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2011

지혜의 말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고린도전서 12장의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계시의 은사 가운데 하나다. 지혜는 문제를 해결하고 축복과 승리를 가져오는 기능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는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꼭 필요하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1731~1800)은 이런 말을 했다.

“지식은 자기가 많이 배운 것을 자랑하는 교만을 낳고, 지혜는 지식이 더 알지 못한 것에 대한 겸손을 낳는다. 공부를 많이 하면 지식을 쌓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경험을 쌓음으로 알게 되는 힘이지만, 지혜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이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세상에는 학문을 많이 닦은 어리석은 사람이 수두룩한가 하면, 공부를 많이 못했어도 지혜로운 사람이 꽤 많다.”

지식보다 더욱 귀한 것이 지혜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만일 지혜가 부족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그 많은 지식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지식은 아는 것의 총칭을 가리키는 말이고, 지혜는 아는 지식을 바로 쓸 수 있는 지력을 의미한다. 지식이 인격의 한 구성요소인 지능에 속한다면 지혜는 전 인격에 속한다. 지식을 연장으로 상정한다면 지혜는 연장을 사용하는 손으로 상정할 수 있다. 지식의 측정은 IQ나 시험에 의해서 나타나지만 지혜의 감지는 행위와 태도와 표정에서 나타난다.  지식을 맛이라고 표현한다면
지혜는 멋이라 표현할 수 있다. 지식은 찬 기분을 주지만 지혜는 따뜻한 기분을 준다. 지식은 이해관계에 빠르지만 지혜는 이치관계에 민감하다. 지식은 스승에 의해서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지혜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내 영에 당신의 말씀을 주심으로 생긴 ‘하나님의 지혜’를 뜻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특별한 상황을 만났을 때나 특별한 질문을 받았을 때, 또는 특별한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인 지식의 일부를 이용할 때 갑작스럽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주어지는 지혜이다. ‘지식의 말씀’처럼 이것도 전혀 인간의 능력이 아니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사이다.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면 ‘지혜의 말씀’을 구하라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에 의하여 초자연적 계시로 주어지는 지혜로서 자연적 지식(학습과 경험) 또는 초자연적 지식(지식의 말씀)을 기초로 한 실제적 행동에 필요한 지혜이다. ‘지혜의 말씀’이 보통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함께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식의 말씀’ 은사와 ‘지혜의 말씀’ 은사는 종종 밀접하게 같이 움직인다. 어떤 경우에는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나는 초자연적으로 어떤 사실을 계시해 주고, 또 하나는 계시된 사실들에 관하여 어떻게 무엇을 행할 것인가 지혜를 계시해 준다.

따라서 만약 ‘지식의 말씀’, 곧 초자연적 지식을 받았으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하나님의 말씀, 곧 ‘지혜의 말씀’을 구하고 인내를 갖고서 기다려야 한다.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일어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또는 주어진 상황 특히 믿음에 도전을 받았을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지혜의 말씀이 오는 통로들
‘지혜의 말씀’ 은사는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는가? 이 은사 역시 ‘지식의 말씀’처럼 나의 영 속에 ‘깊이 있는 지식’이 갑작스런 영감에 의해 나타날 수도 있고, 꿈의 해석이나 환상, 비유 또는 상징을 통해서, 말에 관한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그리고 드물긴 하지만 천사의 방문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혜의 말씀’이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그 결정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 모임 가운데 있는 어느 한 사람에게 주어질 수도 있고, 교회 전체 안에 한꺼번에 주어질 수도 있다(행 6:2~3).

 성경에 나오는 ‘지혜의 말씀’의 예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때 이 능력은 육적인 지혜도 아니고 연구나 사전 준비로 얻은 지혜도 아니고 즉각적인 초자연적인 해답으로 얻은 것이었다(창 41:25~36). 요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알아차린 것이다. 이것은 지혜의 말씀이 ‘꿈의 해석’을 통해 주어진 사례이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도 지혜의 말씀을 주셔서 그가 느브갓네살 왕에게 불려갔을 때 왕의 잊어버린 꿈과 그 꿈 해석(지혜)을 드러내었다. 이 비밀들은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다: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단 2:22).

그 결과 왕은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하고 지혜로운 사람 다니엘로 하여금 왕궁에 거하며 바벨론을 다스리게 했다(단 2:46~49).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에게 놀라웁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예수께 물어봄으로써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리셨던 예수님은 ‘지혜의 말씀’으로 답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마 22:15~22).

다음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였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은 만약 예수님이 돌로 치라고 하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용서와 사랑이 없는 자로, 돌로 쳐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자라고 매도할 계획이었다. 이때에도 예수님은 ‘지혜의 말씀’으로 대답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1~9).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하늘의 섬광 같은 ‘지혜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조금도 어려움이 없이 문제를 능히 해결해 나가셨다.

신자들에게 약속된 지혜의 말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복음 때문에 핍박을 당할 때는 이와 같이 ‘지혜의 말씀’을 주시겠다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앞서 살펴본 바처럼 예수님 자신도 ‘지혜의 말씀’의 은사로서 종종 난관을 벗어 나셨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the right words and such wisdom)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2~15).

주님께서 여기에 약속하신 ‘구재와 지혜’가 바로 ‘지혜의 말씀의 은사’인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과 믿음에 관해 세상의 완악한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위협당하고 도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우신 성령의 지혜를 부어주심으로써 능히 그 난관을 극복하고 해결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일상적인 때에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아 마음이 괴로울 때, 또한 예언적인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었지만 어떤 뜻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홀로 머리를 싸매고 앉아 고민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의 말씀’을 구하라. 믿음으로 구하면 후하게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어져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지혜를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여 활동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사모하지도 않는다. 성도들이 삶과 사역 속에서 이 놀라운 초자연적 은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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