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현재로 소유한다.
하늘의 자원으로 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청지기에 대한 이해를 반드시 높여야한다. 청지기 된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큰 영광은 내일을 끌어당겨 오늘 청지기하는 책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역할을 훈련시키고 계시는데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향한 사모함을 깨우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닻을 내린 심령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 영역을 섬기기에 가장 적합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우리 안에 세우신다.우리가 그 말씀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으로부터 시간의 세계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그 말씀 위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영원과 접속하게 하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 세계의 영향을 세상에 미치도록 한다.
유업 기초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명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으로 이 땅을 가득 채우기 원하시며 예수님의 영광스런 신부가 그 역할을 하기 원하신다.
우리가 미래를-앞으로 올 것-를 유업으로 받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심오한 방법으로 내일을 청지기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사건들을 계시해 주시고 우리는 그 미래의 사건들의 타이밍(일어날 시기)을 청지기 하는 것이다. 이 놀라운 특권에 대하여 성경 말씀에 예문이 나와 있으며 우리에게 다른 방법으로는 해석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구절에 대한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계시의 목적
계시는 수건을 벗기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어떤 것을 덮고 있는 것을 벗기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미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일과 약속에 대해 우리에게 밝히실 때에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영역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모든 약속들이 언젠가 모두 성취될 것이지만 그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의 가속화(빨라지느냐의 여부)는 하나님의 백성의 갈급함에 달려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우리의 열정은 우리 안에 영적성장과 그 계발을 가속화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보다 더 빨리 이러한 사건들의 청지기로서의 자격을 얻게하는 것이다.
성경적 전례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과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셨다. 그곳에 계신지 얼마 되지 않아 마리아는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예수님은 이렇게 반응하셨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이다”(요 2: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듣고 본 바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 행하셨다(요 5:19 참조).
예수님은 이 때가 기적을 행하는 자로서의 자신을 드러낼 때가 아님을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마리아는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30년 동안 잉태했고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이 어려워졌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RP서 지시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도록 명하였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명령을 받으셨던 예수님은 이제 그 정하신 때가 왔음을 인식하셨다.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의 시간표가 바뀐 것이다. 다른 날 이루어지도록 계획된 것(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자로 밝히는 것)이 마리아의 갈급함 때문에 앞당겨진 것이다.
가장 심오한 일화
다윗왕은 이 원리를 가장 잘 적용한 경우로 상을 탈만하다. 그의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다윗왕은 율법 아래 있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 앞에 나아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는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 위에 머무셨다. 그는 그릇에 담긴 피만을 가지고 올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희생을 실제로 받아주셔서 죄의 대가를 일년 더 연기해 주실 것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만일 대제사장 이외에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들은 죽고 말 것이었다. 당시에는 아무렇게나 교회에 가는 태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알려져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 다가가는 방법이 변할 것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그의 왕궁에서 섬기는 선지자 나단과 갓에게 확인을 받았다. 이 통찰력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다윗왕은 소와 염소의 피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터치하는데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고 깨어짐과 뉘우침의 희생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또 다른 급진적인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에 매일 들어오도록 환영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피의 대접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의 예물을 대신해서 가지고 왔다.
준비가 시작되었다. 악기 연주하는 자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훈련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것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다윗 전에 왕이었던 사울은 언약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윗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원했다. 그들이 언약궤를 운반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처음에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다윗은 결국 소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다윗은 언약궤를 위해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임재(언약궤)를 커다란 축제를 배설하며 맞아들였고 그 궤를 장막 안에 두었다. 다윗의 지시에 따라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매일 24시간 예배를 드렸고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장막 안 하나님의 임재 앞에 짐승의 제사는 없었다. 100% 예배만 있었다.
이제 두 가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는 그들이 했던 행위는 당시의 율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보혈 때문(덕분)에 한명 한명의 신자들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감사, 찬양, 예배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신약시대의 교회생활을 예고편으로 미리 엿보게 된 것이다.
다윗은 일차적으로 예배자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젊은이로서 그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배웠다. 다윗은 신약시대의 신자들을 위해 예비된 삶의 스타일을 맛보았고 그의 날에 그것을 갈망했다. 그가 본 바에 대한 갈망은 너무나 커졌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시대를 위해 준비해 두셨던 것을 다윗이 그의 날에 가질 수 있도록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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