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가?
가. 사랑의 동기로 사용해야 한다. - 특히 기적행하는 은사는 은사자를 교만하게 만들기 쉽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사를 뽐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겨 교회에 갈등을 초래했다.
성령이 은사를 주신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개인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에서는 은사의 종류를 말한 후에 고전 13장에서는 은사를 사용하는 동기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한다(고전 13:1-3).
많은 사람들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사랑이 최고의 은사이므로 사랑의 은사를 구할 것을 강조하면서 기적행하는 은사를 구하지 않는 것을 은근히 정당화한다. 더 좋은 사랑의 은사가 있는데 보다 못한 기적행하는 은사를 굳이 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랑은 은사가 아니라 으뜸 되는 계명이자(마 22:37-40), 성령의 열매(갈 5:22)이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할 것을 강조한 후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동기로 은사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고전 13장 1-3절이 이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아무리 뛰어난 은사가 있더라도 사랑의 동기에 의해 사용하지 않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같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은사가 조금 있다고 하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마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인양 착각하고,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 교만한 사람들을 볼 때 "은사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랑이 있어야지"라는 말을 자주한다. 고전 12장 31절은 바로 이런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전 12, 13, 14장이 카이애스틱(역평행)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성경은 자주 강조하는 것을 중간에 위치시키고 그 주변에 비슷한 것을 포진시킨다. 이런 모습이 헬라어 카이(K)와 같다고 하여 카이애스틱 구조라고 한다.
12장 은사들의 종류(a)
13장 사랑 장(b)
14장 은사의 사용 방법(a")
모든 은사는 사랑의 동기에 의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은사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요,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고전 13:1-3), 오히려 소리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같이 말썽만 일으킨다. 그러나 은사의 오남용이 은사를 배격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 믿음의 분량대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
기적행하는 은사가 많은 말썽을 부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은사는 신앙의 성숙도와는 상관이 없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성숙치 못한 사람들이 우쭐대면서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은 특히 겸손과 지혜의 신앙인격을 다듬어 가야한다.
다. 보다 못한 은사를 가진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고전 12:22).
라. 최선을 다해서 사용해야 한다(마 25-14-30의 달란트 비유 참조).
은사를 많이 받았든 적게 받았든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가. 사랑의 동기로 사용해야 한다. - 특히 기적행하는 은사는 은사자를 교만하게 만들기 쉽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사를 뽐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겨 교회에 갈등을 초래했다.
성령이 은사를 주신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개인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에서는 은사의 종류를 말한 후에 고전 13장에서는 은사를 사용하는 동기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한다(고전 13:1-3).
많은 사람들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사랑이 최고의 은사이므로 사랑의 은사를 구할 것을 강조하면서 기적행하는 은사를 구하지 않는 것을 은근히 정당화한다. 더 좋은 사랑의 은사가 있는데 보다 못한 기적행하는 은사를 굳이 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랑은 은사가 아니라 으뜸 되는 계명이자(마 22:37-40), 성령의 열매(갈 5:22)이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할 것을 강조한 후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동기로 은사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고전 13장 1-3절이 이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아무리 뛰어난 은사가 있더라도 사랑의 동기에 의해 사용하지 않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같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은사가 조금 있다고 하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마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인양 착각하고,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 교만한 사람들을 볼 때 "은사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랑이 있어야지"라는 말을 자주한다. 고전 12장 31절은 바로 이런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전 12, 13, 14장이 카이애스틱(역평행)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성경은 자주 강조하는 것을 중간에 위치시키고 그 주변에 비슷한 것을 포진시킨다. 이런 모습이 헬라어 카이(K)와 같다고 하여 카이애스틱 구조라고 한다.
12장 은사들의 종류(a)
13장 사랑 장(b)
14장 은사의 사용 방법(a")
모든 은사는 사랑의 동기에 의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은사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요,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고전 13:1-3), 오히려 소리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같이 말썽만 일으킨다. 그러나 은사의 오남용이 은사를 배격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 믿음의 분량대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
기적행하는 은사가 많은 말썽을 부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은사는 신앙의 성숙도와는 상관이 없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성숙치 못한 사람들이 우쭐대면서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은 특히 겸손과 지혜의 신앙인격을 다듬어 가야한다.
다. 보다 못한 은사를 가진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고전 12:22).
라. 최선을 다해서 사용해야 한다(마 25-14-30의 달란트 비유 참조).
어떤 사람은 "교단에서 그런 은사를 좋아하지 않아서" "교회에서 그런 은사를 좋아하지 않아서"라면서 이미 받은 은사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묻어둔다.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묻어 두면 예수님의 책망을 면치 못한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26-30).
한편 다섯 달란트를 받아 세 달란트를 남긴 사람은 비록 절대적인 수는 많지만 받은 은사에 합당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세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두 牝聰??남겼다면 예수님은 두 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을 칭찬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받은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럴 때 예수님은 더 많은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
특별히 기적행하는 은사는 사람들의 눈치와 압력, 목회자라면 교인들과 상회의 눈치로 인해 쉬쉬하거나 묻어두어서 소멸시키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을 사람의 눈치에 때문에 사장하거나 소홀히 취급하면 있는 것도 빼앗아가시고 담대하게 사용하면 더해주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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