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동사 "아바드(ybd)"는 "일하다"는 뜻이다. 동시에 "섬기다, 예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명사형 "에베드(ybd)"는 "종, 노예, 일군"이라는 뜻과 아울러 "예배하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다른 명사형 "아보다"는 "노동, 일"이라는 뜻과 "예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하는 것이 어떻게 예배한다는 개념을 함께 갖게 되었을까? 일하는 것이 곧 예배인 이 오묘한 일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대시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면 아마도 당시에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들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왕족과 귀족들은 일하지 않았을 테고 대부분 직접 일하는 사람들은 왕과 귀족을 섬기는 노예, 하인들이었을 것이다. 자영농이 있었다고 해도 오늘날과 같은 동등한 자유로운 신분보다는 왕과 귀족들에게 자신들의 안녕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무척이나 종속적인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일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왕이나 귀족을 섬기는 일이 된다. 그러기에 일하는 것은 곧 섬기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일게다. 나아가 그 섬김이 왕을 위한 것이라면 왕을 신의 대리자로 여기던 시대에 왕을 섬기는 것은 곧 신을 섬기는 것, 예배하는 행위가 된다. 히브리인들에게 이 신은 하나님이었고, 나아가 결국 일하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행위였다.
오늘날 우리는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구분한다. 어려서 주일학교에서 불렀던 찬송이 기억난다. "월화수목금토 엿새동안에는 나를 위해 일하고, 복주시는 주일 하나님의 날은 주를 위해 일하세."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구분했다. 그리고 열심히 구별된 날들 동안 주를 섬겼다. 그러나 이 성과 속의 구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행하는 우리의 일을 "거룩"으로부터 구별시켰다. 나아가 어떤 경우 이 일들은 그리스도인이지만 어쩔 수 없이 행해도 괜챦은 세속의 일로까지 여겨졌다.
종교개혁 시대에 마틴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론은 바로 성경 속의 일과 예배의 일치됨을 재발견한 중대한 사건이다. 세속의 일과 성직을 구분하던 시대에 루터는 모든 사람들이 성직자임을 천명하였다. 모든 사람이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은 그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이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그 일 자체가 예배가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래서 직업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vocation은 "부르심(부르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보카치오(vocacio)"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통로이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업은 "소명"이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상을 가졌던 우리의 조상들은 이러한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 말에 "천직"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내린 직업이란 뜻인데, 소명, 부르심의 개념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일과 예배의 하나됨, 일치, 천직 개념의 회복, 부르심의 재발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 직업은 돈버는 방법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혹은 직업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우리 시대에 회복해야 할 개념은 바로 직장에서 일하는 것, 장사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이며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일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아가 가족들과의 관계, 부모에게 대하는 태도, 형제에게 대하는 태도 모두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요 교회의 일을 거룩하게 여겨 기쁘게 짐을 지는 태도와 다르지 않음을 공감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가 하나되는 "하나됨"의 영성, "일치"의 영성이 성경의 히브리어 단어 "예배"가 주는 하나님의 메세지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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