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올해 초 40년을 통치하던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무바라크에게는 너무나 사랑하는 무하마드라는 손자가 있었습니다. 측근의 말을 들어보면 국정을 운영하는 가운데 그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손자만 보면 그는 인자하게 웃고 힘을 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요 행사에 영부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자가 그 자리를 늘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무바라크에게는 손자가 큰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09년 5월에 원인 모를 두통으로 병원에 갔던 손자가 뇌출혈로 죽게 됩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 무바라크는 예전에 보여주었던 추진력도 사라지고, 삶의 의미를 잃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해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취소하였고, 2009년 6월 5일 이집트로 온 오바마가 상당히 중요한 연설을 하는 자리에서조차도 무바라크는 슬픔에 잠긴 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문 기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수많은 기간 동안 독재를 해왔던 자들로 본다면 무바라크는 오히려 깨끗한 쪽에 속한다. 그럼에도 그가 무너진 것은 그의 부정부패가 폭로된 것이나 고실업률이나 고물가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힘이 되었던 손자의 죽음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갈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면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폴 틸리히는 “신앙이란 그가 바라보는 그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 우리의 소망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그것을 산 소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과 그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원은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교훈을 통해 소망을 가진 사람, 즉 부모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첫째 부모는 여러 가지 시험이 와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험이 오고 잠깐 근심하게 되는 상황이 있으나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부모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7절을 보면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지만 너무 현실만 보고 믿음이 없는 자들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부모는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뛰어넘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는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예수님 때문에 참을 줄 알고, 예수님 때문에 가슴 뭉클해하며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을 통해 세워질 부모들이 이와 같은 자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모든 성도들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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