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2010

"기도를 통한 영적 전쟁의 승리"

우리의 삶은 매일이 영적인 전쟁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이 계속됩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지만 사실 보이는 전쟁보다 더 치열한 전쟁입니다. 이론전이 아닙니다. 실전입니다. 실제적인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이 되었건 육적인 전쟁이 되었건 싸움에서 이기려면 용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있어야 됩니다. 깊은 생각이 있어야 됩니다. 지적인 책략, “지략”이 있어야 합니다.

이순신의 전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의 주요무기는 ‘조총’이었습니다. 이 조총은 정확성이 무척 뛰어났습니다. 활로 쏘는 것보다 몇 배의 정확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점이 있었는데, 사거리가 백 보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걸음을 일 미터로 잡는다고 하면 백미터 밖에 날아가지 못합니다. 반면에 조선에는 ‘총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대포인데 오백 보 정도가 나갔습니다. 특별히 그 중에 ‘천자총통’이라는 것은 신무기였는데 구백 보 정도가 나갔습니다. 한 일 킬로 정도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무기학자들은 한국 최초의 미사일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포가 굉장히 강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고려 말 최무선 이후에 대포 쪽으로 한국무기가 발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 초기에 이순신은 이것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접근전을 금지했습니다. 원거리 포격전만 했습니다. 붙으면 진다. 멀리 떨어져서 우리는 계속해서 포만 쏘면 된다.

그런데 당시 원균같은 파이터들은 이러한 전술을 싫어했습니다. 왜냐면 전쟁이라 하면 남자답게 접근전을 펼쳐서 적의 목을 베어 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적의 목을 베어오는 것이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귀나 코를 베어가는 그런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접근의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의 목 따위엔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오로지 배만 부수어라, 나는 배를 부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공(戰功)이라고 인정해주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은 23전 23승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도 아군에게는 거의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순신의 해군은 그렇게 많은 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정유재란 포함해서 7년 동안 왜구를 잘 막아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적의 약점을 헤집고 들어갔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패배없이 승리하는 것, 참 매력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패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고 실수했을 때 많은 것을 배웁니다. 배우지 않습니까? 우리가 불순종하면 하나님께 맞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징계하듯이 혼내시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또 실수를 통해서도 배웁니다. 실수를 통해서 이렇게 하면 않되는구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고난을 통해서 많이 배웁니다.

특별히 성경 상의 인물을 보면 야곱이 그랬습니다. 불순종하고 잔머리 굴리고 그러다가 긴 고난의 시간을 갖습니다. 20년 동안긴 고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불순종하다가 평생의 삶, 쓰임 받지 못하다가 죽기 직전에 한 번 쓰임받는 안타까운 인생을 삽니다. 깨닫긴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댓가를 치루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많은 좋은 기회를 놓치고,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인생을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피해 없이 승리하는 길이 영적인 세계에는 없는가? 내 아군의 피해 없이 승리만을 이루는 길은 없는가?혹시 성경에 그런 길이 있다면 그런 길로 가는 것이 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짖는 기도의 능력에 그러한 숨겨진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고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도 그것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했더니, 기도했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을 연결시킨 대표적인 말씀이, 마태복음 18:18-20절에 나와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일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니까 기도는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풀고 메는 능력이 기도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이면 합심 기도하라는 겁니다. 중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루게 되리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약속이지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항상 함께 하겠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는 반드시 승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100%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원거리 포격전을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기도, 기도입니다.

기도하다가 피해 입은 거 보신 적 있으십니까? 기도하다가 공격당하는 것 보았습니까? 제가 볼 때 거의 없습니다. 기도에 의한 피해라봐야 금식 기도할 때 약간 배가 고픈 것 정도, 또 강하게 기도하면 목이 좀 쉬는 정도, 철야기도하면 조금 졸린 것. 그러나 이런 것들을 피해라고 볼 수 있습니까? 피해라기보다는 그저 피곤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의 피해는 없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영적인 포격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도 우 선 순위가 있는데, 먼저 상대를 제압하고 난 다음에 일을 해야 합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기도로 마귀를 묶어놓고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시퍼렇게 마귀가 살아서 날뛰는데 남자답게 싸워서 남자답게 깨진다고 하면 그게 뭡니까? 지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돌적으로 돌격 앞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상 그렇지 않습니까? 남성답다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면 남성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왠지 치사하게 앉아서 기도만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행동하지 않는답니까? 행동하기 이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충분한 기도입니다. 충분한 기도로 완전히 적을 섬멸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비상구로 투입해야 합니다. 그러면 별 싸움 없이 점령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싸움 벌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너무나도 강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아군이 거의 상하지 아니하고 쉽게 승리했던 대표적인 이야기들이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19장에 나오는 앗수르의 사람들이 히스기야가 왕으로 있을 때 예루살렘을 포위해 버렸습니다. 당시 포위라는 것은 보급이 모두 끊겼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강도 없습니다.

굉장한 굶주림, 식수의 고갈, 보급차단 등 최악의 완전히 죽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가 했던 일이 벽을 향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그 강력한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네 기도를 듣고 눈물을 보았다.’ 그러셨잖아요.

그리고 이 앗수르 군도 안에서 자중진란(自中之亂)이 일어나서 18만이 모두 멸해지지 않았습니까? 아군의 피해 제로, 적군의 섬멸, 기도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이러한 앗수르의 공격이 있습니까? 기도로 섬멸하십시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니엘도 충분히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 굴에 끌려들어 갑니다. 사자 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기도는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안전하게 아무 피해 없이 승리하며 나오잖아요.

또 사도행전 12장에 보니까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12장 5절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절히 기도했을 때 옥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그것을 풀어버렸습니다. 아군에게 아무 피해 없이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금 붙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호하면서 승리만을 맛볼 수 있는 영적인 이순신 전략은 기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충분히 해야합니다. 더 깊은 기도, 더 많은 기도, 더 충분한 기도가 있을 때 이런 완전한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를 할 것인가? 기도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패배를 가르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승리를 배우기 위해선 기도를 배워야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할 것인가?

첫째는 제일 센 사령부를 공격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마귀의 사령부는 사단입니다. 사단이라는 최고의 사령부를 공격하라, 마귀를 제어하라, 마귀를 멸하라.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영적분위기에서의 악한 마귀를 깨부수어야 합니다. 교회를 괴롭히는 무리들, 직장을 잡고 있는 악한 세력들 그 분위기를 깨어야합니다. 전체적인 세력을 놓고 기도해야합니다. 장난치는 전체적인 악한 세력들의 결탁들이 무너지게 해주십시오. 답답함같은 전체적 분위기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단의 사령부를 공격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개별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우리가 리더나 간사나 같은 동역자들, 양떼들을 섬기는 영혼들이 있지 않습니까? 한영혼 영혼을 모두 만나보면 나름대로의 하나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압박감, 환경의 문제, 구조적인 문제, 죄악의 문제, 함정의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눌려있는 영혼들을 찾아가서 구체적으로 한사람 한사람 중보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건전하게 해방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마귀에게 묶여있는 자들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귀신들도 항복하게 만드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개별적인 중보자들이 있습니까? 개별적으로 중보함으로 해방시키는 명단들이 있습니까? 그 일들을 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놓고 싸우기도 해야 하지만 한사람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시키는 해방사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세 번째는 마귀의 패배만이 아니라 생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21세기 언어로 표현하면 새로 얻은 영혼을 양육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 가운데 날마다 승리하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길 바라고, 삶이 찰랑찰랑하고 간신히 유지하는 삶이 아니라 풍~성한 데까지 나아가는 승리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는 한 분 한  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출처:Love and Truth Church(사랑과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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