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2010

죄의 고백 – 토마스 왓슨

죄의 고백이 올바르고 진실하기 위해서 다음 8가지 조건들이 필수적이다.

1. 자발적 고백이어야 한다.
죄에 대한 고백은 샘에서 물이 나오듯 자유롭게 나와야 한다. 악한 자의 고백은 견디게 괴로운 사람의 실토처럼 억지 고백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이 그들의 양심 속에 날아들거나 또는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 그들은 자백하기 시작할 것이다. 발람은 천사의 빼든 칼을 보고서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22;34)라고 말할 있었다. 그렇지만 참다운 고백은 몰약이 행나무에서 떨어지듯 또는 꿀이 벌집에서 떨어지듯 입술에서 자유롭게 떨어진다. 탕자는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15:18)라고 하여 아버지가 자기에게 죄를 정하기 전에 먼저 자기 죄를 고백하였다.

2. 양심의 가책으로 고백해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깊이 죄를 분개해야 한다. 자연인의 고백은 물이 파이프를 통해 흐르듯 사람을 통해 지나갈 뿐이며 사람을 조금도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참다운 고백은 사람에게 상한 심령의 감동을 남긴다. 다윗의 영혼은 자기 죄를 고백할 무거운 짐에 눌려서 무거운 같으니 감당할 없나이다”(38:4)라고 하였다. 죄를 고백한다는 것과 죄를 느낀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3. 중심에서 우러나온 고백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고백과 동행해야 한다. 위선자는 죄를 고백하면서도 죄를 사랑한다. 마치 도둑이 물건 훔친 것을 고백하면서도 도둑질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만과 탐욕을 자기들 입술로는 고백하면서도 밑에서 죄를 하는가! 어거스틴은 회심 전에는 죄를 고백하고 죄를 이길 능력을 간구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내면으로부터 아직 아닙니다, 주여라고 속삭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죄를 너무 속히 떠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보다 정직하며, 그의 마음은 그의 혀와 보조를 맞춘다. 그는 자기가 고백하는 죄를 깨닫고 있으며 자기가 깨달은 죄를 혐오한다.

4. 죄를 상세히 열거하는 고백이어야 한다.
악한 사람은 자기가 일반적으로 죄인인 점을 인정한다. 그는 도매금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백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많이 닮아 내가 꿈을 꾸고”(2:3)라고는 하는데, 정작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몰라 내가 명령을 내쳤나니”(2:5)라고만 한다.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은 주여,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라고 말하지만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기억해 내지도 못하는 반면, 참다운 회심자는 자기의 세부적인 죄를 시인한다. 부상당한 사람이 외과의사에게 와서 자기의 모든 상처를 보여주며, “여기 머리를 다쳤습니다. 어기 팔에 총을 맞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애통하는 죄인은 자기 영혼의 이상 증세를 가지 고백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기 자신들에 대한 세부적인 고발장을 작성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10:10)라고 하였다. 선지자는 죄로 인해 저주를 초래한 바로 죄를 열거하여 우리가 주의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9:6)라고 하였다. 부지런히 우리 마음속을 검사해 보면 탐닉해 있는 어떤 특정 죄를 발견할지도 모르니, 눈물로 죄를 꼬집어 아뢰어야 한다.

5. 근원적인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는 자기 성품의 오염을 시인한다. 우리의 성품의 죄는 선의 박탈일 아니라 악의 주입이기도 하다. 이것은 철의 부식 또는 법복에 있는 얼룩과도 같다. 다윗은 자기의 타고난 죄를 시인하며 말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하였다. 우리는 대개 처음 짓게 되는 많은 죄들을 사탄의 유혹 때문이라고 하며 책임을 회피하곤 하지만, 우리의 이런 죄의 성품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것을 사탄에게 전가시킬 없다. 우리는 내면적으로 쓸개와 쑥이 맺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29:18).

우리의 성품은 모든 악의 나락과 온상이며, 여기로부터 세상에 만연하는 비리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거룩한 일들에 해독을 끼지는 성품의 부패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태어날 때부터 긍휼을 입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 죄를 근원에서부터 고백하라!

6. 죄는 모든 전후사정이 가중죄와 함께 고백되어야 한다.
복음의 범위 안에서 범해진 저들 죄들은 틀림없이 속속들이 염색되어 있다. 지식을 거슬러, 은혜를 거슬러, 맹세를 거슬러, 경험들을 거슬러, 심판을 거슬러 지은 죄들을 고백하라.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엎드러뜨리셨도다 그럴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78:31-32)라고 하였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죄를 심화시키고 강화시키는 치명적인 가중죄들이다.

7. 죄를 고백할 자신을 고발함이 하나님께는 변호가 되도록 해야 한다.
주님의 섭리가 혹독하고 주께서 묻음 칼을 뽑으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게 혐의가 없다고 해야 되고 그가 우리에게 부당 대우를 하지 않으셨다고 인정해야 된다. 느헤미야는 자기 죄를 고백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변호하여 말하기를 그러나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9:33)라고 하였다. 아무리터우스(로마의 황제, 포카스가 다음의 황제가 ) 자기 아내가 자기 눈앞에서 포카스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부르짖기를 주여, 당신은 당신의 모든 길에 의로우십니다라고 하였다.

8. 그런 죄들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죄를 고백해야 한다.
죄를 고백하는 것과 죄를 범하는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마치 페르시아인들이 일년 하루는 뱀들을 죽이고 그날 이후에는 다시 뱀들이 우글거리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이 자백할 때에는 자기들의 죄를 죽이는 같다가도 후에는 죄가 여느 때보다 급속히 자라나도록 놔두는 것이다.

악행을 그치고”(1:16)라고 하였다. “우리가 행하지 말았어야 일들을 행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서는 여전히 계속 그렇게 행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바로도 가지가 범죄하였노라고 고백하였지만(9:27), 천둥이 그치자 다시 자기의 죄에 빠졌다.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니”(9:34), 오레겐(초기 그리스 교부 사람으로 254년에 사망) 자백을 가리켜 양심이 자기를 누르는 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영혼의 구토(舊土)라고 말한다. 그릴진대 우리는 자백으로 죄를 토해버리고 후에는 토한 것에 되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자기의 반역죄를 고백하고 나서 새로운 반역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어떤 왕이 용서하겠는가.

<회개/토마스 왓슨/C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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