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칠 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올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대하30:2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 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누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물음은 여기에 열거되고 있는 죄의 목록이 단지 대표적인 실례이며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때 훨씬 더 날카로운 문제가 된다.
하나님 나라의 도덕적 요구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일원에서 배제되는 여러 다른 부도덕에 대해서도 열거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전서에 나와 있는 음행, 우상숭배와 술 취함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을 열거하고 있다. 더러운 것, 호색, 술수, 원수를 맺는 것, 분쟁,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방탕함 등이다.
일단 우리가 바울이 열거한 내용을 전부 읽으면, 우리 가운데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을 읽은 후에 안도의 한숨을 쉰 사람들조차도 죄로 얼룩져 있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눅 18:26)라는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고린도 인들은 스스로를 기만하여 하나님의 도적적인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될 자격을 거부하는 것이다.
바울은 실제적인 도덕성을 무시하여 당당하며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까지 부추겼던 종교관에도 관심을 두었다. 그는 고린도 교인 사이에 나타난 이러한 불의의 증거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양립할 수 없는 모든 형태의 악을 비난하게 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9).
왜 그런가?
정의에 의하면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는 악의 세력의 패배로 절대적인 의가 깃든 나라이기 때문이다(고전15:21~28).
바울은 이런 비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에게 불의한 옛 삶 속에 하나님의 변화의 기운이 개입하실 것임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인간 삶의 찢기고 죄로 얼룩진 잔해들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혀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 주고 있다.
죄의 침범을 거부하는 하나님 백성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파괴적인 생활 방식에서 구원받은 죄인, 즉 기적의 산물이었다. “씻음”받은 모습은 그들의 세례를 생각나게 했으며, 동시에 이 의식이 상징하는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진 내적인 정화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음에 틀림없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 “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더 나아가 그들은 ‘거룩함’을 얻었다. 이 같은 은혜의 선언이 어디 있을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는 누구인가?
서두에서 바울이 열거한 죄로 상처를 입었으나, 그들의 상처 난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고 깨끗해져, 도래하는 주의 나라를 바라보고 성령의 능력 가운데 살면서 끊임없이 파고드는 죄의 침범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산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큐티와 일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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