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2012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믿음 갖기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9:2)



이스라엘 사회에 이러한 민화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아이를 업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짓궂은 친구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이 아이는 누구인가?” 이 말에 아버지는 “내 아들일세”라고 바로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이번에는 아이에게 묻습니다. “이 분이 네 아버지가 맞는가?” 그러자 이 아이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에요”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내려놓고 “내가 이제껏 너를 업고 왔고, 너를 키워왔는데 왜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느냐?”고 했더니 “아버지 아니고도 업고, 키우고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꼭 나를 업고 키웠다고 아버지라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 민화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입히시고 먹이시고 광야 40년을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이방신을 찾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민화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조사기관에서 “당신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80%가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믿지 못하고, 자녀를 믿지 못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불행으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건강한 사회는 신용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한 시대인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다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입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이 믿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이렇게 중요한데 왜 불신이 생기는 것입니까? 


첫 번째는 믿지 않으려고 하는 악한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고, 주님과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의지적으로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꾸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은 믿음의 또 다른 언어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믿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계속해서 속아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속아줍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믿기 때문에 속아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너무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성경이 그렇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가 너무 많습니다.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리고, 믿음이 생명이고, 믿음이 구원입니다. 이 믿음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에,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의 사랑이 돼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그런 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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