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012

눈 먼 나실인의 눈물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6)



구약시대에는 나실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또는 일생 동안 하나님께 구별되어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머리를 자르지 않음으로 구별되어 보였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 함으로 세상 즐거움에서 절제하였으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음으로 부정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나실인 규례를 갖고 살았습니다. 구약시대에 구별된 자로서의 나실인이 있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나실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도라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거룩한 백성들이 의미적으로 보면 나실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 역시 사사이자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나실인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나실인이었던 삼손이 두 눈이 뽑힌 채, 짐승들이 돌리는 맷돌을 돌리며 비참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무너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첫째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았기 때문입니다.
나실인으로 멀리해야 할 포도주에 취했고, 부정한 시체를 만지기도 했습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이 좋은 대로 결정했습니다. 말씀을 떠난 삶이 그 당시에는 좋을지 모르나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그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둘째는 괴로움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16장 16절은 삼손이 들릴라의 요청에 마음이 번뇌로 가득했다고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범죄의 자리에 있으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 마음에 번뇌와 고민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죄의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러지 못했고, 그는 결국 죄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셋째는 서서히 무너져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떠나 쾌락을 좇아 사는 그의 삶은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한번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조금씩 서서히 무너져 가게 됩니다. 뉴스에서 들리는 무너진 목회자나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한번에 무너진 것일까요? 그들은 서서히 무너져 갔던 것이고 삼손 역시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비참하게 쓰러진 삼손의 인생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삼손의 머리털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삼손은 두 눈이 뽑힌 후에 영적인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의 유혹들을 보고 넘어졌던 그는 눈이 뽑힌 후에 정말 떠야 할 눈을 떴던 것입니다. 또한 삼손은 영적 교제의 회복과 함께 그의 사명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던 블레셋 군대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는 그의 사명을 그의 죽음으로 감당했던 것입니다. 삼손과 같이 그리스도의 백성 된 성도들에게 사명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증거되기를 축복합니다.(목동제일교회 김성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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