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령님만이 참된 제자를 만드실 수 있다. 성령님께서는 죄를 책망하심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케 하신다. 이에 그들은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필사적으로 십자가를 붙들게 된다. 만일 우리의 회심이 이러한 절박함에 기인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죄를 용서받으려고 평안의 유일한 근원인 십자가를 붙든 것이 아니었다면,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십자가 이후에는 부활이 있다. 하지만 먼저 죽어야만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 부활의 전제조건이 죽음 아닌가? 십자가에 자아를 못 박지 않고 부활의 소망과 유익을 마음에 새겨두려고 한다면 그 노력은 끔찍하고도 비극적인 환각일 뿐이다. 이에 도취된 수많은 사람은 자신의 영적인 처지가 나아졌다고 느끼지만 실상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영원한 위험에 처해있다.
예수님은 손에 모자를 쥐고 "나를 영접해 주세요"라며 구걸하는 분으로서 이 땅에 오신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이 땅을 거니실 동안 사람들을 부르셨던 그 방법 그대로, 지금도 사람들을 부르신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로부터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우리라고 다르겠는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것-그 이하의 조건이라면 참된 제자도가 아니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십자가의 메시지를 변형시킨다면 진정 구원의 능력을 지닌 복음의 진수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사람에게 좋게 보이려고 십자가의 메시지에 우리의 '유식함'을 첨가하는 것은 사람들을 구원할 복음의 진한 능력에 물을 타는 행동이리라.
릭조이너의 1세기 교회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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