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2009

외경 - 마카베오상(1Maccabeus) 7-9장

7장 - 데메드리오 일세의 등극
1 그런데 백 오십 일년에 셀류쿠스의 아들 데메드리오가 얼마 안되는 군대와 함께 로마를 벗어나 해안지방에 있는 어떤 도시에 상륙하여 그 곳에서 스스로 왕이라고 선포했다.
2 그가 자기 조상들의 왕궁으로 들어 가려 할 때에 그의 군대가 안티오쿠스와 리시아를 체포하여 그에게로 끌고 오려고 하였다.
3 데메드리오는 이 사실을 보고받고, “그들의 얼굴은 보기도 싫다” 라고 말하였다.
4 이 말을 듣고 그의 군대는 그 두 사람을 죽여 버렸다. 이렇게 하여 데메드리오는 그 나라의 왕좌에 올랐다.
5 그 때에 자기 민족을 반역하고 율법을 어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키모스라는 자와 함께 그를 찾아 왔다. 이자는 그들의 수령으로서 대사제직을 노리던 자였다.
6 그들은 왕에게 자기 민족을 고발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폐하의 친구들을 몰살시켰고 우리들을 고향에서 추방하였읍니다.
7 그러니 폐하께서 가장 믿으시는 분을 한 분 그리로 보내시어 유다가 우리들을 살육하고 임금님의 영토를 짓밟은 그 참상을 보게 하시고 그분으로 하여금 그 원수들과 동조자들을 모두 벌하게 해 주십시오.”
바키데스의 유다 공격
8 이 말을 듣고 왕은 자기 친구 중에서 바키데스를 뽑았다. 바키데스는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방의 영주로서 온 왕국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으며 왕의 충신이었다.
9 왕은 이스라엘 민족의 배반자 알키모스를 대사제로 임명하여 바키데스와 함께 보내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수하라고 명령하였다.
10 이렇게 하여 그들은 대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유다 땅에 도착하였다. 바키데스는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평화의 사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였다.
11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적이 대군을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평화제안을 믿지 않았다.
12 그러나 율법학자단은 알키모스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13 이스라엘 쪽에서 처음으로 화평을 제의한 사람들은 하시딤이라고 하는 경건파 사람들이었다.
14 그들은, “아론의 후예 한 사람이 사제로 군대와 함께 와 있읍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던 것이다.
15 과연 알키모스는 대표단에게 평화를 보장하며, “우리는 당신들에게나 또 당신들의 친구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맹세하였다.
16 이렇게 그들을 믿게 한 후에 알키모스는 그들 중에서 육십 명을 체포하여 그 날로 죽여 버렸다. 이 사건을 예언한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이 있다.
17 당신 성도들의 살이 사방에 흩어지고 그 피가 예루살렘 주변에 물처럼 흘러도 그들을 묻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읍니다.
18 그리하여 온 백성은 공포에 싸여 떨며 서로 말하였다. “저자들에게는 진실도 정의도 없다. 제 입으로 한 맹세도 협약도 다 깨뜨려 버렸다.”
19 바키데스는 예루살렘에서 철수하여 벳자잇으로 가서 진을 쳤다. 거기에서 그는 군대를 시켜 자기에게 귀순해 온 탈주병들과 이스라엘 백성 여럿을 잡아 죽여 깊은 우물에 넣었다.
20 바키데스는 그 지방을 알키모스에게 맡긴 다음 그를 보호하기 위한 군대를 남겨 놓고 왕에게로 돌아 갔다.
21 알키모스는 대사제로서의 위신을 지키느라고 안간힘을 썼고
22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모두 그에게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유다 땅을 지배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몹시 못되게 굴었다.
23 알키모스와 그 일당이 이방인들 이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보고
24 유다는 유다 땅을 두루 다니면서 이탈자들에게 보복하고 그들이 지방으로 돌아 다니지 못하게 했 다.
25 알키모스는 유다와 그의 군대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보고 도저히 그들에게 맞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왕에게로 돌아 가서, 유다와 그 부하들이 흉악한 자들이라고 고발하였다.
니가노르의 패배
26 이 말을 듣고 왕은 명성 높은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인 니가노르를 유다 땅으로 보내며 그 민족을 없애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니가노르는 이스라엘을 미워할 뿐 아니라 적대시해 오던 사람이었다.
27 니가노르는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거짓 평화사절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8 “우리 전쟁을 하지 맙시다. 나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당신과 만나기 위해 부하 몇 사람만 데리고 왔읍니다.”
29 이렇게 하여 니가노르는 유다가 있는 곳으로 갔고 그들은 서로 평화롭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적군은 유다를 납치해 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30 유다는 니가노르가 딴생각을 품고 자기에게 왔다는 정보를 듣고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31 니가노르는 자기의 계획이 탄로난 것을 알고 카파르살라마 부근으로 진군하여 유다와 맞서 싸웠다.
32 니가노르군은 약 오백 명이 죽었고 살아 남은 자들은 다윗의 도시로 도망쳐 갔다.
33 이 일이 있은 후에 니가노르는 시온산으로 올라 갔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와 백성의 원로들과 함께 그를 환영하고 왕을 위한 제물이라고 하면서 번제물을 보여 주었다.
34 그러나 니가노르는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거만한 말을 지껄이면서 그들에게 침을 뱉고,
35 분노를 터뜨리며 맹세하였다. “만일 유다와 그 군대를 당장 내 손에 넘겨 주지 않으면 내가 승리하고 돌아 온 후에 이 건물을 불살라 버리리라.” 말을 마치고 그는 화를 내며 떠났다.
36 사제들은 성전으로 들어 가 제단과 성소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37 “이 집은 당신께서 세워 주신 집입니다. 이 집은 당신 백성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곳이며 당신께 기도드리고 간구하는 곳입니다.
38 저자와 저자의 군대에게 원수를 갚아 주시고 한칼로 저들을 죽여 주십시오. 저들이 범한 여러 모독을 잊지 마시고 절대로 살려 두지 마십시오.”
39 니가노르는 예루살렘을 떠나 벳호론에서 진을 쳤고 거기에 시리아에서 온 원조부대가 합세했다.
40 유다는 유다대로 군사 삼천 명으로 아다사에 진을 쳤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올렸다.
41 “옛날 아시리아왕이 보낸 자들이 당신을 모독했을 때에 당신의 천사가 나타나서 적군 십 팔만 오천 명을 죽였읍니다.
42 오늘도 니가노르가 당신의 성전을 모독하는 말을 했음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의 군대를 무찔러 주십시오. 그 저지른 행실대로 저 악한 자를 다스려 주십시오.”
43 아달월 십 삼일에 양쪽 군대는 교전하였는데 니가노르군이 참패를 당하고 니가노르 자신은 그 전투에서 제일 먼저 죽었다.
44 그의 군대는 니가노르가 죽은 것을 보고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45 유다의 군대는 신호의 나팔을 불어대면서 그들을 뒤따라 아다사에서부터 게젤까지 온종일 추격하였다.
46 게다가 부근의 모든 유다 마을로부터 사람들이 나와 패잔병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그들은 되돌아 설 수밖에 없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고 모두 칼에 맞아 죽었다.
47 유다의 군대는 많은 물자를 탈취하고 전리품을 거둔 다음 니가노르의 머리와 그가 거만하게 내저었던 오른팔을 잘라 가지고 돌아 와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보는 곳에 걸어 놓았다.
48 예루살렘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그 날을 큰 명절과 같이 경축하였다.
49 그 날을 기념하여 매년 아달월 십 삼일을 경축일로 정하였다.
50 유다 땅은 그 때부터 얼마 동안 평화로왔다.

8장 - 로마인과의 맹약
1 그런데 유다는 로마인들에 관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즉, 로마 군대는 대단히 강한데 동맹을 맺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호의를 베풀고 그들과 손잡는 사람들에게는 우호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었다. 로마 군대는 과연 강하였다.
2 그는 로마 군대가 갈리아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 고울 사람들을 정복하고 속국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3 스페인 지방에 있는 금광과 은광을 뺏기 위하여 싸운 이야기도 들었다.
4 그들은 영토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빈틈없는 계획과 굴하지 않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전 영토를 잘 다스렸다. 대부분의 왕들은 매년 조공을 바쳤고 변방에서 자기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왕들이 있으면 그들을 쳐부수고 큰 타격을 주었다.
5 그리고 로마인들은 기띰왕 필립보와 페르시우스, 그리고 자기들에게 반항하여 군대를 일으킨 자들을 모두 무력으로 분쇄하고 정복하였다.
6 그뿐 아니라 코끼리 백 이십 마리와 기병, 전차, 그리고 강력한 대군을 이끌고 전쟁을 걸어 온 아시아 왕 안티오쿠스 대제를 분쇄하고
7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안티오쿠스와 그 후계자들에게 많은 조공과 인질을 바칠 것을 명령하고
8 인도 지방과 메대 지방과 리디아 지방, 그리고 그들의 영토 중에서 가장 좋은 땅을 바치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로마 군대는 그 땅을 안티오쿠스에게서 빼앗아 자기들의 왕 유미네스에게 바쳤다.
9 그리고 그리이스 사람들이 로마 사람들을 쳐서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에
10 로마인들은 이것을 알고 장군 하나를 보내어 그들과 싸우게 했다. 이 전쟁에서 그리이스 사람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아녀자들은 포로로 잡혀 갔으며 재산을 약탈당하고 그 땅은 정복되어, 요새는 다 부서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로마인들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11 그 밖에도 로마인들에게 맞서는 나라나 섬들은 모두 분쇄되었고 로마인들의 노예가 되었다.
12 그러나 그들과 친한 나라나 그들에게 의뢰하는 사람들과는 우호관계를 굳게 맺었다. 이렇게 먼 나라와 가까운 나라의 왕들을 모두 정복하였기 때문에 로마군의 이름만 들어도 모두들 무서워하였다.
13 로마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그를 도와 왕을 시킬 수가 있었고 자기들이 싫으면 왕위에서 끌어 내렸다. 이렇게 그들의 세도는 하늘까지 뻗쳤다.
14 그러나 그들 중의 아무도 왕관이나 진홍색 용포를 두르고 거만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15 그들은 원로원을 설치하고 삼백 이십 명 원로원 의원들이 매일같이 모여 쉬지 않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방도를 논의하였다.
16 원로들은 해마다 한 사람을 뽑아 그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권한과 온 제국의 통치를 맡겼다. 백성은 모두 그 한 사람에게 잘 복종하고 어느 누구도 그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사람은 없었다.
17 유다는 아코스의 손자이며 요한의 아들인 유폴레모스와, 엘르아잘의 아들 야손을 뽑아서 로마로 보내어 로마인들과 우호조약을 맺게 하였다.
18 유다는 그리이스인들이 다스리는 시리아 왕국이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으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심산이었다.
19 사절들은 아주 긴 여행 끝에 로마에 도착하여 원로원으로 들어 가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20 “우리는 마카베오라고 하는 유다와 그 형제들과 유다 나라의 온 백성이 보내서 여러분에게 왔읍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동맹을 맺고 우호조약을 맺으려고 하는 바입니다. 우리를 여러분의 동맹 우호국의 하나로 삼아 주시기 바랍니다.”
21 이 제의는 원로원 의원들의 마음에 들었다.
22 그들은 유다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어 유다인들로 하여금 우호동맹 관계를 맺은 문서를 남기게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23 “우리는 로마인과 유다인 두 민족이 바다와 육지에서 영원히 번영하기를 빈다. 두 민족에게는 전쟁이 없고 원수로서의 침략이 없을 것이다.
24 만일 로마나 그 영토에 있는 동맹국 중의 어느 하나에게라도 먼저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
25 유다 민족은 이쪽의 요청이 있으면 동맹국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참전해야 하며
26 적국에게 식량이나 무기나 돈이나 선박 등을 주거나 보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로마의 결정이다. 유다 민족은 아무런 보상을 생각하지 말고 이 협정을 지켜야 한다.
27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유다 민족에게 먼저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 로마인들은 그쪽의 요청이 있으면 동맹국으로서 기꺼이 참전해야 한다.
28 그리고 로마인들은 유다 민족을 공격하는 적국에게 식량이나 무기나 돈이나 선박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로마의 결정이다. 로마인들은 이 협정을 지킬 것이며 이 협약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29 이것이 로마인과 유다 민족 사이에 맺은 조약문이다.
30 만일 이 조약이 발효한 후 양쪽이 여기에 무엇을 첨가하거나 삭제하려 할 때에는 양쪽의 합의하에 그렇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첨가하거나 삭제한 것도 조약의 효력을 갖는다.”
31 로마인들은 이 조약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시리아 왕 데메드리오가 당신들에게 가했다는 악행에 대해서 우리들은 벌써 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어찌하여 그대는 우리의 우방이며 동맹국인 유다인들에게 가혹한 속박을 가했는가?
32 만일 유다인들이 그대의 잘못을 또다시 고발해 온다면 우리는 단연코 그들의 권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그대와 싸울 것이다.'”

9장 - 베레아 전투
1 데메드리오왕은 니가노르가 전장에서 죽고 그 군대는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키데스와 알키모스를 다시 유다 땅으로 보내어 오른쪽 진영을 담당한 정병을 인솔하게 했다.
2 그래서 그들은 갈릴래아로 통하는 길로 진군하여 아르벨라 지방의 메살롯을 향해 진을 쳤다. 그리고 그 지방을 점령한 후 많은 사람을 살육하였다.
3 셀류싯 왕조 백 오십 이년 정월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진을 쳤다가
4 보병 이만과 기병 이천을 거느리고 그 곳을 출발하여 베레아로 향하였다.
5 그 때 벌써 유다는 정예병력 삼천을 데리고 엘라사에 진을 치고 있었다.
6 그들은 적군의 수효가 많은 것을 보고 몹시 무서워하여 많은 자들이 진영을 탈출, 남은 병력은 불과 팔백 명뿐이었다.
7 싸움이 임박한 마당에 많은 병사들이 탈출한 것을 안 유다는 병력을 다시 모을 만한 시간이 없었으므로 기가 죽었다.
8 유다는 몹시 낙담되었으나 “용기를 내어라. 혹시 우리가 그들과 맞서서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적을 향해 돌진하자” 하고 남은 자들을 격려하였다.
9 그러나 부하들은 유다의 생각을 돌이키려고,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목숨을아껴 두었다가 동포들과 다시 와서 싸우도록 합시다. 지금 우리는 수효가 너무나 적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래도 유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적군을 보고 도망가다니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죽어야 할 때가 왔다면 우리 동포를 위해서 용감하게 죽자. 우리의 명예를 더럽힐 만한 일은 조금도 남기지 말자.”
유다의 전사
11 그 때에 적군은 진지를 떠나 유다의 군대와 맞서 싸우려고 진격해 왔다. 그들의 기병대는 두 부대로 나뉘었고 투석부대와 활쏘는 부대와 특전대들이 모두 다투어 선봉을 섰다.
12 바키데스는 군대 오른쪽에 서 있었고 주력부대는 나팔을 불면서 군대 양측면에서 진격해 나왔다. 유다가 인솔하는 군대도 나팔을 불었다.
13 양쪽에서 터진 고함소리로 온 땅이 진동하였고 전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14 유다는 바키데스와 그 군대의 주력이 진영 오른쪽에 있는 것을 보고 자기 주위에 몰려 든 용감한 군사들과 함께
15 적군의 오른쪽을 분쇄하여 아조토산까지 그들을 추격해 갔다.
16 왼쪽 진영에 있던 적군은 자기 진영의 오른쪽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공격 방향을 바꾸어 유다와 그 군대의 배후를 찔렀다.
17 전투는 격렬하게 되어 양군이 모두 많은 사상자를 냈다.
18 이 전투에서 유다가 전사하였고 그의 부하들은 도망쳤다.
유다의 장례
19 유다의 형제 요나단과 시몬은 유다의 시체를 거두어 모데인에 있는 선조들의 묘지에 묻었다.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몹시 울었다. 그들은 여러 날 동안 통곡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21 “이스라엘을 구출한 영웅이 죽다니 웬일인가” 하고 울부짖었다.
22 유다의 행적과 그가 치른 전쟁과 그의 빛나는 공적과 위대한 명성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23 유다가 죽은 후 이스라엘 전 영토에서 율법을 저버린 자들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였고 악을 일삼는 자들이 사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4 게다가 때마침 큰 기근이 있어 온 나라가 그들 수중에 넘어가고 말았다.
25 바키데스는 이스라엘 민족의 반역자들을 뽑아 각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26 그들은 유다의 편이었던 사람을 찾아 내어 바키데스에게 데리고 갔다. 바키데스는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보복하였다.
27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이 자취를 감춘 후 처음 맛보는 무서운 압박을 받게 되었다.
28 그리하여 유다의 동지들이 모두 모여 요나단에게 말하였다.
29 “당신의 형 유다가 죽은 후로 유다처럼 바키데스나 우리 민족을 증오하는 자들 같은 원수들을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30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전쟁을 완수하기 위해 유다 대신으로 당신을 뽑아 우리를 영도하는 지도자로 삼았읍니다.”
31 그 때부터 요나단은 유다 민족의 영도권을 잡고 자기 형 유다의 후계자가 되었다.
요나단과 바키데스의 전투
32 바키데스는 이 사실을 알고 요나단을 없애 버리려 하였다.
33 그러나 요나단과 그의 형 시몬, 그리고 그의 모든 동지들은 그 계획을 알고 드고아 광야로 후퇴하여 아스팔못 가에 진을 쳤다.
34 바키데스는 그 날이 안식일인 것을 알고 군대를 이끌고 요르단을 건넜다.
35 요나단은 민중을 맡아 다스리는 자기 형 요한을 동지인 나바테야 사람들에게 보내어 유다인들의 짐을 맡아 보관해 달라고 청하게 했다.
36 그런데 메드바 지방의 얌브리 사람들이 나타나 요한을 잡고, 그가 가지고 가던 물건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37 이 일이 있은 후 얌브리 사람들에게 큰 결혼식이 있었는데 요나단과 그의 형 시몬은 그들이 가나안의 한 귀족의 딸인 신부를 데리고 성대한 행렬을 지어 나다밧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38 그래서 요나단 형제는 자기들의 형 요한의 죽음을 생각하고 산으로 올라 가 숨어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39 마침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많은 짐을 지고 가는 행렬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신랑과 그의 친구들과 그의 형제들이 악사들과 가수들과 무장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신부 일행을 맞으러 나오고 있었다.
40 잠복해 있던 요나단 형제는 달려들어 그들을 죽여 버렸다. 적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살아 남은 자들은 산으로 도망쳐 버렸다. 거기에서 유다인들은 얌브리인의 물건을 모두 전리품으로 차지하였다.
41 그리하여 그 결혼식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들의 음악소리는 통곡소리로 변하게 되었다.
42 이렇게 요나단 형제는 자기들 형의 원수를 갚고 돌아 와 요르단강 가의 습지에 이르렀다.
43 이 소식을 들은 바키데스는 안식일을 골라 큰 군대를 거느리고 요르단강 가에 도착하였다.
44 그 때에 요나단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이제 힘써 싸워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의 형편은 어제나 그제와는 같지 않다.
45 보아라.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싸울 수밖에 없다. 우리 뒤에는 요르단강이 가로 막혔고 좌우에는 습지와 숲이 둘러 있으니 비켜 나갈 길이 없다.
46 원수의 손에서 구출해 달라고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자.”
47 전투가 시작되자 요나단은 칼을 뽑아 들고 바키데스를 치려 했다. 그러나 바키데스는 물러서며 그의 칼을 피하였다.
48 그 때에 요나단과 그의 일행은 요르단강을 헤엄쳐 건너편으로 갔다. 그러나 적군은 요르단강을 건너서까지 그들을 추격해 오지는 않았다.
49 그 날에 바키데스군에서 죽은 사람은 천 명에 달하였다.
50 예루살렘에 돌아 온 바키데스는 예리고, 엠마오, 벳호론, 베델, 딤나다, 바라돈, 데폰 등 유다 도시들을 요새화하여 높은 성으로 쌓고 대문을 만들어 세워 빗장으로 단단히 잠갔다.
51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을 대항하여 싸울 수비병을 세워 놓았다.
52 그뿐 아니라 벳술과 게젤, 예루살렘의 요새를 더욱 견고하게 하여 거기에다가 군대를 배치하고 식량을 쌓아 놓았다.
53 그리고는 그 지방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잡아다가 예루살렘 요새 안의 감옥에 감금해 놓았다.
알키모스의 죽음
54 셀류싯 왕조 백 오십 삼년 이월에 알키모스는 성소 내전의 벽을 헐라고 명령하였다. 예언자들의 업적을 없애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벽을 헐기 시작했을 때에
55 알키모스가 갑자기 졸도하여 작업이 중단되었다. 그는 입이 마비되고 혀가 굳어져서 한 마디도 말할 수 없었으며, 가사에 관해서도 한 마디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56 알키모스는 심한 고통 끝에 마침내 죽었다.
57 알키모스의 이와 같은 죽음을 본 바키데스는 왕에게로 돌아 가 버렸다. 그 후 이 년 동안 유다 땅은 평온하였다.
벳바시의 공략
58 율법을 저버린 자들이 모두 모여 모의를 하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요나단과 그 일당이 태평세월을 즐기고 있지 않소? 그러니 바키데스를 다시 모셔 옵시다. 그러면 하룻밤 사이에 저들을 모두 붙잡을 수 있을 것이오.”
59 이렇게 모의를 하고 그들은 바키데스에게 가서 일을 의논하였다.
60 바키데스는 대군을 이끌고 떠나면서 유다에 있는 자기의 모든 동맹원들에게 비밀편지를 보내어 요나단과 그의 부하들을 잡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탄로되어 일은 실패로 끝났다.
61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흉악한 음모의 주동자들이었던 유다 사람 약 오십 명을 잡아 죽였다.
62 그리고 요나단과 시몬은 그 부하들과 함께 광야에 있는 벳바시로 물러가 전에 파괴된 곳을 수축하고 그 곳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63 바키데스는 이것을 알고 유다 지방에 있는 자기 편에 호응을 청하고는 전 군대를 소집,
64 진군하여 벳바시를 향해 진을 쳤다. 성을 공격하는 기구를 만들고 여러 날 성을 공격하였다.
65 요나단은 자기 형 시몬을 그 성에 남겨 놓고 얼마 안 되는 병력을 이끌고 시골로 떠났다.
66 그는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오도메라와 그 형제들 그리고 바시론 가문의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그들도 요나단의 군대에 합세하여 쳐올라 가기 시작했다.
67 한편 시몬과 그의 군대는 성에서 나와 성을 공략하는 적군의 기구를 불살라 버렸다.
68 이렇게 양면에서 바키데스를 공격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전과 공격은 수포로 돌아 가 바키데스는 대패하여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69 그래서 바키데스는 유다 사람들을 치자고 권유했던 악한들에게 크게 화를 내어 그들을 많이 죽이고 자기 나라로 돌아 갈 결심을 하였다.
70 이 사실을 안 요나단은 사신을 보내어 바키데스에게 화평을 맺고 포로를 돌려 보내 달라고 했다.
71 바키데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대로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 있는 한 요나단에게 절대로 해악을 끼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72 전에 유다 땅에서 잡아 온 포로들을 놓아 주었다. 그 후에 바키데스는 자기 땅으로 돌아 가 다시는 유다인들의 땅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73 이스라엘에 다시는 전쟁이 없었으며 요나단은 미그맛에 자리를 잡고 백성을 다스리며 이스라엘 민족 반역자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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