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에 이르는 문을 여는 얼쇠는 바로 형성하는 훈련이며 그것에 의해서, 훈련된 자들은 공의와 펴안의 추수를 거두며 주님의 임재의 기쁨 안에서 동행한다.
형성하는 훈련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할 또 다른 한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히브리서 12장 7절에서 우리에게 "훈련으로서 고난을 인내하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들과 같이 대우하시니라" 라고 교훈하신 바로 그 실체다. 성과 위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만약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한다면 모든 일들이 우리를 위해서 잘 되어 갈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이것은 이해하기에 힘든 구절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잘못해서 점수를 잃지 않는 한 고난은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은 하며 이러한 인식은 믿음에 관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가르침에 대한 어떤 그릇된 접근에 의해서 야기되어 왔다. 이러한 접근들은 만약 우리가 적당한 신앙이 있고 올바른 일을 말하고 행한다면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천국이 될 것이며 초록색 신호등만 켜 있는 낙원이며 가시 없는 장미꽃 들이요, 물질을 획득하며 영적인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재안한다.
삶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의 한 가지 문제는 그것이 성경의 전체적인 의도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고난은 고침 받아야만 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교정하고 지적하기 위해서만 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배웠다. 또한 고난은 신실하고 순종적인 아들들과 딸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게 하고 그들을 주목하는 세상에게 신실함과 순종함을 나타내려고 오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7절이 오직 교정하는 훈련(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제 11장에서 다룰 것이다)으로 해석되는 반면에, 야고보서 1장 2-4절까지의 구절은 고난의 축복을 입증하며 형성하는 훈련을 언급한다는 사실에는 착오가 없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들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2절에서 '시험들'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로 '페이라로스(peiramos)'인데 스트롱 용어 색인(Strong's Concordance)에는 '실험에 의해서, 악의 경험에 의해서, 암시에 의해서, 역경에 의해서 증명되기 위하여 집어 넣어지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3절에서 '시련'이라고 번역된 원래의 단어는 '도키미온'(dokimio)으로서, '조사하는 혹은 시험해보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 구절들에서 시험에 처해지게 된 것이란 바로 신앙 그 자체이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우리로 하여금 만약 우리에게 적당한 신앙이 있다면 우리는 전혀 시험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살피고 성장해 온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서이며, 그것이 여러 가지 압박 아래에서 견딜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
이사야 64장 8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생동감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치 토기장이의 손에 들려진 진흙과도 같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뜻대로 빚으시고 만드신다. 그러고 나면 어떤 토기장이라도 다 알고 있듯이 그 새로 빚은 토기는 불 속에 넣어져서 그것의 가치를 증명하게 된다. 이것은 어떤 흠이 있는지와 완성된 그릇으로서 토기장이 집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 그릇의 숙련된 형성은 불의 필요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불로 인해서 그릇이 가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에 대한 최고의 예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다니엘과 세 명의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니엘 3장에는 이들 세 명의 남자에 관한 그들의 삶 속에 죄나 혹은 신앙의 결핍에 관해서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유다의 식민지 기간 동안 바벨론에서 살면서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이들의 이름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이름으로 바뀐다)와 다니엘은 그들의 삶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가장 뛰어나고 명석한 자들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들은 너무나도 신실하여 그 이방 왕이 그들의 충절을 요구할 때 풀무불 속에서 죽게 될 것을 훤히 알면서도 거절한다. 그들의 결정이 도전 받았을 때, 그 세 명의 젊은이들은 왕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이유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력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하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6-18).
왕은 분이 가득하여 풀무불을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고 젊은이들을 풀무불 속으로 집어 던지게 했다. 그 불이 너무나도 강하여 청년들을 데리고 갔던 종들이 그 과정에서 불에 타서 죽고 말았다. 하지만,그 안에는 그 세 사람만이 아니라 '신의 아들'과 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나서 불꽃 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의 신실함은 그들을 시험의 범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신실함은 바로 시험의 한복판에서 드러났던 것이다!
고난은 우리의 아들로서의 신분을 실제적인 것 그대로 제시하며, 우리의 신실함을 바로 그것의 실질적인 상태에서 드러낸다. 만약 불이 그릇에서 흠을 드러낸다면 토기장이는 그것을 다시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땅의 토기장이와는 달리 우리의 아버지이신 우두머리 토기장이께서는 그 흠 있는 그릇을 버리지 않으시고 자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부드럽게 하시며 우리의 가치로움이 보일 때가지 우리를 다시 고쳐 만드신다.
예수님은 물론 이 실체에 대한 신약의 모델이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분의 신분이 고난에 의해서 증명된 사실은 히브리서 5장에 나타나 있다. 본문을 읽어보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함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울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위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구원이 되시고"(히5:7-9)
예수님의 죽으심은 바로 고난의 경험이었으며, 스스로 순종을 배우심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을 구원의 근원이 되게 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예수님께서 순종적이지 않다거나 아니면 그분께서 구원의 근원이 아니시기라도 하다는 것을 뜻하는가? 물론 아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기반이 생기기도 전부터 언제나 순종적이셨으며 또한 언제나 구원의 근원이셨다. 본문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신분이 증명되고 질문 받지 않도록 예수님의 순종하심은 실제적인 고난의 배경에서 보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행하신다. 하나님은 시험이 오는 것을 허락하시며 그것은 우리가 신실할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당시에 있는 우리의 필요성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에 자신의 능력과 사랑에 있어서 확신하신다. 고난을 향한 사도 바울의 태도를 생각해 보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아버지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방침(The Father's testing Policy)
우리는 시험을 통과함으로 우리가 성령님의 능력에 의해서 신실하게 되었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온전한 상속을 확증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시험 도중에 무너진다면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미숙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붙잡아 주시고, 안위하시고, 다음 번 증명을 위해서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그분의 사랑과 회복을 경험할 것이다.우리는 그것들에 의해서 격려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시험하시고 증명하시는 방침은 곧 '실패하려고 해도 실패할 수 없는 방침'인 것이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책을 펴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시험'을 주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언제라도 성경구절을 펴서 역사 속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조사된 다른 성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시험 기간 동안 우리가 친구들과 말하는 것을 허락하시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가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것을 허락하시며 만약 우리가 기꺼이 신뢰하고 기다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대답을 공급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은 우리가 합격할 때까지 시험을 치르도록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시험 방침은 그야말로 낙방하려고 해도 낙방할 수 없는 방침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방법이시며 그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들과 함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여러분이 환난들과 시련들을 직면할 것을 요구 받을 때 마음에 압도당하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처럼 대우하신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 시련 속으로 들어설 때, 그분의 아들인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동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시험을 모두 마쳤을 때에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이 여러분 안에 온전히 형성될 것이며,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러분의 상속에 대한 온전한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컴 투 파파/게리 윈스/순전한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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