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려지 아니하시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세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요엘2:13-14)
A. 요엘은 백성들에게 왜 이 일을 해야 하며 이 일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대해 5가지 이유를 들면서 하나님께 돌아올 것에 대해 설교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며, 재앙을 내리는 것으로부터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주시기 원하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회개 가운데 마음을 찢으며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만일 우리가 주를 향해 한 발자국을 나간다면, 주님은 우리를 향해 열 발자국을 다가오실 것이다.
B.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기 때문이다. 이는 주님이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평가하는 것과 다르게 우리를 바라보신다는 의미이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시103:14). 그는 가혹한 군대 장관과 같은 분도 아니시며, 어떤 종류의 연약함도 허락하지 않는 화가 난 코치 같은 분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시는 방법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호의적이며 친절하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우리의 연약함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요일5:3; 마11:30).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구원할 길을 나시는 은혜로우시고 친절한 분이심을 이해하지 못해서 주님께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잃어버린 양을 도우시는 목자와 같이 도우실 것이고, 우리를 해결과 승리의 자리로 이끄실 것이다(눅15장)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시103:10)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4)
C.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심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좋아하시는 일 중의 하나는, 그의 백성들이 주님의 끊임없는 자비하심에 대해서 주님께 드리는 반응과 자신의 마음의 표현을 바라보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매번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신다. 우리는 이내 주와 같은 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7:18)
D.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악인의 죽는 것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겔33:11). 주님은 그들의 자유의지와 주님의 공의가 허락하는 한 그들을 용서할 길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쉽게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나......”(겔33:11)
E. 예수께서는 자신의 큰 인내에 대해 두아디라 교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들의 부도덕에 대해 히개할 시간을 주셨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행하신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계2:20-22)
F. 이와 같은 노하기를 더디 하심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땅을 후사로 받는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도 볼 수 있다(창15:16).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전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하셨다. 먼저 그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잡혀 있어야 했고, 그 후 여호수아의 리더십 아래에서 마침내 약속된 땅을 상속받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기한이 오래 걸린 이유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었던 아모리 족속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들의 죄는 아직 관영치(완전히 가득하지) 않았고, 그 후 400년이 다 되어서야 가득 차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공의를 반하는 어떤 일도 하기를 원치 않으셨고, 노하기를 더디 하심으로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셨다. 주님은 그들이 결국 주께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셨지만, 그들을 향한 주의 은혜와 자비하심을 저버리는 데 있어 정점에 이르기 전까지 공의의 칼날로 내려치지 않으셨다. 나는 아브라함이 “우리가 그 기간을 300년으로 줄일 순 없을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시다.
G. 네 번재로, 주님은 인애가 크신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애하심을 신뢰할 때, 우리는 확신 가운데 방해하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온전한 회개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삶에 있는 모든 죄악에 대해 알고 계시기에, 우리의 죄 때문에 충격을 받지 않으신다. 요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독려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크신 인애”로 가득 차 계시지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준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롬2;4)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18:35)
H. 주님은 “나는 인애하므로, 내가 너희 어제의 과오를 오늘 깨끗이 씻어 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돕기 원하는 인애한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애하심(kindness)을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I. 다섯 번째로, 주님은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심판으로부터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주의 백성들이 회개할 때, 그 지역에 축복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그의 마음을 무작위로 돌이키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의 공의의 범위 안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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