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의 -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먼저 개별적으로 살펴본 후 연관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란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과 같은 계시의 은사를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특정한 문제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릴까에 대한 슬기나 지혜를 말한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는 기지나 슬기를 제공한다. 몇 가지 정의를 보자.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어진 계시(지식의 말씀, 예언)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필요에 어떻게 가장 잘 적용될 것인가, 또한 어떤 주어진 상황이나 필요가 어떻게 해결되거나 도움을 받거나 치유될 것인가에 대한 즉각적인 통찰력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이다(David Pytches).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인데, 그들은 이를 통해 성령의 마음을 잘 알아서 주어진 지식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필요들을 위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통찰력을 얻는다( C. Peter Wagner).
2.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설교의 은사 - 한편 일부에서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지혜의 말씀은 설교하는 은사, 지식의 말씀은 가르치는 은사로 이해한다.
고린도전서 문맥으로 볼 때, 복음은 세상 지식이나 지혜와 비교하여 훨씬 더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기 때문에(고전 2:1-2, 4-5), 이 은사는 지식의 은사와 더불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과 관계된 은사라는 주장이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이 은사들은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나타남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관련된 은사들이다. 즉 기적행하는 9가지 은사들은 모두 즉흥성, 일시성, 상황성이 강한 은사들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력이나 준비를 하여 행하는 설교나 가르침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바비 클린톤도 이런 견해를 지지한다. -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으로 불리는 이 은사들은 은사들이 기록되어 있는 다른 구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 은사들에 대한 직접적인 명령이나 이런 은사들을 예증하는 직접적인 구절들도 없다. 몇몇 가능성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 . . 이 두 가지 은사는 ". . . 의 말씀"이라는 공통적인 구(句)로 인해 기능이 유사하므로 같이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 . .
지혜와 지식이란 단어 앞에(원문에는 앞에 있음) 로고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 은사들은 성령이 그 순간에 주시는 상황적인 교신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 지식이 많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특정한 상황을 위해 지식이나 지혜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말씀"(a word)을 말한다."
따라서 클린턴은 지혜의 말씀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혜의 말씀은 주어진 상황에서 성령의 마음을 알고, 그 상황, 사실, 진리 및 상황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실과 진리의 적용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어떤 능력을 말한다. <구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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