹는 사람이 있습니다.『유태인 상술비법』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장사를 시작하여 일단 해 보고, 안되면 다시 한 번 해 보고, 그리고 또 한 번 더 시도해 본답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해봐서 안 될 것 같으면, 얼마의 돈이 투자되었든지 간에 그 일을 치워버리고 “아이구! 속 시원하다”고 한답니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는 한 번 투자하고, 두 번 투자하고, 세 번 투자하고서도 안 되면 네 번째는 가진 것을 아예 싹 쓸어넣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노름판에서도 처음에는 작은 단위로 하다가, 막판에 가서는 많은 돈을 잃은 사람이 그 손실을 한꺼번에 만회하려고 나머지를 다 거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들어간 밑천 아까운 것만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밀가루 장사를 하는데, 밀가루를 잔뜩 사 놓았습니다. 그런데 밀가루 값이 그만 폭락을 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까짓것 내가 망해서 패가망신 당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죽어버려야지”하고, 자살하려고 노끈을 하나 샀답니다. 대들보에다가 노끈을 매놓고 방 한 가운데서 목매어 자살하려고 하는데, 라디오에서 밀가루 값이 갑자기 폭등했다는 뉴스가 나와 자살을 하지 않고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살하려고 산 그 끈을 못 써먹을까 봐 아까워서 자살했다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어이없는 짓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쓸데없게 된 노끈은 미련 없이 내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없는 돈에 어렵게 구입했을지라도, 필요없게 된 이상 버려야지요.

이제까지 율법을 지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자 했을지라도, 그것이 소용없는 일인 줄 알았다면 즉시 포기해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손에 붙잡고 있는 쓸데 없는 것을 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놓으면 천국 가는 줄을 놓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놓음으로써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의 줄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말씀드리는데도, 수십 년간 교회 다니며 쌓은 자기의 공로에 미련이 남아서 “그래도 율법을 지켜야죠! 지키는 데까지는 지켜보아야죠!” 하고 고집하시는 사람도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산에서 미국까지 헤엄쳐서 갈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내가 이미 많이 왔는데 가는데 까지는 가봐야지요’라며 계속 헤엄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나갔다가는 돌아오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율법과 은혜
내가 하나님의 은혜(恩惠)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律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 2:21).

율법을 지켜서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오실 이유도 없고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도 없으며, 예수님의 죽음은 헛된 죽음에 불과합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3:11,12). 은혜는 믿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고 율법은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명합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은혜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율법과 은혜를 분별하지 못하고 섞어놓아 신앙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라디아서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믿는다”고 하고  그것도 “잘 믿어 보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율법을 왜 지키려 하겠으며,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이유는 더욱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사람은 큰 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 더러운 옷과 같아서”(이사야 64:6) 우리의 행위로는 자기( 수치) 가리울 없을 ”(이사야 59: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의롭게 되고자 기울이는 노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치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옷을 걸친 것과 같아서 우리의 의()는 우리의 죄악의 수치를 결코 가릴 수 없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문둥이가 걸치고 있는 온갖 병균으로 더럽혀진 다 떨어진 넝마나 같습니다. 그런 것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마귀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 봐! 하나님이니 영혼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그런 말 듣지 마라. 그건 할 일 없는 인간들이 지어낸 소리야.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기는 누가 창조했다고 그래. 옛날부터 있었던 거야. 해와 달과 별도 저절로 생겼고, 지구도 다 저절로 생겨서 돌고 있는 것이야. 그리고, 아메바가 진화해서 곤충도 되고, 또 더 진화해서 물고기도 되고 날짐승도 된 거야. 그렇게 짐승도 되고 원숭이도 되었고, 원숭이가 꼬리가 슬슬 들어가서 사람도 되고 한 거야”.

또 “사람이 별것이냐? 다 진화해서 그렇게 된 거야. 그래서 사람을 고등동물이라고 하잖아. 인간은 짐승이 조금 발전한 것뿐이야. 영혼(靈魂)은 무슨! 그런 것 있으면 내 놔봐라. 그러니까 자연의 순리대로 짐승들처럼 약육강식으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야. 죽으면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야. 믿는다고 맹꽁이처럼 그러지 말고 ‘쾌쎄라 쎄라(될 대로 되라)…’ 사는 거야”라고 거짓을 집어넣습니다.

그런 마귀 속임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른 채 쾌락을 추구하며 삽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이 없으니 육신이 전부인 알고 육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먹고 마시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시고 또 마시고 이 밤이 지나도록 춤을 춥시다”라며 한없이 마시고, 토하고 또 마시고 인사불성이 됩니다. 하나님이니, 영혼이니 그런 것 생각할 시간을 마귀는 주지 않습니다. 지옥 갈 때까지 막 몰아 붙여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뭐라고 할까요? “너, 예수 믿을래? 그래, 그러면 잘 믿고 천당 가라. 바이 바이(Bye-Bye)” 그럴 줄 아십니까? 믿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믿지 말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믿으라”고 합니다. 이는 마귀에게는 종교라는 제의 무기가 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고 믿을 바에는 열심히 믿어라. 새벽기도도 가고 주일도 지키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돈도 바치고 잘 해라! 교회당 얼마든지 많이 지어라. 목사, 얼마든지 많이 만들고, 집사도 얼마든지 많이 세워라. 성가대도 천사처럼 꾸며라. 경건하게 예배의식을 행해라”고 부추깁니다. 마귀는 그런 것 전혀 겁내지 않습니다.

마귀는 다만 “구원만 받지 마! 거듭나는 것 신경 쓰지 마라! 그런 것은 지금 몰라도 괜찮아. 하다 보면 세월 지나면 알게 돼. 믿는 것이 따로 있나? 교회 나가면 믿는 것이고, 열심히 하면 그것이 잘 믿는 것이야. 너는 큰 상 받을 것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게다가 “아무개 집사님은 하나님께 큰 상 받을 것입니다”라고 목사가 부추기기라도 하면, 속으로는 “그렇죠. 그렇죠. 나는 큰 상 받을 것입니다”라면서도 “에이 뭘요…” 하며 점잔까지 뺍니다.

‘비행기 태워’ 어딘지 모르게 끌고 가는데, 그 비행기 운전사가 바로 마귀인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가는 목적지는 지옥, 그 비행기 타면 지옥 직행입니다. 목사님이 칭찬해 준다고 하나님께서도 칭찬해 주십니까? 세상일에는 그렇게도 똑똑한 척 하면서, 사람이 그 중요한 영혼문제에는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물건 하나 사면서도 속지 않으려고 이 집 가서 물어 보고 저 집 가서 물어 봅니다. 그렇게 제일 싼 집에 가서 깎고 또 깎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남보다 비싸게 샀다 싶으면 ‘바가지 썼다’고 기분 나빠합니다. 세상 일에는 그렇게 속지 않으려고 똑똑한 척 하면서, 예수 믿는 것에는 마귀에게 푹 속습니다. 다른 것은 다 속을지라도, 그래서 물질적인 손해는 좀 보아도 그만이지만, 믿는 데 속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목사님 말이나 부흥강사 설교나 신학박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건 성경 말씀과 일치할 때 믿으십시오.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은 세상 일이 아닌데 사람이 하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인 성경 외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남이 믿는다고 무조건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성경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고 믿어야 합니다.   

“구원받아야 된다. 거듭나야 된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없느니라”(요한복음 3:3)고 하셨는데도, “거듭나야 천국 간다”고 하면 아주 기분 나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구원받아야 된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땅히 “아! 그럼요. 거듭나야죠. 어떻게 해야 거듭납니까? 구원받아야 될 텐데, 저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말해야 할 텐데, 오히려 “너만 받았어? 제깟게 무슨 구원받았다고, 교만하게 말이야. 그리고 남이야 구원받았든지 말았든지 무슨 상관이야. 믿으면 받은 것이고, 받았으니까 믿고 믿으니까 다니지” 하며 몹시 불쾌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원받아야 된다는 말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 된 것입니다.

<출처: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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