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2011

예언적 꿈

인류는 창조 때부터 꿈을 꾸어 왔다. 꿈이란 수면하는 동안에 떠오르는 일련의 생각, 영상, 혹은 감정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오랜 세월동안 꿈을 통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해 오셨다. 꿈이 이렇게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서 유효한 통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성경에 등장하는 무수한 꿈 이야기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하느님의 도구로서의 꿈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2).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느님이 매일 밤 우리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시는데 우리는 봉투도 뜯지 않고 버린다.” 꿈에 관한 얘기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자기 백성들이 그 분의 모든 의사소통 수단에 익숙해지기를 바라신다. 꿈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유형이다. 하느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시며,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 꿈을 선택하신다. 신디 제이콥스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꿈을 경계해 왔다. 그러나 꿈을 무시하게 되면, 오늘날 하느님의 음성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모든 성경적인 방법 중 한 가지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 된다.”

실제로 오늘날 ‘말씀 중심’의 교회를 자처하면서도 예언적 꿈을 부정하는 ‘비성경적’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로 그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에 아주 큰 영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시대로 접어들면서 하느님께서는 이 초자연적 의사소통 수단의 사용을 전례 없이 가속화시키고 계신다.

오늘날에도 꿈은 유효한가?
꿈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종말이 가까울수록 점차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 체험’이 될 것이다.

마지막 시대를 향한 약속
꿈은 유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우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마지막 때’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꿈을 꾸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행 2:17).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예언과 더불어 꿈과 환상이 말세 교회에 충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은사에 대해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환상을 볼 것이요, 꿈을 꿀 것이며, 꿈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을 것이며, 이러한 일이 교회로 전달될 것이다.”

마지막 시대로 접어들수록 ‘꿈’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꿈’을 받는다는 것은 이 마지막 시대에 성령이 부은 바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지표이다!

변하지 않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속성을 보여 주셨다. “나 여호와는 변하는 자가 아니므로”(말 3:6, 현대인의 성경).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꿈을 꿀 수 있는 기능과 능력을 주셨다. 또한 그는 자신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의 한 가지로 꿈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성경 전반에 걸쳐서 보여 주셨다.

그런 하느님께서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시기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는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꿈을 통해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변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달라지시지 않았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일상적인 꿈과 영적인 꿈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
영적인 꿈은 보통 매우 선명하고 실제적이다. 그것은 한동안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그런 꿈이다. 그 기억들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깨어 있었는지, 혹은 자고 있었는지조차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꿈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자세하게 기록해 두는 것이 좋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종종 우리 기억에 아로새겨지게 된다. 나는 20년 전에 나의 장래에 관한 예언적 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찌나 생생한 지 아직도 어젯밤에 꾼 꿈처럼 선명하게 내 마음 속에 새겨져 있다.

해석을 위해 지혜를 구하라
우리가 영적인 꿈을 꿀 때 그 의미가 매우 분명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해석이 필요하다. 이때는 해석을 위해 하느님께 ‘지혜의 말씀’을 구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해석에 필요한 지혜를 주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예언적 꿈을 받았을 때, 그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와서 해석이 불필요한 경우와 그렇지 않아서 꼭 해석이 필요한 경우를 비교해 설명해 보겠다.

해석이 불필요한 꿈
수년 전 세탁소를 경영하는 50대 후반의 남성이 우리 교회에 등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사명자’라고 예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명자’가 아니라고 예언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아주 혼란스러웠다. 진정 자신이 사명자라면 사업을 포기하고, 환갑을 앞둔 나이지만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금식을 하며 하느님께 자신에게 직접 말씀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렇게 기도하는 중 어느 날 범상치 않은 꿈을 꾸었다.

꿈에 그는 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 방 안에는 옷걸이가 가득하고 옷걸이마다 목사님들이 예배를 인도할 때 입는 목사 가운(Gown)이 걸려 있었다. 그는 그 목사 가운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입었는데 너무 컸다. 그래서 다른 가운 하나를 다시 입어 봤는데 이번엔 너무 작았다.

그리하여 다른 가운 하나를 또 골라서 입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컸다. 그래서 또 다른 가운을 하나 골라 입었는데 이번엔 너무 작았다. 그렇게 계속 입어보았는데 자신에게 맞는 옷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담임 목사님이 들어와 자기 이름을 부르며, 당신은 이 방에 들어오면 안 되는데 왜 여기 들어왔느냐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시더라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이와 같은 꿈 이야기를 하면서 해몽을 해달라고 했다.

그가 받은 꿈은 해석이 필요 없는 의미가 명확한 꿈이었다. 신실하신 하느님은 이 꿈을 통해 ‘이중으로’ 그가 목사로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꿈의 내용을 묵상해 보자. 우선 그의 몸에 맞는 목사 가운이 한 벌도 없었고, 게다가 담임 목사님께 “들어와서는 안 될 방에 왜 들어왔느냐”고 야단까지 맞는 꿈이었다. 여기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그에게 “이 꿈은 해몽이 불필요한 꿈입니다. 하느님은 꿈을 통해 집사님은 사명자가 아니라고 이중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마십시오.”라고 권면했다.

해석이 필요한 꿈
모 신학교에서 예언적 꿈에 관해 강의한 후 한 학생이 나를 찾아와 꿈을 해석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도 역시 자신이 ‘사명자’라는 예언을 받은 적도 있고, ‘사명자’가 아니라는 예언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중년의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계속 신학을 해야 할지 혼란 가운데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었다.

그래서 이 학생도 역시 하느님께 자신에게 직접 말씀해 달라고 작정기도를 했다. 작정기도를 마친 후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신이 깊은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따더라는 것이다. 그 꿈은 뜻이 없는 꿈은 아닌 것 같고 분명히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 같은데,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나에게 해몽을 해달라고 했다.

나도 그가 받은 꿈이 예언적인 꿈이며, 그의 기도제목에 대한 성실하신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나 역시 그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전복을 따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가 바닷가로 가서 ‘수산업’을 시작하라는 계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의 언어로서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에 의지하여 하느님께 ‘지혜의 말씀’을 구했다.

마침내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초자연적인 지혜로 그가 꾼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해 줄 수 있었다. 성령께서는 내 영에 그가 꿈속에서 따던 ‘전복’은 ‘錢福’(전복)이라고 알려 주셨다. 즉 ‘돈복’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업해서 돈을 버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전복은 ‘錢福(전복)’이니, 하느님은 당신에게 ‘돈복’을 주실 것입니다. 전복은 값이 많이 나갑니다. 당신은 큰 돈을 벌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사업을 해서 물질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권면을 했다.

하느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경우는 간혹 있는 일이다. 6. 25 동란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다. 아들을 전장에 보낸 노모에게 어느날 국방부 고위간부를 알고 있다는 한 사람이 찾아와 금품을 요구하면서 전선에 있는 아들을 후방으로 빼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 낯선 사람의 말을 즉각 수락하지 않고 이 문제를 놓고 얼마간 기도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사기(사기그릇의 沙器)로 만든 토끼를 주면서 자꾸 가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노모가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자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며 묵상할 때, 순간적으로 “그것은 '사기'로 만든 토끼이니, 사기(詐欺)를 당한다는 계시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연 그 남자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돈을 갈취한 상습적 사기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그 노모에게 ‘沙器로 만든 토끼’를 통해 ‘詐欺를 당할 것’을 경고해 주셨던 것이다.

이처럼 의미가 불분명한 꿈은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면 초자연적으로 깨닫게 해 주신다. 다니엘도 기도하고 하느님이 주신 지혜로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단 2:23).

꿈을 통해 말씀하시고 교훈하시는 하느님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통로를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듣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거기에는 꿈도 포함된다. 밤중은 영적 생활의 대단히 중요한 영역이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밤중에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욥 33:14~17).

하느님은 우리가 침상에서 잠을 잘 때 꿈을 통해 말씀하시고 또 교훈하신다는 것이다. 신문의 시사만평(時事漫評)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때로는 한 컷 짜리 그림이 한 쪽 분량의 글 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지혜가 한이 없으신 하느님도 종종 ‘그림’, 곧 꿈과 환상으로 우리에게 교훈하신다.

이 꿈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교통하시는 성경적인 방법의 하나이다. 오는 세대에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꿈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성령의 일하시는 방법에 대해 알기를 원하신다.

하느님께서는 꿈을 받고 해석하는 성령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을 오늘날도 불러 모으고 계신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누구나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다!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음으로 신령한 “꿈을 꾸게” 될 것이다(욜 2:28, 행 2:17).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